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 X Luang Prabang - 느린 산책, 그리고 쇼핑
아시아 관광업의 미래를 전망하기 위해 찾은 루앙프라방에서, 아직 이 작고 아름다운 마을이 어떻게 생겼는지 제대로 둘러보지도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루앙프라방 시내에서 온전히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야시장에서, 무엇이 이들의 발걸음을 불러 모으는지 알고 싶었다.
야시장이 있는 메인 스트리트에는 맛있는 라오 바게트가 있고, 손으로 만들어낸 갖가지 스카프와 수제 클러치백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관광지와 로컬의 매력을 두루 갖춘 이곳의 야시장에, 나는 단번에 매료당했다. 오후에 환전한 낍은 순식간에 지갑에서 훌훌 다 나가버렸다.
시간이 켜켜이 쌓인 고도의 골목 걷기
야시장이 있는 메인 대로변은, 낮과 밤의 풍경이 완전히 다르다. 저녁 5시 전에는 오로지 사원과 야자수 만이 지키던 거리에, 저녁 5시 즈음이 되면 빨간 지붕이 하나 둘 들어서며 분주해진다. 사실 루앙프라방의 많은 숙소들이 이 주변에 위치해 있어서 매일 이 곳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내가 묵는 르센 호텔은 야시장과는 멀리 떨어져 있다. 지도 상으로는 걸어서 10~15분 거리로 나타나지만, 도보 가능한 인도가 제대로 깔려있지도 않고 날씨도 찌는 듯이 더워서 10분 이상 걷는 건 쉽지 않다. 때문에 호텔 셔틀을 최대한 활용해서 다녔다. 마침 야시장 개장이 막 준비를 시작한 늦은 오후, 처음 만난 루앙프라방 중심가에 도착했다.
더워서 밥맛도 없고, 저녁이나 일찍 때울 겸 거리에 늘어선 샌드위치 가게부터 들렀다. 주문한 건 당연히 라오 바게트 샌드위치. 한 입 베어무니, 이 안에 라오스의 복잡다단했던 역사가 다 들어있는 느낌이다. 중국식 매운 칠리소스와 루송(육포 갈은 것), 차콜에 구워 불맛을 낸 계란 오믈렛, 프렌치 바게트의 삼박자가 묘한 균형을 이룬다. 알것 같은 맛인데, 먹고 나면 또 생각나는 맛. 가격은 800~1천원 선.
이곳 대로변은 한눈에 보기에도 전형적인 배낭여행자들의 집결지다. 동남아시아의 대표 도시마다 한둘씩은 있는 바로 그런 거리 말이다. 수많은 게스트하우스와 여행사가 빽빽하게 들어선 이 곳에, 아까 현지인이 알려주었던 '코끼리 보호 투어'를 전문으로 다루는 여행사를 발견했다. '만다라오'라는 투어 에이전시인데, 리조트까지 겸해서 운영하는 듯 했다. 혹시 코끼리를 타는 것보다 보살펴 주는 생태관광을 선택하고 싶다면, 만다라오 여행사에 들러보길. (페이스북) 여기 외에 다른 곳들은 대부분 코끼리를 타는 투어가 많았다.
여느 동남아의 구시가지와 조금 다른, 루앙프라방만의 풍경이 있다면 꽃이 참 많다는 것. 그리고 아직까지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는 것. 그래서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가끔 바람이 조금이라도 부는 시간에는 걷고 싶은 맘이 절로 들었다. 골목골목이 다 서로 재미나게 이어져 있어서 길을 잃을 염려도 없고, 골목 깊숙이 들어갈수록 작은 국수집을 발견하거나 사원에서 흘러나오는 스님들의 기도 소리를 들을 확률도 높아진다.
컬러풀한 수제품들의 축제, 루앙프라방 야시장
야자수와 오래된 사원으로 둘러싸인 대로변에, 빨갛고 파란 지붕이 하나 둘 올라가기 시작하면, 이제 야시장이 본격적으로 개장한다는 신호다. 이제 골목산책을 마치고 시장 구경에 돌입할 시간. 역시 처음에는 구입을 서두르기 보다는 전체적으로 시장을 한바퀴 돌며 아이템과 가격을 눈여겨 보는 탐색이 필요하다. 일단 이곳 야시장의 특징은, 거의 모든 물건에 정가가 없다는 것. 흥정이 필수라는 이야기다. 듣던 대로, 일반적인 관광객용 야시장에 비해 파는 물건들의 퀄리티가 매우 높다. 여기선 뭘 사도 크게 후회할 일은 없다.
야시장에 오랜 시간을 머물다 보니, 일정 패턴이 보인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한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5시 반쯤 도착해서, 30분~1시간 정도 쇼핑을 한다음 한꺼번에 사라진다. 만약 내게 주어진 야시장에서의 시간이 30분이라면 나 역시 무척이나 서둘렀겠지만, 다행히도 이번 여행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은 아주 많았다. 앞으로 한 3번은 여기 더 올거니까, 라고 생각하니 절로 여유가 생긴다. 그래서 정말 마음에 드는 것만, 여길 지나치면 내내 생각이 날 것 같은 몇 가지만 일단 샀다. 그리곤 다시 호텔 셔틀을 기다리며, 비어 라오를 두 가지 샀다. 다크는 호텔에 가서 마시기로 하고, 셔틀을 기다리며 골드 캔 하나를 딴다.
야시장에서 첫날 산 것들
근데, 호텔에 와서 풀어보니 뭐가 이렇게 한 보따리인지. 보따리 장수 된 줄.ㅎㅎ 느슨하고 부드러운 재질의 실크 혼방 스카프 두 가지는 부모님 선물로, 크고 작은 코끼리 슬리퍼는 동생과 조카 선물로, 그리고 수제 클러치는 나를 위해 하나 샀다. 사진엔 없지만 야시장에서 꼭 사야하는 코끼리 바지도 두 벌 더. 질이 참 좋다. 다들 가격도 5만낍을 넘지 않는다. 1가지 당 5천원을 넘는 것들은 별로 없다는 뜻이다.
어느 방향으로 접어도 예쁜, 리버서블 스타일의 클러치는 참 실용적이다. 이런 비슷한 디자인은 많았지만, 꼭 이렇게 생긴걸 파는 집은 야시장 전체를 통틀어 그 집 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살 수 밖에 없다. 다음에 또 와도 이걸 찾아내긴 너무나 어려우니까. 그리곤 호텔에 와서 들어보니, 역시 잘 샀구나 싶다. 딱 크지도 작지도 않은, 내 아담 키에 적당한 크기.
코끼리 바지도 참 여러가지 디자인이 있던데, 내가 고른 건 가장 널리 알려진 검정-하양 패턴과, 위 사진 속의 밝고 골드톤의 페이즐리 무늬가 들어간 바지 두 가지다. 이건 나중에 키리다라의 럭셔리한 전용 뚝뚝을 탔을 때 찍은 사진인 듯. 여행 내내 잘 입고 다녔다. 앞으로도 여행에서는 열일해야 할 바지들.
야시장 초입에서 과일을 썰어서 포장해 주는데, 망고는 한 손에 들기도 무거울 정도의 푸짐한 양이 1만 낍. 한 천원 정도 하나 싶다. 3일동안 나눠서 먹어도 다 못먹었다. 저녁에 비어라오 다크 한 잔, 그리고 망고 한 조각씩 먹어주며 하루를 마무리한다. 루앙프라방의 야시장은, 매일 가도 새롭고 매일 가도 살 게 많았다. 결국 나는 루앙프라방을 떠나는 마지막 날, 보조백을 꺼내 여행가방 하나를 더 늘려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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