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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캐넌 스트리트에서 어느 정도 쇼핑과 사람 구경을 즐기고 나면
시내 중심가 한켠에 떡 하니 자리잡은 웅장한 건축물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글래스고의 자랑거리 중 하나이자 여행 코스로도 널리 알려진 현대미술관,
GOMA(Gallery of Modern Art)다. 사실 글래스고는 딱히 특별한 볼거리가
없는 것도 사실이지만, 이곳 현대미술관은 1700년대에 지어진 건물과
수준높은 전시물, 그리고 무료 입장이라는 메리트가 있어 들려보기로 했다.
내부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천장이다.
아름다운 돔 형식의 둥근 천장 주변에는 은은한 조명이 켜져 있어
전체적인 실내 분위기를 받쳐주고 있었다. 위로 향하는 검은 계단들이
미술관의 내부 구조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GOMA는 1996년에 오픈, 올해로 개관 12주년을 맞는다. 문을 연지는 얼마
안됐지만 이 건축물이 지어진 지는 300년이 넘었다. 1778년 세워진 이래로
스코틀랜드 은행 등이 인수하는 등 다양한 용도로 쓰여 오다가 비로소
현대 미술관으로 자리잡게 된 것이라고 한다.
미술관은 지상 5층, 지하 1층 규모다. 1층 로비는 큼직한 전시물들이
배치되어 있는 발코니와 기념품 숍, 2~4층까지는 갤러리, 5층은 스튜디오,
지하 1층은 도서관 겸 카페로 꾸며져 있다. 앞서 소개했듯 입장은 무료다.
물론 대부분의 영미권 전시관이 그렇듯 도네이션은 자유롭게 받고 있다.
이곳의 모토가 '오픈 뮤지엄'인 만큼 주말을 포함해 거의 대부분 문을 열고
자유롭게 드나들며 현대 미술을 접할 수 있다.
우선 1층에서 Optical Art의 일종이라는 작가의 전시를 가볍게 구경했다.
왜 그런거 있지 않은가. 거대한 캔버스 전체가 일정한 패턴으로 채색되어 있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움직이는 것 같은;; (매직 아이라고 해야 하나;)
많은 방문객들이 그 그림들 앞에서 약간의 현기증을 경험하고 있었다.ㅎㅎ
관람 후에는 2층 갤러리로 이동.
2층으로 올라가니 아까 천장에서 봤던 둥근 계단을 에워싼 벽에 둥글게
뭔가가 전시되어 있었다. 근데 설마 이게 전시물의 다는 아니겠지??
뭔가 의아한 마음으로 벽에 붙어 있는 독특한 미술품을 구경해본다.
생활의 도구인 접시에 그려낸 그림부터 스코틀랜드를 상징하는 꼴라주 작품까지
형식과 관념을 탈피하는 신선한 작품들. 미술을 잘 모르는 nonie의 마음도
조금씩 워밍업되며 열려가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정작 갤러리로는 어떻게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위에서부터 내려오면서
보는 게 편하겠다는 생각에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기로 한다.
엘리베이터 내의 안내판에도 세심한 센스가 엿보인다. :)
맨 윗층은 전시관이 아니므로 일반 관람객은 4층 갤러리에
내려서 밑으로 내려가며 차례로 구경하면 된다.
4층에는 다양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위와 같은 일종의 미디어 아트도 이곳에서 관람할 수 있다.
형광등으로 조명을 비춰 해골 모양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진 작품이다.
에딘버러에서도 느낀 거지만, 얘네들은 날씨가 안 좋아서 그런지
왠넘의 호러 투어, 귀신의 집 투어같은 여행 상품도 많고
유난히 해골 그림 참 좋아한다. 관련 액세서리나 기념품도 많다;
(갤러리 내에서도 대부분 사진 촬영은 금지다. 내 사진도 갤러리
바깥에 전시된 작품들이 대부분이다. 참고할 것)
요건 사진 작품이다. 아주 일상적인 주방의 모습인데,
현대적인 주방기기를 대표하는 전자렌지 앞에 놓여진
옛스런 티팟이 대조적이다.
홍차를 좋아하는 nonie는 스코틀랜드에서 참 행복했다.
환율이 비싸서 홍차 쇼핑을 많이 하지는 못했지만
피쉬앤칩스를 먹는 식당에서도 홍차를 세트로 주문해 마셔볼 수도 있었고
현지인들이 홍차 마시는 모습도 많이 보았고,
이렇게 현대미술관에 와서까지 옛 티팟들을 구경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들에게 과거나 지금이나 홍차는 뗄 수 없는 일상이자 문화다.
1층에서 천장을 볼때는 몰랐는데
위에 올라가서 천장에 달려있는 저 시커먼게 뭔가 했더니
'미키마우스'다. 뭔가 키치한 느낌;;;
뻣뻣한 광목천으로 만들어진 드레스, 그 위에 그려진
그들의 일상적 오브제와 문구들. 내 동생은 저 작품에서 한동안
발을 떼지 못했다.
허리띠 부분에는 이렇게 써있다.
"Life is easier now, but are we happy?"
그런가. 내 스스로에게 자문해본다.
위에서 내려다본 1층 로비의 모습.
2층 갤러리에서 간단한 전시 관람을 거쳐서 위의 커다란 그림을 따라
걸어본다.
그 그림의 끝에는 이렇게 아이들만의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벽에 걸려진 예쁜 파레트들, 조명이 설치된 책상들, 바닥에 자유롭게
앉아서 그림을 그리고 놀 수 있도록 놓아둔 방석들까지...
어쩌면 GOMA는 이곳 아이들에게 상상력을 펼칠 수 있는 최적의
공간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아이들의 흔적 너머로 바라보는 글래스고는 어쩐지 이전보다
더 희망차 보인다. :)
우리가 이곳을 그저 어른의 시선으로 구경만 하고 있는 동안에도
아빠 엄마 손을 잡고 이곳을 찾는 아이들이 꽤 많았다.그저 부러울 뿐.
자. 이제 1층으로 내려가면 GOMA의 기념품숍이 기다리고 있다.
책 <런던, 나의 마케팅 성지순례기>에서도 저자가 소개하는 것처럼
영국의 미술관 기념품숍은 대부분 전시물 만큼, 혹은 그 이상의 구경거리이며
볼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은 GOMA의 기념품숍에서는
특별히 새롭거나 눈에 확 띌만한 득템거리는 없었지만 구경은 할 만 했다.
디스플레이된 상품 중에는 제이미 올리버의 머그잔이 눈에 띈다. I'm Single이라는
대문짝만한 문구와 함께. 이 사람이 지금 누구 놀리나.-_-
하지만 내가 GOMA에서 가장 맘에 들었던 공간은 바로 지하 1층의 도서관이다.
이곳이야말로 시민들의 예술적 토양을 만들어주는 공공 시설로서의 역할을
충만히 해주고 있었다. 미술과 예술 분야 뿐 아니라 나의 관심분야인
여행, 문학과 기타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꽤나 많이 보유하고 있다. 물론
예술쪽 외의 다른 책들은 최신 서적이 조금 부족한 것이 흠이다.
나는 아픈 다리도 쉬어갈 겸 푹신한 소파에 앉아 "영국인들의 요리법"같은
두꺼운 요리책을 넘겨가며 한참을 쉴 수 있었다. Martin Parr의 "Objects"라는
특이한 2008년도판 사진집도 봤는데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사진가인 그가
평생에 걸쳐 모은 잡다한 물건들을 사진집으로 엮은 책이다.
그 컬렉션이라는 게 예를 들면 오사마 빈라덴 사진이 들어간 시계를
국가 별로 다 모은다던지, 스파이스 걸즈가 인기 있을 무렵 멤버 별 사진이 박힌
한정판 과자 포장지같은 것을 시리즈로 모은 것이다.
사소하고 무가치하고 여길 수도 있는 것들이지만, 희소성이라는
관점에서는 엄청난 가치를 지닐 수 있다. 보면서 느끼는 점이 많았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센터가 따로 마련되어 있으며 자기 컴을 가져오면
무선을 쓸 수 있게 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아가씨가
노트북으로 싸이를 하고 있더라.;; 나도 노트북 가져올까 하다가 말았다.-_-
암튼 GOMA에서 보낸 오후 한때는 밥을 많이 먹었을 때보다 뭔가
더 배부른 느낌? :) 아. 정말 구경도 잘하고 배우기도 많이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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