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 X 6 Senses in Thailand - 수코타이 근교의 작은 마을, 나톤찬

수코타이의 전통 가옥에서 머무르는 홈스테이의 이튿날이 밝았다. 라오스에선 그저 멀리서 바라보았던 탁밧 의식에, 전통 복장까지 갖춰 입고 직접 참여하며 하루를 시작했다. 이곳 나톤찬 마을은 주민들이 힘을 모아 다양한 전통 문화를 계승하며 생계를 유지하는 커뮤니티 빌리지다. 이곳에서 머무른다는 건, 그들이 마련해 둔 다채로운 체험 코스를 해볼 수 있다는 의미도 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실에서 천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경험하며, 혹은 그들의 전통 바구니를 어설프게 짜보면서, 그동안 당연하게만 생각했던 수많은 것들의 소중함을 배운다. 








하루를 여는 의식, 새벽의 탁밧

단체 일정이 열흘 넘게 지속된다는 건, 단 하루도 늘어지게 늦잠을 잘 수 없다는 말과 같다. 특히나 오늘은 탁밧 의식이 있는 날이라, 해가 어슴푸레 뜰 무렵부터 서둘러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방을 나와보니 이미 주인 아주머니께서 우리가 공양할 물과 따뜻한 음식을 바구니에 정성스럽게 준비해 두셨다. 좀더 자고 싶은 마음에 볼멘 입이, 쑥 들어가고 말았다. 


부지런한 관광청 스탭들의 도움을 받아 전통 복장을 갖춰 입고 숙소 밖에 일렬로 섰다. 난 사실 얼마전 루앙프라방에서 보았던, 끝도 없는 스님들의 행렬을 상상했다. 하지만 이 날 우리에게 온 스님은 딱 한 분이셨다. 그렇다고 해서 탁밧의 의미가 달라지진 않는다. 일출로 아름답게 변해가는 하늘을 배경으로, 모두가 차분한 마음으로 의식을 마쳤다. 










아침식사 @ 나톤찬 홈스테이

아침을 먹는 장소는, 두 숙소동을 이어주는 역할을 하는 공간으로, 현지인 분들이 요리를 하는 부엌이자 식당이다. 그야말로 이 분들의 삶 속에 들어와 잠깐 신세를 지며 지낸다는 기분이 든다. 매일 아침 주인 아주머니의 푸짐한 인심을 느끼며, 맛있는 아침을 먹었다. 어느 날엔 따끈한 찰밥과 샌드위치, 그리고 고기국이 나오기도 했고, 어느 날엔 튀긴 빵과 오렌지잼을 넣은 샌드위치와 과일 한 아름이 놓여 있기도 했다.


새롭게 푹 빠져버린 모닝 드링크가 있으니, 바로 생 라임으로 만드는 현지 스타일의 꿀차다. 이 곳에서 나는 라임은 일반적인 라임보다 훨씬 큼지막하다. 이것을 바닥에 굴려 즙을 낸 후, 꿀과 소금과 더운 물을 넣으면 라임 허니티 완성. 이번 여행에 비타민제를 가져오지 않아서 피로회복이 관건이었는데, 아침에 이걸 한 잔 마시면 그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역시 단짠의 조합은 만고의 진리다. 










천연 염색 클래스 @ 나톤찬 커뮤니티 센터

어제 쿠킹 클래스를 했던 숙소 앞 센터에서, 오늘은 나톤찬의 자랑인 천연 염색을 배우는 시간이 펼쳐졌다. 박물관에서나 보던 물레(!)부터 옛 방식의 직조기까지, 그야말로 실이 천으로 변하는 과정을 총체적으로 경험하는 건 태어나서 처음이다. 


누에고치에서부터 만들어진 하얀 실에, 다양한 식물성 원료로 컬러를 입히는 과정부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나는 열매나 잎이 염색의 원료가 된다. 팔팔 끓인 천연 염료에 실을 수십 차례 담구어 색을 입히는 작업은, 엄청난 노동을 요하는 일이었다. 이렇게 염색된 실을 다시 진흙(머드)에 30회 이상 주무르고 짜내어 실을 부드럽게 만든다. 이렇게 만들어진 실은 씨실-날실을 이어주는 수동식 직조기에 넣고 손과 발을 이용해 천으로 만들어 진다. 극히 일부분을 해봤을 뿐인데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만원 이만원에 옷을 사서 입고 버리는 '패스트 패션' 세상에서 온 나에게, 이 엄청난 노동이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오히려 이런 시대에 살고 있기에, 이렇게 정성들여 만든 장인들의 수작업이 더 가치가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지금의 삶에 충실하고, 남과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풍요와 만족을 추구하는 태국의 'enough for life' 정신을 제대로 경험한 기분이다. 완전힌 천 한 장을 만드는 데 거의 1주일 가까이 걸린다고 하니, 나톤찬 센터에서 판매하는 핸드메이드 옷이 1천 바트 이상을 받는 게 절로 납득이 된다. 


그래서인지, 다들 이 작업이 끝나고 나선 바로 옆 옷 판매하는 곳으로 가서 옷과 스카프를 고르기 바빴다는 후문이.ㅎㅎ 머드 가공으로 엄청난 부드러움과 고퀄을 자랑하는 나톤찬의 블라우스와 원피스, 스카프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남아 스타일이 아니라 굉장히 세련된 디자인이 많았다. 또한 원단 자체가 꽤 두툼해서, 우리의 간절기에 입으면 적당한 봄 가을용 옷에 해당하므로 꽤나 살 게 많았다. 이렇게 겸사겸사 쇼핑까지 끝내고, 한 숨 돌리러 카페로 고고. 









오늘 나톤찬 주인 아주머니의 따님은 너무나 바쁘시다. 염색 클래스가 끝나고 맞은 편 커피집에 왔더니, 아까 염색을 지도해 주신 따님이 이번엔 커피를 내리고 계신.ㅎㅎ 덕분에 신선한 로컬 원두로 내린 훌륭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과 함께 잠시 숨을 돌린다. 오늘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맛있는 로컬 점심 @ Sornthongoil

어제 쿠킹 클래스에서 만들었던 '국물에 담긴 전병', 카오펍으로 유명한 식당에 왔다. 아니나 다를까, 너무 맛있어서 한 그릇 더 주문할 뻔 했다는. 사실 쌀가루 반죽에 채소를 싸서 따뜻한 국물을 부은 심플한 요리일 뿐인데, 어찌나 이게 맛있던지. 나중에 여행이 끝나고 각자 나라로 돌아간 우리 멤버들이, 얼마 후 메신저 단체방에 이 요리 레시피와 인증샷을 서로 올릴 정도였다. 유럽, 미국 등에서 도대체 쌀가루랑 기타 재료는 다들 어떻게 구한 건지 ㅋㅋㅋ 


수코타이 지방에는 카오펍 외에도 몇 가지 대표 메뉴가 있다. 국물이 없는 비빔면의 일종인 고이테오배(goi teo bae), 그리고 양념한 반죽을 대나무에 돌돌 말아서 만드는 미푼(mee pun)은 이 집에서 꼭 먹어봐야 하는 로컬식이다. 수코타이에서도 손꼽히는 맛집이고 가격도 엄청나게 저렴하니(메뉴 1개 당 25바트=1천원 선) 수코타이와 나톤찬을 여행한다면 필수 맛집 코스.:) 


구글 지도 상의 위치는 여기










농가에서 바구니를 짜고, 열대 숲 속으로 

현지식 만들기, 천연 염색을 지나, 바구니 짜기까지 왔다. ㅎㅎ 정말이지 이런 장소와 체험을 다 찾아내서 이렇게 알찬 코스를 구성한 태국관광청의 엄청난 노력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가 없다. 바구니를 생산하는 곳이 나톤찬 센터와 조금 떨어져 있기 때문에 뭔가를 타고 이동을 해야 하는데, 이번 교통수단은 바로 이툭(e-tok)이라고 하는 농기구를 개조한 툭툭이다. 태국의 농가에서도 일반적인 형태는 아니며, 이쪽 지역에서만 주로 볼 수 있는 기구라고 한다. 길다란 경운기 뒤에 마차(?)처럼 좌석을 달아 놨는데, 소음과 매연은 제법 심하고 느리지만 꽤 재미나긴 하다. 


이걸 타고 한참을 달려, 바구니를 생산하는 작은 센터에 방문해 본격적으로 바구니를 짜기 시작했다. 근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보기엔 매우 쉬워 보이는데, 나뭇가지가 내 맘대로 휘어지거나 넘어가지를 않는다. 신들린 듯이 나뭇가지를 휘리릭 조립하는 할머님들의 손길에 의존해서, 겨우겨우 하나를 완성했다. 체험 중에서는 바구니 짜기가 가장 하이레벨이었다는.ㅠ 











그런데 이 바구니를 괜히 짠 게 아니라, 각자 만든 바구니를 가지고 수행할 미션은 따로 있다. 다시 이툭을 타고 열대나무가 우거진 산 속으로 들어가서, 리찌와 비슷한 맛의 현지 과일을 수확하는 게 오늘의 최종 목표였던 것. 아악. 그런데 간밤에 비가 내려 땅도 너무나 질퍽하고 벌레는 어찌나 많은지ㅜㅜ 대도시 출신의 우리 자매와 말레이시아 자매는 그야말로 질색팔색 ㅋㅋ 그런데 미국과 유럽에서 온 멤버들은 이 미끄럽고 습한 땅을 잘도 밟아 언덕까지 올라가서, 바구니가 터지도록 열매따기에 열을 올린다. 


이 때는 엉망진창이 된 신발을 보며 그저 울상이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언제 여행에서 이만한 추억을 쌓을까 싶다. 특히나 몇 년째 루틴화된 비즈니스 여행을 하는 나에게, 이렇게 자연 그대로의 환경에서 순수한 즐거움을 느끼며 많은 사람들과 추억을 공유하는 여행은 정말정말 드문 일이다. 아마도 평생 잊지못할, 태국 북부에서의 시간이 또 하루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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