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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Australia

[서호주 자유여행] 관광객으로 만난 퍼스 vs. 여행자로 만난 퍼스

by nonie 2009. 3.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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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2월 26일 새벽 1시 30분, 비행기에서 내린지도 벌써 1시간 째다. 난 여전히 공항 리무진 버스에 몸을 싣고 있었다. 시내 외곽을 돌며 다른 승객들의 숙소를 모두 찍고 나니, 혼자만 버스에 덜렁 남았다. 앞으로 4일간 묵을 호텔 '할리데이 인(Holiday Inn)'은 시내 한 복판에 위치한 비즈니스 호텔이다. 가까스로 체크인을 하자마자 호주땅 밟았다는 감격에 젖을 틈도 없이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고, 어느 덧 본격적인 첫 하루가 밝았다. 아무런 계획도 없고 동반인도 없이 홀로 호주 땅에 떨어진 나, 이제부터 어떻게 여행을 해야 할까? 이렇게 막연한 느낌 참 오랜만이다. 무작정 시내에 있는 여행자 안내센터로 향했다. 마침 오전 11시에 시작하는 시티투어가 이제 막 출발하려는 참이다. 나처럼 막막한 표정을 띤 외국인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들고 있었다.

글, 사진 nonie 협찬 서호주관광청, 캐세이패시픽 항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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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스 자유여행의 시작, 무료 시티 투어
그래. 난 좀 겸손해질 필요가 있다. 서호주의 중심 도시 퍼스(Perth), 아직 한여름인 이 도시를 무작정 정면돌파 하겠다는 건 처음부터 무식한 발상이었던 게다. 아니나 다를까, 아침엔 추워서 짧은 여름옷 입은 걸 후회하게 만들더니, 정오가 가까워질수록 햇빛이 따갑게 꽃힌다. 길도 모르고, 어딜 가야 할지도 모르겠고...괜시리 여행 목적을 상실한 것만 같아 우울해질 무렵 눈 앞에 나타난 여행자 안내센터. 여기는 여행정보를 얻고 투어 예약을 해주는 Information centre와는 역할이 다르다. 자원봉사자 어르신들이 11시, 2시에 무료로 시티투어를 운영하고, 간단한 시티맵도 나눠주고 길 안내도 해주는 일종의 간이 여행센터인 셈이다. 마침 11시에 그곳을 방문한 게 정말 행운이었다. 한 할머니가 내게 말을 건다. "어디서 왔니? 난 멜버른에서 왔지. 우리 딸이 퍼스에 살아서 몇 번 왔었어. 근데 이 퍼스가 말이야. 나름대로 역사를 가지고 있거든. 투어에 참가해서 오늘은 제대로 돌아보려고." 

열 명 남짓한 여행객이 모여들자, 파란 티셔츠를 입은 자원봉사자 할아버지가 사람들을 빙 둘러세우고 자기 소개를 시킨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사람은 나 하나 뿐이다. 다들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호주, 뉴질랜드, 혹은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에서 온 이들이다. 모두가 졸지에 가이드를 졸졸 쫓아다니는 패키지 관광객같은 분위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무도 불만을 제기할 수 없다. 다들 나처럼 퍼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래서 막막했을 여행자들일 테니까. 그저 할아버지의 세심하고 연륜있는 설명에 귀를 쫑긋 세우며 퍼스에 얽힌 옛날옛적 이야기를 기꺼이 받아들일 뿐.

   









같은 경로를 따라서 걷다 보면 자연스레 친해질 거라는 나의 기대와는 달리, 유럽인들은 대부분 서로에게 말을 걸거나 친해지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커플 여행자들은 낯선 이에게는 거의 관심이 없다. (왜 그런지는 이해가 간다만) 위 사진에 찍힌, 시드니에서 온 금발머리 언니가 그나마 솔로 여행자인데다 나이도 비슷해보여서 말을 걸었다. 그녀 역시 휴가를 받아서 이곳 퍼스에 놀러왔다고 했다. "시드니와 퍼스가 많이 다른가요?"라고 물었더니 "많이 달라요"란다. 같은 나라라도 느낌은 확실히 다른가보다. (사실 난 지금까지도 뉴질랜드와 호주의 거리 풍경 차이점을 모르겠는데-_-) 그녀는 퍼스에 정말 와보고 싶었다고 했다. 끊임없이 할아버지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하며 여행자의 강한 의욕을 보였다.










도심 속에서 만끽하는 완벽한 자유, 스털링 가든
퍼스 시청 옆에서 할아버지의 해설이 한창 진행될 즈음, 갑자기 투어 인원이 슬그머니 한 명 더 늘었다. 위 사진에 보이는 멋쟁이 할머니였다. 설명이 끝나자 갑자기 박수를 막 치시며 "아이구~설명도 참 잘하시우!! 할아버지 이름이 뭐유? 나도 좀 들읍시다. 퍼스는 정말 훌륭한 도시에요. 호주의 역사는 정말이지....blahblah..." 하시며 뜬금없는 애국 타령을 하시는게다. 졸지에 투어 참가자들은 터지는 웃음을 참으며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할머니는 불편한 걸음임에도 우리 일행을 곧잘 따라오셨다. 하지만 스털링 가든 앞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소리없이 사라져버렸다. 아무래도 이 정원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으신 모양이다. :) 
내게도 가장 인상깊었던 곳 중 하나가 바로 스털링 가든이다. 고층빌딩으로 둘러싸인 평범한 공원인데도, 마치 투명한 벽이 그곳을 가리고 있는 것처럼, 완벽하게 딴 세상을 연출하고 있었던 게다. 잔디밭에 누워있는 평화로운 가족들의 모습, 나무 그늘 밑에서 책을 읽는 아가씨...도대체 저런 장면은 왜 한국에선 볼 수가 없는걸까. 뭐라고 설명할 순 없었지만 그들에겐 분명 꾸미지 않는 날것 그대로의 여유가 있었다. 그게, 한없이 부러웠다. 











스완 강변에서 다시 여행자로 돌아가다
벨 타워가 높이 솟은 스완 강변에 다다르면 시티 투어도 끝난다. 약 1시간 동안 같은 곳을 바라보며 걸어서일까. 사람들은 쉽사리 헤어짐을 말하지 못하고 어색하게 어물쩡거린다. 급기야 몇몇은 할아버지가 추천해준 강변 앞 멕시코 식당으로 발길을 돌리고, 나는 안면을 텄던 사람들과 가볍게 작별인사를 하고, 시드니 언니와 서로의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준 뒤 역시 작별을 고했다. 어느새 다시 혼자가 됐다. 조금은 아쉽고, 조금은 홀가분한 느낌이다.
  
조용히 강변을 걷다가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꽃는다. 익숙한 음악들, 새로운 풍경들이 합쳐져 또다른 추억의 한 장면을 만들어낸다. 스완 강변은 군더더기 없이 아름답고 평화롭다. 잠시 벤치에 앉아 강바람을 마셨다. 아. 드디어 퍼스에 왔구나. 다시 관광객에서 여행자로 돌아왔다. 다시 목적지 없는 떠돌이가 된게다. 하지만 1시간 전보다는 훨씬 여유가 생겼다. 속성 수업을 받았기 때문이겠지. 이 도시의 중심부를 한바퀴 싹 돌았고, 게다가 무료 버스(Cat)도 타봤으니까. 그러고 보면 투어나 패키지가 그렇게 지루한 것만은 아니구나. 여행하면서 꼭 필요할 때 적절하게 이용하는 센스가 필요하다는 거. 그런 기본적인 여행팁도 난 이제서야 배운다. 온전히 목적없는 여행은 이번이 처음이니까. 


그래도 아직 입맛은 여행에 적응을 못했나보다. 퍼스에서 돈 주고 사먹는 첫번째 식사가 김밥이라니. 나름 일식집에서 Take-out한 음식인데, 일종의 모듬 김밥이다. 치킨 데리야키 김밥도 있고, 아보카도 김밥도 있고, 참치 김밥도 있다. 차가운 김밥을 하나씩 입속에 넣으며 비로소 실감한다. 모든 것이 서툰 여행자가 된 내 모습을, 그리고 온전히 혼자가 된 내 모습을. 그럭저럭 외롭고, 적당히 설레고, 점점 즐거워진다.


Tip : 1시간 30분짜리 무료 시티투어에 만족하지 못했다면, 여행 전에 미리 반나절 투어 코스를 예약하는 것도 방법이다. ☞ 퍼스 핵심 관광 반나절 코스! 미리 예약하기(클릭)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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