상하이에서 기차로 불과 1시간 거리인데도, 항저우는 상하이와 너무도 다른 도시다. 인파에 쓸려다니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고층 빌딩숲 상하이와 달리, 항저우는 눈을 돌리는 모든 곳에 푸르른 나무와 호수가 있다. 너른 거리에 늘어선, 석조로 만들어진 옛 건물은 항저우의 녹음과 어우러져 항저우만의 운치를 만들어 낸다. 그리고 항저우에는 아름다운 서점, 중수거가 있다. 호텔과 서점, 커피.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으로 하루를 꼬박 채우며 천천히 돌아본, 항저우의 첫인상. 









항저우에 와야 하는 단 하나의 이유, 서호
위트아트유스 호텔에서 아침을 챙겨먹고 체크아웃과 짐을 맡기고 일찌감치 나왔다. 호텔이 있는 장링루는 지하철 1호선이라, 서호과 바로 연결되는 1호선 역들, 특히 롱샹차오(龙翔桥) 역과 5 정거장 거리로 매우 가깝다. 이 때 호텔 문 앞에 신기하게 생긴 우산꽂이를 발견했는데, 모바일로 우산을 빌릴 수 있는 모양이다. 중국어를 못하니 물어볼 수도 없고, 설마 비오겠어 싶어 그냥 나왔는데 벌써 하늘이 심상치가 않다. (나중에 알고 보니 친절한 호텔 직원들은 우산 달라고 하면 그냥 내어준다) 꾸물대는 하늘에 내심 불안해하며 서호로 향했다. 


롱샹차오 역에 내려서 몇 걸음 걷자마자, 서호의 멋스러운 거리 풍경에 한 눈에 반해 버렸다. 다음에는 돈을 좀 더 들이더라도 이 동네에서 1박은 해야지 싶다. 특히 예산 때문에 포기했던 호텔 '를레이 샤토 차펠'과 항저우 임시정부는 같은 건물이라, 묵는 자체가 이 도시의 역사를 경험하는 것이다. 부모님 모시고 오는 가족여행 컨셉이라면, 호텔은 무조건 이 동네다. 











서호를 한 바퀴 걸어서 도는 데는 약 3시간 가량이 걸린다고 하는데, 날씨만 좋았다면 풀 코스까진 못해도 절반 정도는 다녀보려고 했다. 그런데 우산없이 비를 맞으며 다니기엔, 점점 빗줄기가 굵어진다. 그 와중에 비오는 서호도 나름 매력이 넘치는데, 운치란 이런 것인가 싶다. 한 아저씨가 물을 묻힌 붓으로 땅에 한시를 쓰거나, 비를 맞으며 중국 전통 민요를 부르는 아주머니를 스쳐가며 서호를 감상했다. 사실 비를 피하기 위해 어디론가 직진 중이기도 했다. 목적지는 서호의 스타벅스다. 










시안부터 항저우까지, 중국온 지 1주일여 만에 처음 오는 스타벅스다. 수많은 상하이 여행을 통해 영어로 '아메리카노'를 찾으면 직원은 당황할 확률이 높다는 걸 경험적으로 안다. 이제는 기본적인 주문 정도는 중국말로 해야겠다 싶어, 급하게 '아메리카노 따뜻한 거 주세요'를 찾아 중국어로 주문을 무사히 완료했다. 뭔가 대단한 거 하나 해낸 기분.ㅎㅎ 


넓디 넓은 서호에는 스타벅스 매장이 곳곳에 있는데, 인테리어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스타벅스 서호 '천지' 점이 바로 이곳이다. 전면 통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서호도 일품이지만, 매장이 이렇게 넓은데 사람도 없어서 그야말로 별천지다. 조금 정신이 있었으면 중국 스벅 한정 메뉴를 주문했을텐데, 이날 비 피해 다니느라 정신을 쏙 빼서 아메리카노 확보한 것도 감지덕지. 조용히 한 1시간을 멍때렸던 것 같다. 강의를 하는 직업상 한국에서는 거의 가질 수 없는, 고요한 혼자만의 시간이다. 하지만 기다려도 비는 멈추지 않아서 첫 서호 구경은 이쯤 해서 마무리하고, 다시 지하철을 타고 장링루로 향했다. 











19원짜리 푸짐한 한 상 점심

호텔에서 짐을 찾기 전에 가봐야 할 곳이 있었다. 위트아트유스 호텔 근처에, 내가 항저우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중수거' 서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서점 구경도 식후경, 벌써 오후 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커피 말곤 먹은 게 없다. 중수거가 있는 쇼핑몰 지구 1층에서 적당한 밥집을 찾았다. 卤派三叔이라는 식당인데, 고덕지도 앱의 별점이 나쁘지 않아 이곳으로 낙점했다. 입구에 쓰인 메뉴 사진과 가격을 찍어서 보여주니 주문도 손쉽게 마쳤다. 


근데 가격이 놀랍다. 한 상 세트가 19원이면 한화로 3500원 정도인데, 나온 음식을 보고 더 깜짝 놀랐다. 푸짐한 오리고기 덮밥과 셀프로 담아온 국물 한 세트가 이 가격이라니 너무 행복하다. 병에 담긴 소스로 적당히 간을 맞춰 맛있게 잘 먹었다. 점심시간이 이미 지나서인지 사람도 많지 않아 쾌적했다. 옆에서 직원들이 스탭밀로 먹고 있는, 엄청 맛있어보이는 밥상을 보니 내가 얼결에 맛집을 찾았나 싶기도.ㅎㅎ 











중국 서점의 진수, 중수거(鐘書閣, 종서각)

이곳 쇼핑몰 2층에, 중수거가 있다. 중국 여행이 능숙했다면 시안에 있을 때 엔지요우(言几又)를 다녀와서 비교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직접 와 보니 더더욱 든다. 그래도 본점인 상해 템즈타운 점은 짧은 일정에 부담이 되는 먼 위치인데, 항저우의 중수거는 빈장지구 한복판의 쇼핑몰, 게다가 내가 묵는 호텔 옆이라서 좋다. 


언뜻 지나칠 뻔한 평범한 서점 입구를 들어서면, 마치 미래도시에 온 것 처럼 온통 새하얀 내부 전경이 모습을 드러낸다. 천정까지 이어지는 여러 개의 기둥에는 거울이 붙어있고, 그 기둥도 자세히 보면 모두 책이 꽂혀 있다. 많은 이들이 그저 무심히 비현실적인 풍경 곳곳에 앉아 책에 푹 빠져있는 모습이, 더더욱 낯설게 다가왔다. 겨우 정신을 차리고 여행서 코너를 뒤적여 본다. 내가 '중국 디지털 노마드가 보여주는 자유여행의 현재'에서 소개한 중국의 여행작가 첸유의 '에어비앤비로 606일 살아보기'도 찾았다. 하지만 새 책 재고가 없어 구입을 하진 못했다. 중국은 책값이 비교적 싸서 부담도 없는데, 아쉽다. 










미래도시를 지나 좀더 깊숙이 진입하면, 서점의 본질에 충실한 아늑한 공간이 나온다. 이곳은 서점과 카페를 겸하고 있어서, 많은 이들이 음료와 음식을 즐기며 느긋하게 책을 보고 있었다. 한 단계 더 안쪽으로 들어가니 둥그런 공간에 빔 프로젝터가 켜져 있고, 마침 누군가가 한창 강연을 하는 중이다. 독서와 강연 공간은 분리된 듯 하지만 언제든 서로의 세계에 열려있기도 했다. 










강의장 옆 동네는 아이들의 세계다. 아늑하게 조성된 아이 전용 서가는 마치 놀이터처럼 섬세하게 꾸며져 있었다. 어린 아이들이 부모와 함께 마치 놀이하듯 독서를 즐기는 장면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이 정도로 멋진 서점이라면 아이들이 좋아서 스스로 서점을 찾고 싶어지겠다. 책좀 읽어라, 하는 소리를 부모가 하기도 전에 말이다. 


물론, 한국에도 중수거만큼 인테리어가 멋진 서점은 이제 제법 많아졌다. 이젠 서점 문화는 충분히 성숙해졌으니 독서 문화를 어떻게 활성화할 지의 고민이 필요한 시점일게다. 여전히 한국에서 책을 팔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쨌든 중수거에서 한 시간즈음 머물며 이런처런 책과 책을 읽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시간을 보냈다. 빗줄기가 제법 그쳤으니, 이제 슬슬 호텔을 옮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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