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교실의 분주한 풍경이 아니다. 크라이스트처치 시내 한복판에 있는 캔터베리 뮤지엄의 평소 풍경이다. 유물 앞을 가로막은 유리벽이 없는 것도 그렇지만, 바닥에서 이런저런 도구들을 가져와 만들고 체험하는 모습은 한국의 박물관에서는 보기 힘든 생소한 풍경이다. 크라이스트처치의 과거를 흥미롭게 변주한 캔터베리 뮤지엄에서는 다양한 체험코스와 창의적인 전시관을 통해 뉴질랜드의 밝은 미래를 짐작해 볼 수 있다.
옛 거리를 그대로 재현한 빈티지한 전시관, Christchurch Street
백년 전 신발 가게 앞에서, 커다랗게 부푼 코르셋 앞에서, 오래된 파이프 앞에서, 나는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모든 것이 옛날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스트릿을 거닐며, 크라이스트처치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본다. 박제된 '진짜' 유물보다, 때로는 진지하게 재현된 '가짜' 인형이 더 역사를 와닿게 만들어 준다는 걸, 이곳은 보여준다. 구두 가게, 잡화 가게 등을 들어갈 때마다 실감나는 사운드가 흐르고, 인형 앞에 서면 옛날 얘기를 들려준다. 뉴질랜드의 아이들은 이렇게 역사를 재미나게 배우며 자라겠지.
이 역사의 거리에 재현된 여러 점포들은 단순히 디스플레이 정도로 만든 수준이 아니다. 인형의 집 미니어처는 얼마나 정교하게 만들어졌던지, 오래된 미싱에 감긴 실에서도 얼마나 디테일이 느껴지던지. 가게 하나하나를 들어가볼 때마다 이 집엔 뭐가 있을까 설레며 두리번거리던 기억이 생생하다.
뉴질랜드의 현재를 담은 3층 전시관 탐험하기
캔터베리 뮤지엄 1층이 스트릿과 고대 유물, 빅토리안 뮤지엄 등 역사적인 유물을 전시하고 있다면, 3층(2층은 전시없음)은 공룡부터 미이라까지, 과학과 역사를 융합한 새로운 테마의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화산 활동으로 지진과 자연재해가 잦은 뉴질랜드답게, 지형과 기후 등에 대한 이해를 돕는 교육적인 전시관이 매우 잘 만들어져 있었다. 아이처럼 이런저런 체험관을 돌면서 사진도 찍고 비디오도 보고.
패치워크로 예쁘게 만들어진, 지구와 환경에 대한 정보들.
우아하게 재현된 인테리어 전시관 천장엔, 이렇게 거대한 거미(?)가.
해양 관련 전시관에는 이렇게 멋진 스톤 디스플레이가.
리빙 캔터베리. 옛 살림살이의 풍경을 그대로 재현해 놓았다.
특히 내 시선을 끌었던 전시관은 일상생활을 재현해놓은 부스였는데, 바구니에 담긴 빨래감부터 테이블에 놓인 찻잔까지 옛 유럽 사람들이 뉴질랜드에 이주해와서 어떤 생활을 했는지 자연스럽게 연출해 놓았다. 1층에 깨끗하게 전시된 도자기나 원주민 유물도 물론 의미있었지만, 캔터베리 뮤지엄의 진정한 경쟁력은 다양한 체험과 생생한 재현으로 보통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조명했다는 점이 아닐까. 유럽과 원주민의 문화가 절묘하게 뒤섞여 있으며, 아직도 여왕을 모시는 입헌군주제에서 비롯된 귀족적인 취향, 태평양 한 귀퉁이에서 화산과 지진을 이겨내고 이뤄낸 문명의 섬, 뉴질랜드의 identity를 충실하게 담고 있는 박물관이다. 입장료는 무료 및 도네이션.
이 여행기는 2008년 11월 뉴질랜드를 여행했던 사진과 글로 작성한 것이다. 지난 2011년 2월 22일, 크라이스트처치는 규모 6.3의 대지진으로 커다란 피해를 입었고, 캔터베리 뮤지엄은 큰 피해는 입지 않았지만 일부 복구 중이라고 한다. 웹사이트
http://www.canterburymuseum.com 참조.
2012년 3월 30일 추천 캐스트 - 네이버 메인! ;)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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