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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Korea

속초 레트로 여행 #01. 여름의 해수욕장과 수제버거, 마레몬스 호텔

by nonie 2020. 7.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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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에도 속초에서 강의만 하고 곧바로 올라왔는데, 이번 달에도 또 속초행이다. '고속버스' 어플을 켰다. 앗. 조금만 늦게 켰으면 원하는 차편을 구경도 못할 뻔 했다. 7월 초 평일 속초행 버스가 거의 다 매진이라니!! 


문득 '나는 앞으로 어떤 국내 여행을 소개할 것인가' 고민해 봤다. 기본적으로 여행은 쉬고 노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데, 맛집과 호캉스 위주인 국내 여행지를 어떻게 이해하고 알려야 할까. 직업이 여행 강사여서 고민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이젠 일만 하기 보단, 일과 여행을 같이 해보면 어떨까. 이젠 좋든 싫든 국내 여행을 이야기해야 하는 새로운 시대니까. 고심 끝에 강의 다음 날 스케줄을 취소하고, 돌아오는 버스표 대신 호텔 예약 페이지에 접속했다. 작년부터 눈여겨 봐두었던 속초 대포항의 오래된 호텔은, 마침 성수기를 1~2주 앞두고 평일 객실을 싸게 내놓았다. 


평소 가장 많이 소비하는 게 책과 음악이니, 낡은 호텔에 머물면서 여행지와 어울리는 책과 음악을 한데 모아서 '내가 만든 호텔 패키지'를 즐겨보면 어떨까, 하는 심플한 생각이 들었다. 책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에서 헬싱키 호텔에 묵으며 핀란드 라디오를 틀어놓고 헬싱키 여행서를 읽는 밤을 보냈다고 썼던 것처럼. 그렇게 얇은 책 한 권, 음악 몇 곡을 재생목록에 넣은 채, 속초로 향했다. 










속초는 찐이다

그래서, 이렇게도 많은 이들이 속초로 향하는 걸까? 속초고속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몇몇 젊은이들은 곧장 '속초는 찐이다'라는 문구가 크게 그려진 속초 해수욕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마침 점심을 먹으려고 생각해둔 곳이 이 주변이라, 잰걸음으로 바다로 향하는 이들의 뒤를 터덜터덜 따라 가본다. 시원한 원피스와 샌들 차림의 젊은이들은, 지금 바로 바닷가에 입성할 모든 채비를 갖췄다. 


반면, 무거운 노트북 백팩으로 허리가 묵직하게 아파오는 데다 정장 블라우스에 바지 차림인 나는, 여러가지 의미로 길을 잘못 들었다는 느낌이 훅 든다. 소독약 부스를 통과해서 간신히 모래사장에 들어섰을 때, 내가 가려던 식당은 바깥 길가에 위치해 있음을 알았다. 덕분에 이 차림으로나마, 올 여름 첫 해수욕장을 만나긴 만났다. 


사실, 딱히 바다에 누워 놀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 않는 걸 보니 올 상반기에 자영업자로서 감당해야 했던 시간들이, 내심 적잖은 부담이긴 했던 것 같다. 강의와 일이 많이 잡혀있는 7월에 바짝 달려야 한다. 물론 직장인 때보다 매출 대비 노동 시간은 1/3로 줄고 원하는 장소에서 일을 할 수 있는 내 직업에 무한 감사하면서. 











비록 해수욕장에 누워 선탠을 할 수는 없지만, 속초 바닷가를 내려다 보며 따끈따끈한 버거를 씹고 얼음 넣은 콜라를 들이킬 수는 있다. 그것도 주문 즉시 구워주는 신선한 소고기 패티 향으로 가득찬, 건물 4층의 루프톱 야외에서 말이다. 해수욕장 근처 길가에 자리한 버거 플레이스는, 힙스터스러운 1층 카페에서 주문을 받고 버거는 4층에 올라가서 받는 특이한 시스템이다. 4층에 올라가 보니 커다란 덩치의 아저씨 둘이서, 빨간 부스 안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버거를 만들고 있다. 


사실 루프톱 바는 제대로 된 테이블도 없이 긴 의자 몇 개와 그늘 가림막 정도가 전부였지만, 사람들은 그 무질서한 공간에서도 자기 자리를 찾고 음식 놓을 공간을 만들어 낸다. 처음엔 두리번거리며 적응 못하던 나도 결국 자리 하나를 꿰찼다. 비록 파라솔이 없어 햇빛이 정수리에 직격으로 내리 꽂혀서 비어있던 자리라는 건, 버거를 거의 다 해치울 즈음에야 알게 됐지만. 부드러운 번과 채소, 그리고 신선하고 잡내 없는 패티는 좋은 조합이었다. 

다만 이 식당 인스타에서 베이컨도 직접 훈제한다고 자랑을 하길래 베이컨이 든 버거를 먹으러 갔건만, 오후 2시 경 이미 품절이어서 못 먹은 게 아쉽다. 그리고 일정상 따로 가지 못하는 '몽트 비어'의 맥주를 여기서 판다고 해서 테이크아웃으로 사가려 했으나, 역시 품절 상태. 뭐든 넉넉한 수량은 아닌듯 하니 전화로 미리 물어보는게 좋을 것 같다. 










나의 속초가 '레트로'인 이유, 마레몬스 호텔

지난 달에는 '롯데 리조트 속초'에서 강의를 한 덕분에 호텔을 잠시나마 구경했다. 거대한 아트 갤러리처럼 생긴 로비 너머로 화려한 인피니티 풀이 슬쩍 보였다. 인스타 사진을 찍을 만한, 호사스런 수영장이었다. 요즘 해외여행을 다루던 여행 블로거들은 코로나 이후 앞다투어 이런 '핫플'을 골라 다니며 국내여행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지자체 협조를 받던, 개인으로 가건 앵글과 콘텐츠는 해외여행 때와 똑같다. 여행지는 나를 위한 배경이고, '인플루언서' 설정 인물컷으로 여행지나 호텔의 효용성을 전달한다. 

적어도 국내여행은, 인플루언서가 주도하던 시대가 끝났다. 여행 블로거의 인스타보다 평범한 20대 청춘들의 인스타 사진이 훨씬 예쁘고 감각적이다. '인증샷' 콘텐츠의 시대가 그렇게 끝나가고 있는데, 블로거들은 여전히 포털의 길들이기 시스템 내에서 예쁜 그림을 만들어야 한다는 예전 관성에 빠져있는 듯 보인다. 여행 분야에서 제대로된 '업'을 만들 생각이 애초에 없다면, 한 살이라도 젊을 때 예쁜 여행 사진이나 많이 남기는게 어떠랴 싶기도 하고.ㅎㅎ  


다시 나의 여행으로 돌아와서, 이번 속초행에서는 가능한 인스타와 블로그 바닥에서 전혀 인기가 없는 한적한 호텔을 고르기로 했다. 그 때 마침 트위터에서 보고 저장해 둔 비장의 호텔이 떠올랐다. 문을 연지 무려 20여년이나 된, 세월이 묻어있는 오래된 호텔인 마레몬스 호텔이다. 비수기 1인 패키지가 조식 뷔페와 사우나 포함 5~6만원대인데, 엄청난 '오션 뷰' 객실을 준다는 전설같은 호텔. 


예약은 여기서 했다. 호텔 마레몬스 속초 객실별 가격 보기 아직 7월은 2인 기준 10만원대 초중반을 유지하고 있지만 객실은 매일매일 훅훅 빠지고 있으니, 서둘러야 좋은 가격에 겟할 수 있을 듯. 










마레몬스 호텔이 그나마 알려진 계기는, 가수 솔비가 화가로 변신하면서 이 호텔에서 그림 작업을 했다는 썰이 방송을 통해 전해지면서다. 여전히 마레몬스 호텔은 솔비 그림이 로비에 걸려 있다는 것 외에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로비에 있는 쌩뚱맞은 'MBC 체험존'은 일반 호텔에서 절대로 볼 수 없는 부대시설이다. 그렇다면 호텔이 MBC와 최소한 어떤 관계인지는 홈페이지에 게시할 수 있지 않을까? 구글링을 이래저래 해봐도 MBC 사내 행사를 많이 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소득이 없었다. 사외 연수원같은 역할을 하는 걸 수도 있겠다. 다만 2013년에 경영권 인수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던 호텔을 인수한 현 대표이사가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전자회사의 사장을 겸하고 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2015년 벤처스퀘어에 보도된 이동석 대표의 기사


지방 호텔 특유의 적당한 불친절함이 흐르는 프론트 데스크 서비스는, 애초에 큰 기대 없었다. 다만 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예약한 호텔인데, 특1급을 달고 있는데다 생각보다 훨씬 웅장한 층고의 로비가 펼쳐져서 당황스럽기는 했다. 2002년 문을 연 호텔답게, 오래된 시간의 흐름이 느껴졌다. 객실키와 이런저런 쿠폰(현재 객실을 예약하면 스카이바 맥주 쿠폰과 조식 쿠폰, 사우나 쿠폰을 준다)을 받아들고 객실로 향했다. 










찐핑크와 오션뷰, 그리고 시티팝

가장 먼저 눈에 띈 건, 요즘 호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 '찐핑크' 쿠션! 가히 마레몬스 호텔의 '포인트 컬러'라고 할 수 있겠다. 고풍스러운 로비부터 이 찐핑크 쿠션까지, 이 호텔에 너무나 어울리는 음악 장르는 딱 시티팝이다. 21세기에 속초에서 80년대 시티팝스러운 호텔을 만나다니. 사실 내가 이 호텔에 이끌린 것도, 나이가 들어서 이런 느낌을 좋아하게 되어서일 수도 있겠다. 작년 봄 도쿄에 갔을 때도 아사쿠사의 오래된 킷사텐에서 먹은 옛스러운 커피와 아침식사가 가장 기억에 오래 남았다. 그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오래된 호텔,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숙소들에 먼저 눈길이 가기 시작한 것이. 


침대에 놓인 '세탁 설비 시스템의 강점' 4가지는, 어쨌든 요즘같은 전염병 창궐의 시대에 투숙객에게 마음의 안심을 주는 문구다. 사실 침구에서는 세탁 세제 특유의 향기가 남아있긴 했지만, 기분나쁠 정도는 아니었다. 낡음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기는 했지만, 전반적으로 청소 상태도 괜찮았다. 










무엇보다 이 가격에 속초의 아름다운 오션 뷰를 갖게 된 것만으로도, 이 곳에 올 이유는 충분하다. 일출이 그렇게도 아름답게 보인다는데, 아쉽게도 내가 머무르던 날엔 비가 너무나 많이 와서 일출을 촬영하지는 못했다. 전 객실이 오션 뷰는 아니고 산 방향의 마운틴 뷰와 섞여있기 때문에, 필히 호텔 객실 상세보기를 통해 전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좋다. 호텔 마레몬스 속초 객실별 보기 










어메니티 디자인 마저도 뭔가 옛스러운 로고와 컬러의 조합이다. 가져간 샘플들이 있어서 굳이 다 쓰지는 않았는데, 페이스용 토너는 꽤 괜찮아서 남은 것을 버리긴 아까워서 가져왔다. 그리고 기본 객실로 예약해도 이렇게 괜찮은 욕조가 있으니, 가을 겨울에는 입욕제를 챙겨오면 좋겠다. 나도 사우나 쿠폰을 써볼까 하다가 아무래도 코로나 시대에 아직은 불안해서, 아쉽지만 입욕으로 대신했다. 연수원에서 2시간동안 쉬지 않고 강의를 하고 해가 질 즈음에야 도착한 호텔이라 정말 피곤했는데, 욕조가 참 고마웠다.   









호텔 마레몬스에서 딱 떠오른 음악은, 9m88의 'Plastic love'. 미국계 대만인 뮤지션인 9m88은 지금 중화권에서 가장 핫한 인디 뮤지션이다. 최근에 그녀의 노래 몇 곡을 듣고 깜짝 놀라서 유튜브 채널을 찾아보니, 시티팝의 레전드, 마리야 타케우치의 플라스틱 러브를 리메이크한 뮤직 비디오가 있더라. 240p 저화질로 보면 더 좋다는 댓글을 보고 빵 터졌다.ㅎㅎ 이렇게 옛 것을 다시 레트로 +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뮤지션들을 좋아한다. 세기 초인 2002년에 문을 열었지만 뭔가 70~80년대 분위기가 나는 이곳 호텔 또한, 현대에 태어난 레트로일지도 모르겠다. 


속초 레트로 여행 두 번째 이야기는, 저녁에 테이크아웃으로 먹은 대포항 튀김골목표 식사, 마레몬스 호텔 조식, 그리고 가서 읽었던 책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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