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 여행을 앞두고 딱 한 가지 기대하지 않은 것이 있다면, 그것은
먹거리다. 스코틀랜드를 포함한 영국 전역에서 뭔가 맛있는 걸 먹었다는
얘기는 들어본 적이 없다. 여행에서 음식의 비중이 너무나도 높은 nonie에겐
영국의 가지치기 나라들이라 할 수 있는 이전 여행지들 - 캐나다와 뉴질랜드 - 이
기대치를 팍 낮춰주었다. 죽었다 깨나도 현지식만 먹자던 nonie의 여행 방침은
이번 여행에서 비로소 깨졌다. 여행 가방을 가장 많이 차지한 물건들은
다름 아닌 한국 음식들. 컵라면, 햇반, 참치, 깻잎통조림 등...거의 완전무장 수준.

하지만 그 뻔한 피쉬앤칩스도 본고장인 영국에서 먹는 맛은 뭔가
다르지 않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는 글래스고에 오면서 조금씩 커져갔다.
사실 매일 저녁 고추장에 밥 비벼먹는 데도 살짝 질려버린 터였다.
그러던 중 숙소 맞은 편에 있는 피쉬앤칩스 간판을 발견! 드디어 현지인의
음식을 맛보기로 했다. 티볼리(Tivoli)라는 이름의 오래된 레스토랑이다.





(nonie의 거대한 검은 실루엣은 살짝 무시해 주시길)


글래스고 도착한 첫날, 숙소에 짐만 놓고 나온 직후에다 점심 때라
무척 배가 고픈 상태였다. 사실 어딜 가나 동양인은 눈에 띄지도 않고
특히나 이 식당엔 현지인들의 익숙한 방문으로 가득해서 어떻게 주문을
해야 할지, 뭘 먹어야 할지 처음엔 입구에서 한참을 서성였다.
그러다 에라 모르겠다, 배고프니 뭐가 나와도 먹겠다는 심정으로 일단 착석.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바에서는 열심히 음식을 만들어내고 있다.
내부가 비좁은 줄 알았더니 안으로 들어갈수록 좌석이 꽤나 많고
손님도 많다! 내가 앉은 자리는 입구에 가까운 쪽. 뚱뚱한 영국인은 여기 어떻게
앉을까 싶을 정도로 의자와 테이블 사이는 매우 좁았다. 벽에는
옛날 레스토랑의 전경을 담은 액자와 방문객들의 흔적으로 빼곡했다.
이곳의 역사를 읽을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낡고 허름했지만, 아주아주
오래 전부터 이곳에서 자리를 지키면서 피쉬앤칩스를 만들어낸 전통 있는
식당이었던 것이다.






조그만 테이블에는 양념통과 함께 글씨로 빼곡한 메뉴판이 꽃혀 있었다.
피쉬앤칩스만 파는 줄 알았는데 간단한 이태리 요리도 많이 있었고,
피쉬앤칩스도 여러 세트로 구성되어 종류가 꽤 많았다. 뭘 먹을 지 한참
의논 끝에 우리가 시킨 것은 밀크티와 빵 한쪽이 포함된 피쉬앤칩스 세트였다.
세트 1개에 티 1잔을 더 추가해도 10파운드를 넘기지 않는다. 서민의 음식 맞구나.  






음식에 앞서 따끈한 밀크티가 서빙됐다. 한눈에 보기에도 수십년은 더 되어 보이는
오래된 찻잔과 접시. 왠지 집에서 끓여먹던 밀크티와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
그냥 마셔도 고소하고 담백하지만, 설탕을 약간 넣어주면 더 맛있다.






밀크티에 입 데일 뻔한 nonie의 설레발 광경;;;  사실 차분해 보이지만
무척 감격하고 있는 순간이다. 우리가 차를 마시는 순간에도
끊임없이 사람들이 이곳을 찾고 있었다.

근데 참 신기하단 말야. 튀김 요리와 밀크티를 같이 먹다니.;;; 아무리
내가 선택한 세트지만 참으로 괴상한 조합이다.
근데 우리 뒤에 앉아 계신 한 할아버지도 같은 세트를 주문해 드시는 걸 보고,
아. 현지인들은 이렇게도 먹는구나 하며 안심-_-.






드디어 피쉬앤칩스 출현! 사진에는 없지만 버터를 얇게 바른 식빵 1장도
함께 나왔다. 첨엔 이걸 어떻게 먹는 건가;; 했는데, 역시나 뒤에 앉은 할아버지의
시범을 볼 수 있었다. 그 빵에다 감자와 생선튀김을 얹어서 먹는 것.
감자는 매우 두껍게 썰어서 갓 튀겨진 채 나왔고, 생선튀김은 커다란 덩어리 째로
튀겨져 나왔다. 아..정말 비니거와 케첩이 없다면 이걸 우찌 다 먹는단 말인가.






하지만 배고픔은 느끼함을 이긴다. 우선 레몬을 꽉 짜서 생선튀김 위에 뿌린 다음
케첩을 감자에 듬뿍 뿌린 채 와구와구 맛나게 잘 먹었다. 결국 다 먹지는 못했다.
참고로 할아버지의 세트는 우리보다 나중에 나왔는데 혼자 이걸 다 드시고도
아쉬움에 한참 동안 자리를 뜨지 못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대부분의 현지인들은
이걸 1인분으로 먹더라. 아...대단하다;;;





사실 영국인들도 영국의 요리가 그리 다채롭게 발달되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다.
대신 전 세계의 다양한 식도락을 즐기고 있으며, 그만큼 여행자들도 각국의 요리를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기도 하다. 이곳 글래스고에도 아시아 음식점들이 곳곳에
있다. 이 전 여행 때는 한국 음식이 그리울 땐 쉽게 찾을 수 있는 중국 음식점을
찾곤 했는데, 이번 여행에서는 시원한 국물이 너무 땡겼다. 그래서 선택한 곳이
바로 일본 라멘집 '이치반'이다. 충동적으로 들어간 것이긴 하지만, 알고보니
현지 가이드북에 소개될 만큼 유명했고 여행객보다는 현지인이 훨씬 많았다. 

 
이유인 즉슨, 일본 음식이 너무나도 인기가 많았기 때문. nonie 역시 이번에만
느낀 것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일본 음식이 차지하는 위상이 갈수록 높아만
가고 있음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현지인들은 이곳에 와서 일본 이름으로 된
음식을 시키면서 젓가락질을 배우고, 먹는 방법과 계산법까지도 일본식으로 배워가고
있었다. 서버들은 일일이 친절하게 안내해준다. 느끼는 바가 많았다.
사실 글래스고에도 어딘가 한국음식점은 있겠지만, 대부분의 한식당은 한국 관광객이
이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중국 음식점은 아시아 유학생들이나 돈없을 때 싸게
먹는 곳으로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일식당의 풍경은 전혀 다르다. 사람들 표정부터가
다르다. 일본을 향한 동경과 일본 문화를 즐긴다는 우월감. 그냥 밥 먹으러
들어왔는 데도 한눈에 그런 표정들이 보일 정도였으니, 말 다한거지 뭐.
어쨌든 이곳엔 현지인들이 주말 오후에 점심을 먹기 위해 커플, 가족 단위로
많이들 찾고 있었다. 실내가 꽤 넓은 데도 줄까지 서서 대기하고 있었다.






규동을 시켜봤다. 커다란 그릇에 밥과 고기, 꼭대기에 생강초절임이 얹어 나온다.
뭔가 일본에서 먹는 맛과는 완전히 다른 맛이긴 한데 별다른 거부감은 없었다.
서양인에게 맞춘 밍밍한 맛이 흠이랄까. 양은 정말정말 많았다.






이집의 대표 라멘 메뉴라 할 수 있는 '이치반 라멘'이다.
이것도 매우 독특하다;; 맑은 국물은 시원한게 마치 샤브샤브 국물같은 맛이다.
특이한게 철판에 구운 닭고기가 들어있다는 것. 가슴살이라 퍽퍽해서 많이는
못먹었다. 다른 건더기도 기름기 없이 담백한 것들이어서 면과 함께 푸짐하게
건져먹는 맛이 있었다. 역시 양은 많았다. 규동과 라멘 모두 7~8파운드 선. 다른
현지 레스토랑에 비해 저렴하거나 보통 수준의 가격이다. 물론 도시락(벤또)이나
 스시 메뉴는 12파운드 선으로 조금 비싸다.



사실 너무 깔끔한 맛이어서 일본의 본토 요리와는 거리가 있다. 완전히 현지화된 일본 음식.
(그에 비해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먹었던 라멘은 정말 일본 음식과 가까웠던 기억..)

어쨌든 간만에 시원한 국물 먹어주니 그동안 느끼했던 속이 쏵 풀리는 듯 했다.
기운 내서 또 열심히 돌아다녀야지. 하는 각오를 하며.
현지식 vs. (현지화된) 일본 음식 체험은 여기서 마무리.

이제 여행기는 에딘버러로 다시 Ba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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