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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K/단상

설거지

by 히치하이커 김다영 nonie 2007. 10. 6.


간만에, 설거지를 했다.
귀찮아서 미루고 미루다가, 저녁 먹고 어쩔 수 없이 싱크대 앞으로 다가간다.
요즘 머릿 속이 복잡해서인지, 설거지 하나 하면서도 별별 생각이 다 든다.

한 달에 한 두 번이나 할까. 그런데도 설거지를 시작할 때는
혹시나 손이 상하지는 않을까, 설거지 끝나면 꼭 핸드케어를 해야지...등등
참 한심한 걱정만 하고 있다. 엄마한테 핸드크림 선물해준 적이 언제였던가.
나는 몇 만원짜리 핸드크림 쓰면서 엄마한테는 고작 작년에 터키여행 다녀와서
안 쓴다며 던져준 싸구려 핸드로션이 마지막이다. 참, 못된 딸이다.

평생 엄마가 묵묵히 해오신 설거지...딸 둘을 키우면서도 우리 손에 물 안 묻히게 하려고
애쓰신 엄마였다. 덕분에 내 손등은 너무나 곱다. 엄마는 종종 농담처럼
'너는 손이 왜 그렇게 이쁘냐...게을러서 그래. 게으른 손이다~' 라고 하시지만,
나는 안다. 내 손이 예쁜 만큼 엄마 손은 모질게 닳고 닳아왔는다는 것을..

그러면서도 난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지...돈 많이 벌어서 좋은 식기세척기 사고
사람 사서 쓰면 돼...속으로 수없이 다짐하면서 그렇게 커왔다. 덕분에 난 누구보다도
독립적으로 성장했다. 평생 설거지하고 빨래하면서 남자한테 의지하고 살 바에는
차라리 혀 깨물고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왔다. 가끔, 날 행복하게 해준다는 남자들이
나타나면 완전 비웃었다. "니가 과연 내 손에 물 한 방울 안 묻히게 할 수 있니?
차라리 내가 먼저 성공하는게 빠르겠다;;" 내 인생의 목표는 남자나 결혼이 아닌,
나의 성공과 행복이었다. 신정아 언니;;처럼은 아니겠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선
나쁜 짓만 아니면 수단과 방법은 가리지 않을 준비가 언제나 되어있었다. 그러나,
나 역시 어느 순간에는 단지 '여자'라는 걸, 요즘 새삼 느낀다.

다른 남자들에 비하면, 그는 너무나 솔직했다. 고생시킬 거 뻔히 아니까, 그래서 난 안된다고.
그게 차라리 가식적이지 않다. 너무 그래서, 바보같아서, 화가 난다.
평생 살림하고 시부모님 모시면서 산다 해도, 너라면 상관없을 것 같다고,
그렇게 내뱉어버린 내 용기조차도 그에게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한다는 게,
그게 화가 난다. 내 자신에게 미안하고, 엄마에게 죄송하다. 그런데도, 포기 못하는
내가 너무 싫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사랑인가. 누구를 위한.....집착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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