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 X Luang Prabang - 탁밧, 그 이면의 의미를 만나다
세계적인 관광포럼에 인플루언서로 초청되어 라오스를 만나게 된 건, 개인적으로 큰 행운이었다. 아시아 불교에 대한 사전지식이 많지 않은 내가 라오스에 그냥 놀러가서 탁밧을 접했다면, 사진 몇 장 이상의 의미는 찾기 어려웠을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루앙프라방 일정을 급하게 준비하면서 내가 찾은 대부분의 여행 후기에는, 죄책감이 묻어 있었다. 탁밧 행렬을 향해 셔터를 누르는 스스로에게 느끼는, 일종의 모순된 감정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라오스의 스님들은 여행자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그들의 입을 통해 답을 실제로 듣고 생각해보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우연히 만난, 미니 탁밧
포럼 3일차로 접어든 날의 이른 새벽, 나는 난감해졌다. 탁밧을 취재하기 위해 5시 45분까지 아제라이 호텔로 가야 한다. 사전에 미디어 담당자가 자신있게 '교통편은 원활하게 연결됩니다'라고 호들갑떤 것과는 달리, 호텔(르센)이나 바로 옆 사나케오 호텔 앞엔 아무런 픽업차량도 없었다. 새벽 5시. 하는 수 없이 뚝뚝을 불렀다. 택시가 없는 루앙프라방에선 뚝뚝이 택시 역할을 한다. 다행히 습관처럼 2만낍을 부르는 운전수에게 1만낍을 외치고 무사히 올라탔다. 불어드는 새벽바람이, 제법 상쾌했다.
그러나 도착할 즈음, 문제의 관계자가 약속시간보다 먼저(!) 기자들을 싣고 출발하는 차량과 마주 엇갈렸다. 하아. 뚝뚝에서 내렸을 땐 이미 늦은 뒤다. 로비엔 나처럼 간신히 뚝뚝을 잡아타고 왔지만 차량을 놓친, 미국인 기자 두 명이 더 있었다. 모두 알 수 없는 분노의 한숨을 쉬고 있을 무렵, 호텔 직원이 다가와 '저희 호텔 앞에도 작게 탁밧이 있어요. 한번 나가서 보세요'라고 알려주었다. 또다른 직원으로 보이는 여성이 무릎을 꿇고, 다가오는 스님들에게 천천히 무언가를 나누어 주는 장면을 마주했다. 그것이 탁밧과의 첫 만남이었다. 짧지만, 강렬한 이미지로 다가왔다. 행렬이 이어지는 동안은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고요했고, 숨죽여 잠시 행렬을 물끄러미 바라 보았다. 방금 마음 속에서 일어났던 복잡한 감정들이, 조금 정리되는 순간이었다. 이윽고 포럼 측에서 뒤늦게 보내준 뚝뚝을 타고, 메인 행렬이 열리는 시내로 향했다.
루앙프라방의 아침을 여는 의식, 탁밧
아까 잠시 본 탁밧이 시내 곳곳에서 벌어지는 미니 행렬이라면, 본 행렬이 이어지는 거리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붉은 물결이 사원 벽을 타고 끝없이 이어졌다. 잠시 끊어질라 치면 또 어딘가에서 스님들의 줄이 이어지며 행렬이 반복되었다. 뒤늦게 포럼에서 마련한 외신 기자들의 포토라인에 합류했다. 이미 내가 도착했을 때는 행렬이 절반 이상 진행된 상황인 게 아쉬웠다. 일찌감치 도착한 해외 블로거와 기자들은 이미 사진은 찍을 만큼 찍었는지, 하나 둘 탁밧 의식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시주 바구니를 받아들고 자리에 앉아 부지런히 공양을 시작하는 그들의 모습이 낯설면서도 흥미롭다.
그래도 내가 촬영하던 날에는, 불필요하게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행렬에 방해를 주는 관광객은 없었다. 하지만 나 역시 먼저 여행한 사람들과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과연 내가 그들의 종교의식에, 혹은 일상에 이렇게 불쑥 들어와 사진촬영을 해도 되는 걸까? 아마 탁밧을 보러 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 비슷한 생각을 할 것이다. 탁밧은 왜 하는 것이며, 이렇게 받는 돈과 음식은 어떻게 쓰이는 것이며, 탁밧을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어떤 예절과 존중의식이 필요한지...이 모든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듣기 위해, 우리는 '스님과의 아침식사' 행사가 마련된 장소로 향했다.
스님과의 아침식사 @ 아제라이 호텔
작은 도시인 루앙프라방이 국제 MICE행사를 유치하는 일은 드물기 때문에, 이번 관광 포럼 개최를 위해 라오스 관광청은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특히 루앙프라방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탁밧 의식을, 그들 스스로도 매우 중요한 관광 자원으로 인식하고 있는 듯 했다. 그래서 모처럼 방문한 전 세계의 외신 미디어를 위해, 직접 스님을 모시고 탁밧에 대한 외국인의 이해를 돕고 여러가지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루앙프라방에 가장 최근에 지어진 아름다운 호텔, 아제라이 호텔은 아만의 CEO가 런칭한 부티크 호텔로 화제를 모았다. 사실 개인적으로 루앙프라방에 왔다면 꼭 머물고 싶었던 곳이기도 했다. 이 멋진 호텔 내에, 스님 두 분과 기자들이 서로 마주보고 앉아 대담을 나누게 된 상황이, 어색하면서도 신기했다.
새벽 4~5시부터 일어나 아침도 못 먹고 오전 내내 촬영만 한 미디어를 위해, 작은 뷔페가 차려져 있었다. 크고 예쁜 접시에 신선한 빵과 버터, 잼, 치즈, 과일 등을 적당히 담아 자리에 앉았다. 스님과 마주 보고 앉아야 해서, 식탁에서 등을 돌려 음식을 무릎 앞에 놓았다. 스님도 우리처럼 앞에 놓인 음식들을 천천히 드셨다. 두 스님 중에 한 분은 아주 나이가 드신 고참(?) 스님이셨고, 다른 한 분은 아주 어린 소년 스님이었다. 처음에는 스님은 많은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그저 모두가 밥을 다 먹을 때까지, 두 스님도 묵묵히 아침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친 뒤, 기자들은 하나씩 질문을 시작했다. '탁밧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혹은 '탁밧이 루앙프라방의 관광업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탁밧 행렬을 관람하러 오는 여행자들이 꼭 지켜야 할 것은 무엇인가?' 등 나 역시 평소 궁금하게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스님은 라오스어로 답변을 해주었고, 통역사와 해리티지 재단 관계자 분들도 아주 상세하게 설명을 해 주셨다.
우선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루앙프라방의 스님들은 탁밧 행렬을 보러 오는 여행자들을 '방해자'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관람객은 탁밧 도중에 절대로 '플래시'를 터뜨리거나 행렬의 동선을 방해하거나, 시끄럽게 떠들지 않아야 한다. 물론 이런 일은 슬프게도 매일매일,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그래도 아직은 '외국인들이 라오스 불교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단다. 또한 탁밧은 보여주기 위한 행사가 아니라 아주 오래 전부터 이어온 그들의 전통문화이자 일상이기 때문에, 관광객이 늘어난다고 해서 이 귀중한 전통을 바꾸거나 없애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정말 몰랐던 사실은, 탁밧이 단순히 스님들을 위한 시주공양인 줄만 알았는데,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것. 아직은 빈부격차가 심하고 빈곤층이 많은 라오스에서, 스님들이 탁밧을 통해 얻은 돈과 밥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인다. 실제로 탁밧 행렬 옆에는 스님에게 음식을 받기 위한 이들의 기다림도 흔히 볼 수 있다. 공양을 올리는 이들은 자신의 기도와 바램을 모아 찰밥을 바치고, 스님들은 이를 모아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래서 탁밧에 올리는 밥은 깨끗하고 신선해야 하며, 돈을 올릴 때는 음식에 닿지 않게 반드시 비닐에 한번 싸야 한다. 알면 알수록, 탁밧이 다시 보였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모두를 위해 기도를 해주셨고, 재단 관계자 분들은 모두의 안녕과 복을 비는 의미로 실팔찌를 하나씩 직접 매어 주셨다. 일종의 부적과 같은 역할을 한다는데, 종교가 없는 내게도 무척 소중한 경험이었다.
스님과의 아침식사 전에, 한 편의 짧은 탁밧 다큐멘터리 필름을 보았다. 내용도 내용이지만 영상미도 정말 훌륭하고, 탁밧의 현대적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영상이라 위에 링크했다. 혹시 루앙프라방 여행을 앞두고 있다면, 위 영상을 꼭 보고 가기를 추천한다.
영상에 나온 것처럼, 젊은 스님들은 이 전통이 관광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사실도 잘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가 여행자 입장에서 탁밧을 보게 된다면, 사진을 찍거나 영상을 남길 때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들거나 미안해할 필요는 없다. 대신 조금 거리를 유지하면서 멀리 찍고, 조용하고 경건한 마음으로 관람한다면 그들에게도 우리에게도 서로 좋은 일이다. 조금 더 열린 마음으로, 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대한다면, 앞으로도 루앙프라방의 아름다운 탁밧 행렬은 절대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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