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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기찬 시장을 뒤로 한채 향한 다음 코스는 '그린벨트'. 발전하는 마닐라의 단면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거대한 쇼핑지구로, 여행 전부터 가장 기대했던 곳이다. 하지만 오로지 소비만을 목적으로 꾸며진 쇼핑몰에서 인파를 비집고 다녀야 하는 일정은 날 금새 지치게 했다. 크레페로 유명하다는 한 카페에 자리를 잡고, 오늘 하루 내 눈에 비친 마닐라와 마카티의 첫인상을 천천히 돌아본다.
카페 브렌튼은 그린벨트 3에 있는 밝고 캐주얼한 카페다. 더위에 살짝 지쳐갈 즈음이라
시원한 아이스 커피 한잔을 주문했다. 이렇게 저렇게 늘어나버린 짐들을 내려놓은 채, 잠시 숨을 고른다.
오늘 아침, 공항 근처인 리조트월드를 벗어나 처음으로 택시를 타고 도심으로 향하는 길,
차창 밖으로 엄청난 빈민촌의 행렬을 목격했다. 망가진 도시의 전형을 보여주는 마닐라의 단면.
무엇이, 어디서부터 이 도시를 이토록 병들게 했을까.
그러다 갑자기 비까번쩍한 고층 빌딩과 한적한 도로로 모습을 바꾼 도시는
마카티에 입성했음을 알린다. 언제 그랬냐는 듯 선진국의 외형을 자랑하는 이 도시에는
지금 내가 커피를 마시고 있는 그린벨트가 거대한 심장처럼 자리잡고 있다. 한편으로는
안전한 지역으로 들어온 데 대한 안도감이 드는 것도, 슬프지만 어쩔 수 없다.
크레페가 유명한 카페여서 과일이 든 것으로 하나 주문해봤다. 망고와 바나나, 파인애플이
부드러운 크레페에 감싸져있다. 마닐라다운 맛. 맛있다.
오후 내내 그린벨트를 비롯해 옆에 붙어있는 글로리에따, Rustan's 백화점 등을 한바퀴 돌아보고,
러스탄스 지하 슈퍼마켓에서는 몇 가지 수입식료품도 샀다.
사실 완전히 가벼운 마음으로 다닐 수 만은 없는 지금, 이래저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하다.
하지만 지금 이순간 내게 주어진 많은 행운과 기회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자.
아직 자국 휴양지인 보라카이도 못가봤다는 제이미가 내게 한 'You are so lucky'란 말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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