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INSIGHT/독서

지난 4년간의 내 삶을 돌아보게 한 책, '걷지 마 뛰지 마 날아오를 거야'

by nonie 2011. 2. 15.
반응형




걷지 마 뛰지 마 날아오를 거야 - 10점
안주용 지음/컬처그라퍼



4년 전, 2006년 어느 가을날
IT벤처에서 마케팅 담당으로 하루하루 정신없이 살아가던 무렵이었다. 신생 서비스의 프로모션을 고민하던 중 대표님이 누군가를 만나보라고 하셨다. 꺼리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재밌는 친구들이 있으니, 일단 한번 얘기나 들어보라며.
며칠 후 사무실을 찾은, 대표님의 고교 후배라는 그녀는 친구들과 세계여행을 준비중인 의대 인턴이었다. 고교시절 베프 삼총사가 모여 여행지마다 독특한 미션을 수행하고, 그 기록을 블로그로 남긴다는 계획. 여행 좀 했다는 나도 말문이 막힐 정도로 매혹적이었다. 게다가 그녀들은 삼총사의 특성을 살려 주변인을 대상으로 3X3=9장의 사진과 3가지 질문을 하는 인터뷰 릴레이를 홈페이지에 연재하고 있었다. 가히 공학도 출신다운 기막힌 발상이었다.

얼마 후 그녀는 같이 여행을 떠날 친구(또다른 한명은 외국에 있어 만나보지 못했다)와 사무실을 다시 찾았다. 매사 당당하고 성숙한 말투의 예비 의사와는 달리, 이 친구는 조용조용한 말투에 무척이나 단정하고 예의바른, 아직 학생 티를 벗지 못한 연구원 초년생이었다. 그들의 흥미진진한 세계여행 프로젝트와 나의 지난 여행사를 신나게 떠들었던, 퇴근 후 어느 늦은 저녁 역삼동 카페에서의 만남이 사실상 마지막이었다. 헤어지고 지하철을 탔을 때 연구원 친구는 내게 "언니의 열정을 많이 배우고 싶고, 좋은 얘기 고마웠다"며 예의 그 예절바른 문자를 보내왔다. 삼총사 중에서도 어찌 보면 가장 내성적이고 여리게만 보였던 그녀였다.


4년 후 2011년 2월. 그리고 오늘
며칠 전 블로그 리뉴얼을 기획하면서 링크에 오래된 블로그 주소를 지우려고 체크하던 중, 그들의 세계일주 프로젝트 블로그를 발견했다. 2007년 이후로 흔적이 남아있지 않았던 그 블로그에는, 여행 잘하고 있냐며 안부를 물었던 나의 방명록 흔적도 남아있었다. 하지만 난 그 링크를 지워버렸다. 이젠 멈춰버린 블로그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알라딘에서 여행 신간을 검색하다 우연히 발견한 책이 단숨에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걷지 마, 뛰지 마, 날아오를거야" 라는 제목. 처음엔 출판사의 자극적인 "엄친딸" 드립 때문에 그저 그런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했는데, 리뷰를 자세히 보니 "모 과학고 기숙사 동료들과 세계 여행 중에...."라는 글이 눈에 띄었다. 단숨에 책을 구해 서문을 들춰보았더니 역시나 의사, 디자이너 친구들과 함께 떠난 세계일주.....바로 그녀였다. 큰 키, 선한 인상에 책 내용에 언급한 듯 매사 "모범생" 이었던 그녀가, 4년이 지난 오늘 라다크를 유랑하는 "모던 노마드 족"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은 파란만장했고, 무섭도록 치열했으며, 또한 운명적이었다. 그 책은 여행이 아닌, 삶과 사랑을 얘기하고 있었다. 



Tso Moriri Lake
Tso Moriri Lake by Prabhu B 저작자 표시 플리커에서 라다크를 검색하면, 이런 사진이 수두룩 빽빽....



이 책에 대해서는 할말이 무척이나 많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의 인연이라는 게 신기하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4년 전 그녀는 세계일주 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정착했으니, '여행'이라는 키워드가 분명 삶의 전환점이 되었을게다. 나 역시 이듬해 여행 블로그를 만들어 나름의 여정을 지속해 왔다. 하지만 이 책의 마지막 부분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20대의 절반을 "진정한 삶의 정의"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보낼 때, 나는 스스로의 발걸음을 적당히 합리화하면서 타협했기에 지금 이렇게 방황하고 있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단지 '여행'이나 '유목민'과 같은 삶의 방식을 얘기하는 게 아니다. 

아직도 잘 모르겠다. 좀더 담백하고 진실한 삶을 살고 싶은데. 지난 4년간 나를 지배하는 사회에서 겨우 "살아남느라" 꾸역꾸역 배운건 그저 남과 다르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일상을 여행처럼 살라며 스스로에게 행복을 강요하는 자기합리화, 모르는 사람에게 웃음을 흘리며 '느끼한' 말투로 친한척 하는 '사회화'된 커뮤니케이션 쯤. 한마디로 기름기만 잔뜩 껴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모습으로 스스로를 방조한 지난 4년을 총체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책이었다. 저자와의 실낱같은 인연이 있었기에 그나마도 가능했다 생각하니, 조금은 아찔하다. 어쨌든 그녀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기원하고, 현재 운영하고 있다는 베스트 라다크라는 멋진 현지 여행 사이트를 통해 언젠가는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꼭 해보고 싶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