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고등학교 3학년 대상으로 여행 강연을 했다. 하지만 수능을 막 마친 아이들의 표정은 어떤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해도 쉽사리 밝아지지 않았다. 성적 발표일을 앞둔 긴장감도 있겠지만, 대학이 직업과 미래를 어느 정도 보장하던 시대가 저물기 때문 아닐까 싶다. 눈 앞의 아득함보다 더 멀고 길어질 불안감을, 이들이 모를 리 없다.
직업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지금의 시스템에서는 성인이 되어 사회로 던져지는 시점부터 최소 십 수년 후까지 계속될 수밖에 없다. 멀게만 느껴졌던 인공지능과 자동화는 이제 눈앞의 현실이고, 향후 10년간 현존하는 직업의 절반은 사라진다. 이런 시점에,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그런 일이 가능하기는 한 것일까.
최근 다녀온 중국 출장은, 여행이 직업의 일부가 된 나의 현실이 그대로 투영된 나날이었다. 여행으로 온전히 즐길 수도 없고, 병마용같은 명소도 못 가고, 컨퍼런스 장에서만 내리 3일을 보냈다. 시안에 이어 상하이에서도 나는 대부분의 시간을 컨퍼런스 장에서 보냈다. 분명 일정만 보면 회사 출장인데, 월급받으며 다니는 게 아니니 되려 내 비용이 더 든다. 이렇게 빡빡한 여행을 어떻게든 즐기는 것도 오로지 내 몫이다. 세계 각국의 업계 종사자들과 작당모의해서, 시안의 먹거리를 모조리 재패하는 운좋은 시간도 있었다. 하지만 정작 기억에 남는 건 그들과 틈틈이 나눈, 미처 기록하지 못한 수많은 대화다.
시안 1일 투어의 버스 짝꿍이 된 독일인 할아버지 벤은, 유럽의 여러 컨퍼런스에서 모더레이터와 스피커로 서는 트래블 테크 전문가다. 그래서 토마스 쿡이 파산한 이유, 브렉시트가 유럽 여행업계에 끼치는 영향처럼 다소 무거운 질문을 던져도 신나게 답해 주었다. 그 역시 한국도 중국처럼 무현금 사회로 가고 있는지, 어떤 메신저로 결제하는 지 등을 물었다. 그 외에도 발트 3국의 관광청 담당자를 만나 취재를 얘기하고, 한국말을 잘하는 중국의 공무원을 만나 이런저런 도움을 받기도 했다. 이 관광지에서 저 관광지로 끌려다니는 의미없는 투어가 될 뻔했던 하루는, 많은 사람들과 정보를 나누며 성장하는 시간이 되었다. 지금 내게 직업적으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면, 무슨 질문을 해야 할지도 명확해진다.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갖게 된다는 것은, 내 일을 콘트롤할 권한을 가진 유일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직업이 내가 직접 만든 업이라면, 세상의 빠른 변화를 읽으면서 업의 모양새를 내게 맞게 튜닝하고 다듬어서 진화해갈 수 있다. 그러니 어떤 재테크보다 나 자신에게 투자해야만, 원하는 삶의 그림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다. 이번 중국 여행은 그런 의미에서 약간의 출장 비용을 부담하고 짧은 중국 유학을 다녀온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여행업계를 가장 가까이서 관찰하기 위해 떠난 여행이, 2017년 핀란드에서 시작해 횟수로 3년째다. 책 <나는 호텔을 여행한다>가 5년간 집요하게 세계의 호텔을 다닌 끝에 탄생한 책이라면, 전 세계의 여행 트렌드를 직접 조사해서 여행업의 다음 스텝을 바라본 책이, 곧 세상에 나온다. 이 책에는 변화하는 여행업계에서 직업을 찾고 싶은 이들을 위한 가이드라인도 미약하게나마 담았다.
요새 열심히 운영 중인 유튜브 채널 역시, 그런 목적에서 만든 채널이다. 물론 여행 브이로그의 형식을 빌려 어디가 좋은지, 무슨 호텔에 묵었는지 등의 여행 정보를 소개하지만, 그게 궁극의 목적은 아니다. 여행정보는 누구나 소개할 수 있는 세상이다. 그 보다는 전 세계를 다니며 자유롭게 일하는 직업을 만들고 싶은 이들에게, 지금 그런 일을 하고 있는 내가 어떤 시행착오를 겪고 여행을 어떤 관점으로 대해야 하는지 공유하는 게 진짜 목적이다. 더 많은 기회가 한국의 바깥에 있고, 그건 직접 부딪혀야만 얻을 수 있다는 걸 계속 이야기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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