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여행 강의를 하러 떠나는, 강의 여행
기업 강의는 본사에서도 열리지만, 많은 경우 임직원 연수나 워크숍 등을 위해 숙박시설에서 열린다. 특히 아침에 열리는 강의의 경우, 강사에게는 편의상 숙박이 함께 제공된다. 그래서 여러 분야 중에도 '여행'을 다루는 강사인 내게는 덕업일치의 삶이 저절로 이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해외에 비해 국내여행 경험치가 낮았던 내게, 출장 강의는 반강제로 전국을 여행할 기회를 열어주고 있다.
지난 주 다녀온 제천 역시, 강의차 여러번 찾았던 곳이다. 그런데 이번 강의는 조금 더 특별했다. 국내에서 가장 가보고 싶었던 숙박시설 탑 3에 꼽았던 리솜 포레스트에서 열린 강의이기 때문이다.
Lobby & Check-in
강의 전날, 서울에서 강의를 마치고 서둘러 기차역으로 향했다. 오늘은 제천 5일장이 열리는 날이다. 3, 8이 들어가는 날짜에는 제천역 앞에서 장이 열리는데, 동절기엔 5시에 장이 파하기 때문에 서둘러야 한다. 다행히 파장 전에 쇼핑도 실컷 하고, 특히 리솜에 들어가면 나오기가 어렵기 때문에 저녁에 먹을 가마솥 통닭도 한 마리 포장해서 택시에 올라탔다. 제천역과 버스터미널에서는 리솜까지 편도 2만원 초반대의 택시비를 감안해야 한다.
택시는 지하 6층 주차장에 정차한다. 프론트 데스크는 한산한 편이었지만, 내가 강의할 기관의 단체와 개인 고객들이 많아서 평일의 로비는 꽤나 붐비는 편이었다. 객실키를 받았다고 바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컨시어지에 가서 카트 예약을 해야 한다. 나는 카트 예약 전에 하나 더 할 일이 있다. 컨시어지와 붙어 있는 솔티 펍에서 맥주를 포장하는 일이다.
내가 예약했던 리솜 포레스트 제천 숙박 예약 링크는 여기.
제천에는 '쏠티'라는 벨기에 맥주를 생산하는 양조장이 있다. 단, 타 지방의 브루어리와는 달리 별도의 투어 등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어서 굳이 양조장까지 찾을 필요는 없다. 시내에 쏠티가 운영하는 펍이 있었는데, 얼마 전 리솜 포레스트 로비 뒤 펍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래서 리솜에 온 김에 청와대 만찬에도 들어갔다는 '메이드 인 제천' 맥주를 맛볼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다. 장터에서 산 치킨과 함께 먹을 인디아 페일에일 한 병(1만1천원 선)을 포장했다. 카트 예약 데스크는 이 쏠티 펍 바로 왼쪽에 붙어있다.
Room : 독채 빌라에서 보내는 하룻밤
리솜 포레스트는 아직 완성형이 아닌 진행형이다. 여느 대형 리조트가 그렇듯 이곳도 독채 스타일의 '프라이빗 빌라' 숙소와 타워형 숙소로 구분이 되는데, 타워형은 2021년에 오픈할 예정이다. 현재 24평형과 28평형 빌라를 예약할 수 있는데, 내가 이번에 묵은 숙소가 28평형이다. 한때 회원제로만 운영되어 예약이 불가능했던 숙소지만, 이제 네이버 예약으로 25만원 대에 묵을 수 있다 보니 인기가 예사롭지 않다. 11월은 이미 만실이고 12월에도 남은 날짜가 몇 개 안 남았다.
그나저나 국내에서는 카트를 타야 할 만큼 뚝뚝 떨어져 있는 독채 빌라가 흔치 않다. 동남아 리조트에서나 타던 전동카트로 숙소에 이동하는 기분이 자못 색다르다. 직원 분이 친절하게 숙소 위치와 내려가는 길을 안내해 주셨다. 빌라가 두 동씩 붙어 있기 때문에, 내가 들어갈 빌라는 계단을 한 층 더 내려가야 비로소 입구가 보인다. 검은 벽돌로 쌓아올린 건물이 가을 단풍과 어우러진 모습이 제법, 멋스럽다.
리솜 포레스트 제천의 객실 별 가격은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원목으로 짜여진 멋진 천장, 벽난로를 모티브로 한 TV 장, 창 밖으로 보이는 가을 풍경이 어우러진 거실은 차분하고 고요하다. 해지기 전에 숙소에 도착해서 그나마 사진이라도 몇 장 찍을 수 있었지만, 밤에는 가로등 하나 없는 숲속이라 완전 깜깜해진다.
간단한 주방 시설도 갖춰져 있어서 포장해온 음식을 차려 먹거나 물을 끓일 수도 있다. 대신 일반적인 호텔에 있는 커피/차 티백 등은 없으니 미리 준비해 오거나 리솜 내 편의점에서 구매하면 된다. 냉장고에는 생수만 4병 준비되어 있다.
지난 5~6년간, 전 세계 수많은 호텔을 다니면서 많은 공부를 했다. 하지만 단순히 호텔을 '많이' 묵어보는 것만으로는 여행업 전반의 인사이트를 쌓는 데 한계가 있다고 느꼈다.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를 출간하고 나서, 오히려 호텔에 얽매이지 않고 다양한 형태의 숙소를 찾아 다니면서 폭넓은 경험을 하게 됐다. 리조트 역시 흥미로운 숙소의 형태다. 어떤 면에서는 호텔보다 열려 있고 비워져 있어 다양한 목적의 여행이 가능하다. 반대로 숙박 외에 레저 프로그램 측면에서는 호텔보다 촘촘하게 '머무르는 시간'을 챙겨준다.
내가 느낀, 리솜 포레스트가 정의한 자신들의 역할은 자연이 주는 휴식을 가장 쾌적하게 누리게 도와주는 것이다. 숲속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의 감각이 객실에서도 연결되게끔 디자인되어 있다. 너무 세련되거나 도회적인 느낌을 배제하고 최대한 자연과 가까운 느낌을 내는 인테리어가 마음에 든다.
객실은 침대가 있는 침실과 온돌방으로 나뉘어 있는데 나는 침대 침실만 사용했다. 객실 전체적으로 '브랜딩'을 드러내는 디자인 요소는 거의 없는 편인데, 침구에 씌인 Rest well in the forest라는 문구에서 리솜 포레스트의 정체성을 살짝 발견할 수 있다. 베딩의 질은 아주 좋은 편이다.
28평형의 큰 숙소에서 욕조가 없는 욕실은 드문 편인데, 이유를 추정해 보자면 리솜 포레스트의 핵심 부대시설이 바로 '스파'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입욕은 스파에 와서 제대로 즐기고 욕실은 샤워 정도만 활용하면 되는 것이다. 이 와중에도 여전히 리솜 포레스트의 훌륭한 스파 시설인 '해브나인 스파 센터'는 인기가 많은 모양이다. 나도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사상체질 스파를 포함한 한방 프로그램을 꼭 해보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코로나 때문에 사우나나 공용 욕탕은 꺼려져서 결국 다음을 기약하기로. 수영장은 하나도 아쉽지 않은데, 좋아하는 스파를 이용해보지 못한 게 두고두고 아쉽다.
직업상 말을 많이 해야 하고, 비어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 그래서 리솜 포레스트에서의 하루는 출장이지만 휴식이기도 했다. 올 1월에 브루나이 취재를 다녀온 게 마지막 해외여행일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는데, 이렇게 1년이 흐른 게 새삼 믿겨지지가 않는다. 돌아보면 아쉬운 점도 많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어느 해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던 감사한 한 해다.
저녁에는 치맥으로 간단히 식사를 했다. 사실 리솜 내에 여러 식당들이 있고, 쏠티 펍에서도 각종 피자와 음식을 판다. 하지만 리솜에서는 치킨 한 마리에 2만원 대라면, 제천역 5일장에서만 파는 '가마솥 통닭'은 7천원이니 역시 밖에서 사오는 게 싸다. 장터에서 사온 것들, 제천 재래시장 후기는 다음 편에 정리해 보기로.
해가 지고 난 침실에, 특이하게도 윗쪽에 난 창이 눈에 띄었다. 밝을 때는 그런가보다 했는데, 어둑어둑해지니 어스름 짙은 풍경이 마치 액자처럼 멋지다. 무심한 듯 많이 신경쓴 호텔이구나 싶은 게, 곳곳에 느껴졌다.
다음 날 일찍 강의가 있어서, 서둘러 조식 레스토랑에 가서 식사를 했다. 사실 독채 빌라에서는 카트를 타야만 할 만큼 로비동과 거리가 먼 숙소들이 많은데, 운좋게도 로비와 가장 가까운 동에 배정을 받은 덕분에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었다. 조식과 나머지 제천 여행 후기는 2편에 이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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