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자유에 주눅이 드는 사회
최근 화제가 된 책 <숲속의 자본주의자>의 홍보용 카드 뉴스. 나도 아직 책은 읽어보지 못했다.
“내가 진짜 원하는게 아니라면, 아무리 싸도 갖지 않는다.
아무리 모두가 칭송하는 가치라도, 내게 필요하지 않으면 추구하지 않는다.”
이런 단순한 메시지가,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참 '레어'하게 다가온다. 그래서 책이 주목을 받는 거겠지.
역시나 '아프면 한국 기어 들어오겠지, 공부하고 사회에 기여 안 하는 무책임한 인생'이라는 댓글이 대부분이다. 그 와중에 이런 댓글도 있다. "가뜩이나 힘든 사람들 주눅들게 하지 마시길".
이러한 대중의 반응은 코로나 이전 유행하던 '부부 세계일주' 책에 달리던 내용과 복붙 수준으로 똑같다. 사실 이런 기사마다 매번 등장하는 댓글이 보험과 사회보장 혜택인데, 한국에서 세금을 냈다면 이런 삶을 택하든 택하지 않든 사회보장 대상자가 되는 건 똑같다.
https://mobile.twitter.com/BizCapybara/status/1416326212830466050
이 저자 부부의 행적에 대해서는 남편이 원래부터 미국 태생이고 조선일보 고문 아버지를 둔 금수저 출신이라는 의견들도 나오는 중. 그러나 가진 자가 모두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유를 갖는 것은 아니라는, 이 책 편집자의 의견 또한 수긍이 간다.
이 사회는 왜 타인의 자유로움에 주눅이 들도록 짜여져 있는가. 왜 시스템을 스스로 포기한 이들에게 거꾸로 '시스템에 기생한다'고 비난하게 만드는가. 사회를 지탱하는 노동의 가치가 근본적으로 뒤흔들리는 지금, 사회가 시키는 대로만 일하는 나만 어딘가 손해보고 있다고 느끼니 억울함의 화살은 외부로 향한다. 소모적인 사회다. 결국 '일'을 둘러싼 변화가 있어야 한다. 각자가 각자의 행복을 스스로 정의하고 그릴 수 있어야 한다. 그게 안되니, 자꾸 내 주변만 실시간으로 돌아보며 불안한 이들만 늘어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메시지도 개인의 서사로만 풀어내면 넓은 공감을 얻기 어려워진 시대적 흐름도 무시할 순 없다. 요즘 부쩍 자주 보이는 "나만 미세먼지를 피해 이민 가고, 나만 자유 찾아 미국 시골로 떠나는" 류의 에세이는 효과적인 메시지 전달 방식은 아니다. 장소의 이동 또한 특권이라는 사회적 맥락을 놓친 서투른 메세징이, 이런 엄혹한 시대에는 더더욱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다.
그래서 요즘 구상 중인 일에 대한 다음 책도, 개인의 사례집으로만 그치면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더 큰 그림으로 흐름을 짚어야만 설득력이 생긴다.
각자도생과 강요된 행복 너머로
그래서 이 칼럼을 두 번, 세 번 곱씹게 된다. 왜 선진국으로 '인정'까지 받은 이 시점에, 개별 주체들의 삶은 여전히 힘겨운지에 대한 좋은 답이 담겨 있다.
올 초 일기에도 썼지만 각자도생의 시대를 모두가 당연하게 여긴다면 승자 1인을 제외한 모두가 힘들어진다.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을 준다는 온라인 플랫폼은 코로나 특수를 맞고 있지만, 플랫폼 경제를 구성하는 개별 주체들은 끝없는 별점 노동과 경쟁 속에서 서로를 평가하고 평가 받는다.
이미 '평범함'은 쟁취해야 할 대상이 된지 오래다. "남들 사는 것처럼" 살아가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어려워진 세상인데, 여전히 모두가 이를 애써 외면하고 오늘도 가장 평범한 삶을 향해 무한 경쟁하고 있다. 모두가 존재하지도 않는 꿈에 매달리는 게, 과연 그 삶을 유지하는 것 외에 어떤 가치를 찾을 수 있을까.
로컬로 향하는 사람들, 숲속의 자본주의자처럼 해외 로컬로 향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지향하는 새로운 OS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다시 말해 스스로 정의한 삶의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 사람들이다.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현재 내가 속한 OS가 정말 당연한 건지부터 살펴봐야 한다.
위 글에서 얘기하는 한국의 신자유주의 OS는 유럽에서는 용도 폐기 대상이 된지 오래다. 바야흐로 일과 삶, 소유와 공유에 대한 새로운 담론이 필요한데도, 여전히 우리는 서로를 겨누며 더이상 존재하지도 않는 평범함을 강요하고, 또 강요받고 있다. 각자만의 삶과 행복을 설계할 수 있는, 풍요로운 세계관을 만드는 힘을 조금씩이라도 길러야 하는 시대다.
그 힘을, 새로운 시대의 여행으로 모색해보고자 해서 발제에 참여했던 포럼 후기.
https://brunch.co.kr/@nonie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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