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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독서

'서울사용설명서 2084'를 읽고 떠오른 빌딩, 강남 파이낸스 센터

by 여행강사 김다영 nonie 2009. 7. 3.





한창 해외여행 에세이만 줄줄이 읽어대다가, 갑자기 손이 옮겨간 테마는 바로 '서울'이다. 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살아왔던 도시, 그래서 어쩌면 더 모르는 것도, 숨겨진 것도 많을 것 같은 서울에 대한 책들. 최근 서울을 '골목'이나 '맛집' 등으로 재조명한 책들이 많이 나오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연세대 이현수 교수의 '서울사용설명서 2084'는 제목만큼이나 다채로운 사진과 글이 눈에 들어왔다. 건축학의 전문가인 저자가 꼽는 서울의 대표적인 빌딩을 제대로 음미하는 법, 서울과 한국을 마케팅하자는 내용 등 짧막한 에피소드의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간 지나쳐왔던 서울의 고층 빌딩과 조형물에 숨겨진 비화, 혹은 아케이드 상가의 멋진 레스토랑에 대한 시선은 신선하게 다가왔다. 물론 종종 비춰지는 자본주의에 대한 찬양(?)이 좀 거북스럽긴 했지만. 책에 소개된 리움 미술관이나 헤이리 등은 조만간 꼭 가보고 싶은 명소다. 아직도 서울에 갈 곳이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그런데 이 책에 소개된 LIG빌딩, 교보빌딩 등을 보면서 갑자기 떠오른 빌딩이 있다. 바로 강남 파이낸스 센터(구 스타타워). 테헤란로의 직장인이라면 하루에 한 번씩은 멀든 가깝든 지나쳐가는 거대한 빌딩. 내게는 짧고 굵었던 테헤란 라이프의 많은 시간을 보냈던,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담긴 장소다. 다른 이들에게 권할 만한 볼거리가 있는 건 절대 아니지만. 아, 몇몇 맛집은 갈곳 없는 역삼동에 지인이 찾아왔다면 함께 갈만한 곳도 있긴 하다.

2년 전, 지금처럼 더웠던 어느날. XO게살볶음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도 모른채 혼자 떠들어야만 했던 차이니즈 레스토랑 '푸타오'에서의 2차 면접(그때 받은 질문 중 가장 황당했던 건 '커피 좋아하세요?'였다), 가끔 일이 잘 안풀릴 때 조용히 걸어내려가 요상한 매니큐어를 마구 칠해댔던 '올리브 영'에서의 짧은 휴식, 직장인의 비애를 느낄 만큼 힘든 날이면 달콤한 카야잼 토스트와 밀크티로 스스로를 위로했던 '야쿤 카야'에서의 점심 시간, 12월의 마지막 출근날 긴 휴가를 끝내고 달라진 모습 보여주겠다며 '스무디킹'에서 빈 속을 달래던 내 모습....이 모든 게 그 미로같은 파이낸스 센터 지하 식당가에서 만들어간 나의 눈물날 만큼 소소한 추억들이다. 누군가에겐 참으로 건조한 일터 혹은 쇼핑상가일 그 곳이, 스토리가 있는 내게는 소중한 기억으로 간직된다는 사실, 참 재미있다.

이젠 또다른 곳에 또다른 추억을 만들어가야 할, 나의 서울. 당분간 서울을 그려낸 책들을 더 찾아서 읽게 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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