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의 그린벨트는 한국의 '그린벨트'와는 그 의미가 사뭇 다르다. 이곳의 그린벨트는 개발은 하되 자연과 조화를 이룬 마카티의 거대한 쇼핑 에어리어를 말한다. 열대정원 사이로 솟아있는 5동의 쇼핑몰은 제각기 다른 브랜드 매장을 유치하고 있으며, 다양한 레스토랑과 카페, 야외 휴식공간, 그리고 박물관과 교회(!)까지 모두 감싸안고 있다. 삭막한 마카티의 도심 풍경에 나름 심장같은 역할을 하는 그린벨트, 그 속을 헤매고 다니던 어느 오후.
그린벨트 4 앞에서 보이는 풍경.
잠시 다른 세계에 와있는 듯한 쇼핑 지대, 그린벨트
살세도 빌리지에서 시장 구경을 마친 후 무작정 택시를 타고 '그린벨트로 갑시다!'를 외쳤다. 근데 드라이버가 '그린벨트 몇 번으로 갈거냐? 교회 가는거냐?'고 묻는 거다. 여기서 머뭇거리면 바가지 쓸까봐ㅜ 대충 3동으로 가자고 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린벨트는 총 5동으로 나뉘어 있어 쇼핑 목적에 따라서 찾아가면 된다. 그린벨트 3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 아직은 한산하다.
전 세계 대도시의 많은 쇼핑몰을 돌아다녀봤지만, 이런 쇼핑 스팟은 처음 보았다. 아무리 멋진 쇼핑몰이라 할지라도 건물 자체가 멋지거나, 브랜드 셀렉션이 좋거나, 딱 그 정도다. 하지만 거대한 열대 정원 속에 위치한 쇼핑몰 그린벨트는 공원과 쇼핑몰을 훌륭하게 결합한 사례다. 야외 휴식공간도 넉넉하고, 도시의 공공시설인 공원과 교회를 끌어들여 다양한 기능을 제공한다. 무엇보다 내가 너무나 감동한 수준급의 박물관 '아얄라 뮤지엄'도 이곳에 있다. 5동의 쇼핑몰이 부족하다면, 옆에 있는 글로리에따와 SM 몰, 러스탄스 백화점으로 바로 갈수도 있다.
그린벨트 5의 빈티지숍, ac+632
ac+632의 디스플레이.
ac+632의 디스플레이.
그린벨트 5의 세련된 빈티지 셀렉트숍, ac+632
그린벨트 3에서 탑샵(Topshop)과 무인양품을 둘러보고 나서는 별다른 볼거리가 없어서 5동으로 가보기로 했다. (마닐라에도 있는 탑샵과 도로시 퍼킨스가 왜 한국에는 아직인지ㅜ) 2007년에 가장 마지막으로 완공됐다는 그린벨트 5는 좀더 캐주얼하고 밝은 분위기다. 명품 매장으로 즐비한 1층을 지나 2층을 돌다 마음에 드는 숍을 하나 발견.
디스플레이가 독특해서 아무 생각없이 들어갔는데 안에는 예쁜 것들로 가득가득. 하나하나 포장된 미니 올리브비누 세트부터 영국제 커트러리, 빈티지한 가구와 소품들....어설픈 셀렉션이 아니라 내공이 강력해 보였다. 만약 월페이퍼 시티 가이드나 럭스(LUXE) 마닐라 편이 있다면 1순위로 실려야 할 가게다.
가벼운 파스타 런치 @ CIBO
ac+632 맞은 편에 있는 캐주얼한 카페에 들어가 앤초비가 든 펜네와 레모네이드 한잔을 주문했다. 음식이 나온 다음에 직접 갈아주는 후추, 그리고 컵 가득 들어 있는 레몬 슬라이스가 마음에 든다. 환한 2층 창가 자리에 앉아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며 심심치 않게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혼자서도 밥 먹기 참 좋은 곳. 우리나라에도 이런 부담 없는 느낌의 카페가 생겼으면 좋겠다.
그린벨트 3의 로비. 크리스마스 무드가 가득하다.
로비에서 호텔 셔틀버스를 기다리다
건물을 넘나들며 한참을 쏘다니다 보니 어느덧 해가 져간다. 만다린 오리엔탈 호텔 전용 셔틀버스가 1시간에 한 대씩 온단다. 호텔에서 미리 받아둔 시간표를 들고 그린벨트 3의 로비에서 한참을 기다렸다. 다행히 로비에 쇼파가 있어서 편안히 앉아서 쉰다. 첫날엔 와이파이가 되지 않았는데 다음날엔 이 장소에서 인터넷을 쓸 수도 있었다.
마닐라는 열대 기후의 더운 도시인데도, 크리스마스를 1달 여 앞두고 온통 성탄 준비로 분주한 풍경이다.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필리핀에서도 성탄절은 매우 큰 명절이라서, Thanksgiving이 끝나면 바로 완연한 성탄 모드로 바뀐다고 한다. 내게도 성탄절은 1년 중 가장 행복한 날이어서, 여름 나라인 것도 잊고 이곳의 연말 분위기에 흠뻑 빠져 하루를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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