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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독서

여행작가에 대한 환상을 유쾌하게 깨주는 여행서, 사바이 인도차이나

by nonie 2011.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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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바이 인도차이나 - 10점
정숙영 지음/부키



여행작가의 고단한 현실, 그리고 생계형 배낭여행의 시작
여행 작가는 척박한 한국 사회에서 일종의 로망같은 직업이 되었다. 여행 작가도 아닌 나에게도 여행 에디터나 여행 블로거, 여행 작가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고 묻는 어린 학생들의 질문이 종종 올 정도다. 여행하면서 글도 쓰고 돈도 번다는 허울좋은 판타지, 정작 생업을 뛰는 여행작가는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책 서문에 나오는 구절은 이렇다. 





간단하게 "돈이 안된다". 저자는 여행작가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프리랜서의 재정불안을 극복하기 위해 영어와 일어 번역일을 병행한다. 그녀는 누구나 꿈꾸는 화려한 여행작가의 현실은, 바로 자유와 돈을 맞바꾼 고단한 삶의 방식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나 "낯선 땅에 섰을 때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본성을 숨길 수 없는 본투트래블러는 결국, 여행과 일의 접점을 찾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야 만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그녀의 여행 테마는 "여행지에 가서 일하기". 아마 대다수가 고개를 갸우뚱 할 것 같다. 남들은 쉬러 가는 여행지에 일을 싸들고 가다니 오마이갓! 하지만 그녀에게는 얘기가 좀 다르다. 어짜피 여행이 곧 일이고, 장소에 얽매이지 않는 "글쓰고 번역하기"로 돈을 벌 능력이 된다면, 나라도 한번쯤 고려해볼 만한 아이디어다. 동남아시아(인도차이나 반도)는 저렴한 물가와 천혜의 날씨, 장기 배낭여행을 떠나기에는 아직도 최고의 지역으로 손꼽힌다.


빌 브라이슨을 연상케 하는 걸출한 만담가의 "일과 여행, 여행과 일"
인도차이나 반도의 소도시를 전전하며 일과 여행을 병행하는 파란만장한 스토리는 때로는 유쾌하고, 때로는 긴장감이 감돌기도 한다. 독자의 눈으로 술술 좇아가기 좋게 적당한 사건과 적당한 만담이 곁들여져 풍성하게 전개된다. 역시 프로의 글발이 느껴지는 에세이였다. 다소 불필요한 수식어구가 너무 들어간 감이 없잖지만. (이 책은 여느 여행기와는 다르게 사진이 거의 없는데도 무려 440페이지가 넘는다는 ㄷㄷ)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와닿았던 건 그녀가 여행지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과의 대화 내용이었다. "번역을 할 정도로 어학실력이 좋은데 왜 대기업에 취직 안하세요?"라는 청년의 물음에, "회사 다니기 싫어요. 언니처럼 프리랜서 하고 싶어요"라는 철부지 20대의 넋두리에, 그녀는 나름의 해답을 내린다. 직접 조직과 시스템을 겪어본 인생 선배로서. 본인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정확히 알았을 때 비로소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진리를 말이다. 그녀의 내공은 이런 깨알같은 명언에서도 드러난다. "무릇 사장이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사람과 인연을 맺는 최악의 방법 중 하나가 바로 그 사람의 직원이 되는 거잖아". 직장생활 쫌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공감할 듯. ㅋㅋ 

그녀가 만난 현지인들은 말한다. "한국 사람들 늘 그러잖아. 뭐하지? 뭐해야 되지? 안절부절" 심지어 일을 싸짊어지고 간 여행작가도 이 그림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일과 여행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며, 모든게 맘에 쏙 드는 도시와 악몽같은 도시를 번갈아 거치며, 그녀는 "행복한 삶"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인생관을 새롭게 발견한다. 나 역시 여행과 일 사이에서 어떻게든 협상해 보려 바둥거리던 지난 5년이 떠오르면서 앞으로의 내 모습에 대한 고민을 더 하게 되었다. 분명한 것은, 스스로도 인정하지 않았던 나의 특성, 저자처럼 "낯선 땅에 섰을 때만 살아있음을 느끼는" 이 본성이 달라지지 않는 한, 여행자의 삶을 놓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것. 그렇다면 이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할지 더 치열한 고민과 계획이 필요하다. 이 책은 그 시작과 동기 부여, 그리고 "어떻게든 찾아봐!"라는 간단한(?) 방법을 안내해 주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고 싶다. 마지막으로, 재미있다. 여자 빌브라이슨인줄 알았다. ㅎㅎ   





책 뒷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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