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Intro
필리핀의 국민가수 '레진 벨라스케즈'의 팬으로 시작된 동남아시아 음악에 대한 관심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노래 정말 잘하는 가수'에 배고픈 나로서는 한국인보다 월등한 실력을 가진 그들에게서 더 큰 만족감과 배움을 받기 때문일게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언제나 2% 아쉬웠다. 훌륭한 보컬들이 많은데도 세계 시장에서는 항상 저평가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블로그에서도 여러번 지적했던 '인적, 음악적 인프라의 부족' 때문이다. K-POP이 범아시아적인 정서와 트렌드를 선도하며 전 아시아의 시장을 휩쓸 때, 그들은 우리에게 거의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게 우리보다 노래를 못해서가 아니라는 점이 나를 안타깝게 했다. 동남아시아의 음악씬은 여전히 로컬스러운 전통 가요, 혹은 영미권 팝의 리메이크라는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동남아의 음악씬이 세계시장에 서서히 선보이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그 시작은 한국에도 익히 잘 알려진 꼬마 여자가수, Charice다.
오프라 윈프리, 데이빗 포스터가 밀어주는 필리핀 여가수?
한국인들은 Charice라는 이름보다 '펨핀코'라는 성으로 그녀를 기억할 것이다. 2007년 SBS 스타킹에 출연해 슈퍼주니어의 규현과 A Whole new world를 불렀던, 그 이후에도 다시 방문해 엄청난 가창력으로 한국을 놀래켰던 그녀. 하지만 이제 '스타킹의 펨핀코'는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이젠 스타킹에서 아무리 와달라고 사정해도 못올 만큼 바쁘고 유명해졌기 때문이다. Charice는 불과 2년 만에 필리핀의 국보급 자랑거리가 되었다. 스타킹 출연 UCC가 미국에 알려지면서 오프라 윈프리 쇼에 초대된 초유의 사건 이후, 그녀는 미국의 수천만 시청자를 단숨에 사로잡았다. 그후 수많은 미국 토크쇼에 출연하며 자신의 가창력을 알렸고, 데이빗 포스터의 눈에 띄어 셀린 디온, 안드레아 보첼리와 같은 세계적인 아티스트와 협연했다. 게다가 2008년 오스카 시상식 Afterparty에 초대되어 라스베가스의 화려한 무대에서 두 곡의 라이브를 선보이기도 했다. 오바마 대통령 취임 기념 허핑턴 포스트 프레무도회에서는 God bless America를 불렀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는 알만한 이는 알게다. 미국은 그녀를 인정했고, 그녀의 성공적인 데뷔를 기다리게 되었다.
Charice의 미국 데뷔 싱글 표지
그러니 그 성공의 시작이 한국 쇼 출연분 UCC라는 점은 어쩐지 찜찜하다.(그녀가 출연한 또다른 토크쇼 '엘렌 드제너러스'에서는 아예 인트로 화면이 스타킹 출연분으로 시작한다. '이 영상을 기억하십니까?'란 멘트와 함께)
지금 한국 가수들의 미국 진출 상황을 돌이켜보라. 모든 자본과 인력을 총동원해도 미국 시장은 결코 만만치 않음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보아도, 우타다 히카루도, 아시아의 그 누구도 뚫을 수 없었던 철옹성이었다. 그 벽을 뚫기 시작한 게 한국도 일본도 아닌, 필리핀의 한 작은 가수라는 점은 많은 것을 시사한다. 대규모 마케팅도, 이미지 메이킹도, 특별한 트레이닝도 필요없었다. 일찌감치 자국에서 발굴된 보컬 영재가 조금 일찍 미국에 도착했을 뿐이다. 가장 중요한 것, 그녀는 세계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가창력을 가지고 있었다. 단지 그것 뿐이다. (사실 오프라가 Charice의 스토리텔링을 잘해주긴 했다. 하지만 동정이든 뭐든, 어쨌든 오프라쇼였다. 그게 중요한거다)
탄탄한 보컬리스트 층을 보유한 필리핀의 미국 진출 성공은 예견된 결과
오랜 세월동안 영미권과 아시아 선진국(한국 포함)에서는 필리핀의 음악을 무시해 왔다. 기껏해야 'Well made Copy cat'이라는 조소만을 던질 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탁월한 음악성은 수십년 전 한국의 미군부대에서 흑인들을 흉내내며 끝내주는 공연을 펼쳤던 필리피노 밴드 시절부터 이미 증명된 실력이었다. 일본이 남의 것을 가져다 자기네 스타일로 변질시키는 재주가 있다면, 동남아의 음악은 영미권의 그것을 완벽하게, 더욱 완벽하게 따라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래서일까. 그들의 리메이크는 시간이 흐르면서 원곡을 능가하는 보컬 실력을 특히 강조하게 되었고, 독창적인 편곡 시도도 점점 늘어나면서 나름대로의 음악성도 구축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로컬 특유의 전통도 계속 보존하면서 발전해왔다. 하지만 그들의 음악은 철저히 로컬에서 소비되고 사라졌다. 필리핀의 국민 가수 레진이나 Lani Misalucha가 미국의 어느 큰 공연장에서 투어를 했다고 해도, 그것은 미국 진출이 아닌 단발성 공연에 가까웠다. 그녀들도 미국 진출을 꾀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단지 미국 팝씬의 벽이 아시아인에겐 너무 높았을 뿐이다.
하지만 전 세계의 평균보다 웃도는 수준의 보컬리스트만을 요구하는 동남아 씬은 두터운 가수층을 만들어냈다. 레진은 자신의 이름을 건 리얼리티 쇼를 통해 Rachell ann go라는 걸출한 싱어를 발굴했고, 제 2의 레진이라 불리며 머라이어 캐리의 역대 전곡을 소화할 만큼 엄청난 R&B 재능을 보유한 Kyla, Charice와 비슷한 시기에 데뷔해 여러 모로 비교되는 Sara Geronimo 등, 지금 필리핀은 제 2의 보컬리스트 전성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웃 나라인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도 필리핀에 뒤지지 않는 수많은 어린 여가수들이 가공할 만한 노래 실력을 보유하고 대기 중이다. 게다가 그들의 대부분이 영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영미권에 이질감이 덜한 외모를 가지고 있다. 최근 미국에 진출한다며 미리 외운 영어멘트를 버벅대며 읇어대는 원더걸스의 안습적인 인터뷰 장면을 보고 있자면, 우리의 미국 진출 성공기는 아직도 요원한 것 같다.
동남아 음악씬의 현재를 엿볼 수 있는 음반 BEST 3
1. 고품격 리메이크의 결정판, Side A - Gig(All Hits Live) (2005)
필리핀의 국민밴드, 13장의 베스트셀링 앨범을 보유한 5인조 그룹 Side A의 2005년 라이브 실황 앨범이다. 그들의 많은 라이브 앨범 중에서도 가장 명작 중 하나라고 알려져 있는 본작은 한국인에게도 너무나 친숙한 팝 넘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호주 가는 길에 비행기에서 듣고 깜짝 놀랐던 그루브한 연주, Whenever I call you friend 강력 추천.
2. 본토도 울고 갈 네오 소울의 진수, Noryn Aziz - Alam Maya (2006)
말레이시아의 떠오르는 싱어 Noryn의 앨범을 접하고 동남아의 무한한 잠재력에 다시 한번 놀랐다. 가사는 분명 로컬인데도 R&B와 소울, 재즈를 넘나드는 그녀의 음악성은 혀를 내두를 정도다. 현재 동남아 전역에서 열리는 크고 작은 재즈 페스티발에 단골 초대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수록곡 전곡을 대부분 작사&작곡하는 싱어송라이터인데다 고혹적인 미모의 소유자로 앞으로의 행보가 더욱 기대된다. 2006년작인 이 앨범은 네오 소울과 고전적인 알앤비 넘버가 적절히 조화된 명반이다. 그녀의 홈페이지에서 더 많은 음악과 정보를 접할 수 있다.
3. 미국이 인정한 천상의 목소리, Charice - My inspiration (2009)
이 앨범은 최근 미국 진출 직전에 로컬용으로 발매한 영어 앨범으로, 2009년 6월 현재 필리핀 음반 판매량에서 Top 5에 진입해 있다. 수록곡 대부분이 기존 팝의 리메이크 넘버지만 그녀의 가창력을 엿보는 데는 부족함이 없다. 특히 머라이어 캐리의 I'll be there 커버를 시도한 데에서는 그녀 특유의 자신감이 엿보인다. 그 외에 스파이스 걸스의 히트곡을 경쾌한 팝 스타일로 커버한 'Mama', 수많은 가수들의 단골 리메이크 'You raise me up' 등이 그녀의 풋풋하지만 강력한 보컬로 재구성되었다.
반응형
'INSIGHT > 미디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분산된 메타블로그, 그리고 설치형 블로그의 트래픽 한계 (0) | 2009.06.17 |
---|---|
티스토리 통계 관련, 한줄 블로그 얘기 (2) | 2009.06.10 |
장기하와 얼굴들, 드디어 라이브로 만나다 (0) | 2009.05.22 |
[KOCCA] 모바일 콘텐츠 전략 - 모바일 음악 시대의 발전 전략 (0) | 2009.05.10 |
영혼이 담긴 인물 사진을 만나다, 카쉬전을 다녀와서 (2) | 2009.05.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