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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식, 세계를 요리하라 - 손창호 지음/럭스미디어 |
'한식'은 어떻게 보면 친근한 주제이고, 한편으로는 보수적이고 다루기 까다로운 주제다. 한식의 범위와 정의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논점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을 꼭 읽어보고 싶었다. 평소 여러 나라에 다니면서 갖게 된 한식에 대한 나의 의견과 얼마나 같고 다른지 비교해보고 싶었다. 결론적으로 얘기하자면, '논란의 여지도 많고 생각할 여지도 많은 책'이다.
젊은 현직 외교관의 당찬 주장, 셰프 에드워드 권의 추천사 등 여러 화려한 수사가 일단 눈길을 끈다. 한식에 대한 69가지 아이디어로 이루어진 이 책은 비교적 읽기 편하고 이해하기 쉽다. 가장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내용은 "GDP 2만 시대에 걸맞는 글로벌한 한식 문화를 새롭게 정립하고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근거로 이태리와 프랑스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 문화와 이를 점진적으로 업그레이드시키는 글로벌화, 특별한 맛이 없는데도 세계화에 성공한 일본 스시의 사례 등을 꼽는다. 아마도 외교관으로서 세계 각국의 국빈을 맞아 한식을 대접해 본 많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의견일게다. 일부는 수긍이 가고, 또 어찌보면 일반 서민에게는 다소 괴리감이 느껴지는 주장도 있다.
우선 공감이 가는 부분은 한국인에게는 친숙하고 저렴한 음식이라도 프레젠테이션과 맛을 연구해 세련된 '뉴 한식'으로 성공시킬 수 있다는 것, 반대로 우리에겐 익숙하지만 외국인에게는 완전히 생소한 식재료에 대해서는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고 과감히 수정 보완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책에서는 일례로 '미역국'에 든 미역이 외국인에게는 너무나 낯선 음식이었다는 해프닝 등을 소개한다. 또한 한식 문화가 제대로 발전하지 못한 이유를 조선 시대의 '사농공상', 즉 상인을 천시하는 사회 분위기에서 소위 '장터' 식 문화만이 남아서 지금의 분식집과 고기집으로 발전되온 점을 역사적 근거로 제시한 대목이 매우 신선하고 놀라웠다. 한식당의 서비스가 너무나도 후진데 한국의 소비자들은 유독 한식 서비스에만 관대하다는 점도 꼬집는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얘기하는 식문화의 기준이 어디까지나 럭셔리하고 포멀한 요리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 리뷰의 제목이 "한국 셰프에게 바치는 보고서"일 수 밖에 없는 것이, 전체적인 맥락이 일반 대중보다는 한국을 대표하는 톱 셰프들에게 바치는 일종의 보고서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저자의 전문 분야가 요리 쪽이 아닌 점과 흔한 컬러 사진 한 장 없는 성의없는 편집 디자인도 한몫 한다) 그래서 대중이 이 책을 선택해야 하는 "핵심 동기"를 찾기는 힘들었다. 나처럼 외교관으로서 외국인과 함께 한식을 접하면서 겪었던 구체적인 에피소드를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스러울 것이다. 외국에서 한식 레스토랑을 차리거나 한국에서 외국인을 위한 한식당을 차릴 창업 희망자, 그리고 한국 요리를 연구하는 이 땅의 모든 셰프와 지망생에게는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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