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2015~2016년 연속, 두 번 모두 혼자 다녀왔다. 홍콩, 도쿄, 방콕...이런 곳 말고, 하와이 말이다.
그래서인지 요새 블로그의 유입 검색어에는 여자 혼자 하와이'. '하와이 혼자 여행'같은 키워드가 지치지도 않고 계속 뜬다. 지금 막 또 한 번 더 뜨는군. 하긴. 나도 처음엔 그랬었지. 아무리 일때문에 가는 거라지만, 취재 앞뒤로 일정 늘려서 호기롭게 계획을 짜고나니 덜컥 꺼려지는 마음. 진짜 괜찮을까, 혼자 하와이?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무지 좋다. 혼자 하와이. 이제 와서 솔직히 고백하자면, 진짜 좋았던 곳은 블로그에 쓰지 못했다. 사실 블로그에 소개하는 콘텐츠는 실제 여행경험의 반의 반도 담지 않는다. 콘텐츠가 너무 많아서 다 못쓰는 것도 있지만, 취재와 여행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다 보니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내 돈주고 갔던 진짜 좋은 곳은, 우선순위에 밀려 연재를 미루게 된다. 불안한 마음으로 '여자 혼자 하와이'를 검색하고 있는 당신을 위해, 뜬금없이 풀어놓는 와이키키에서의 기억.
와이키키에서의 어느날 아침
나는 여행을 취미로 하지 않는다. 기업을 대상으로 전문강의를 하는 직업을 가졌기 때문에, 항공편 하나, 숙소 하나를 고를 때도 리서치를 몇 달간 한다. 주로 해외 현지나 일본쪽 전문가로부터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 그래서 여행을 한 번 기획해서 다녀올 때마다 많은 데이터가 쌓인다. 하와이 역시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여행지 중 하나로, 2년간 어떤 곳이 새로 문을 여는지 체크해 왔다. 하와이는 최근 들어 중국인을 비롯한 아시아 여행자들이 급속도로 늘면서 조금씩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낡은 이미지를 가진 전통적인 여행지에, 점차 숨은 핫 플레이스가 늘어나는 것이다. 나는 이 흐름에 주목하고 싶었다. 가급적이면 히치하이커 다음 시리즈를 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2016년 11월 여행 때는 이미 취재지로 내정된 곳이 많아서, 내가 진짜 가고 싶은 호텔은 묵을 수 없었다. 사실 정말 맘에 드는 신규 호텔이 있어 사전에 현지에 컨택도 해보고 여러 시도를 했지만, 어떠한 피드백도 받지 못했다. 마침 현지 취재 일정 중에 잠깐 짬이 났던 어느날 아침, 문득 그곳이 생각났다.
지금 와이키키 대로변 뒷골목엔 빈티지와 서핑이란 키워드를 자유롭고 편안하게 연출한 공간이 계속 생겨나고 있고, 이곳도 그 중 하나다. 이런 곳을 운영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멋졌고, 이곳을 선택한 여행자들이 부러워지면서 한편으론 속상했다. 좀 무리를 하더라도 이 동네에서 묵었어야 했다. 온갖 후회와 함께 커피 한 잔을 주문했다. 르마르조꼬 머신 뒤로 분주하게 움직이는 넘나 친절한 직원이, 파인애플 로고가 그려진 커피잔을 내밀었다.
혼자 하와이에 온다면 어디서 어떻게 묵어야 할지 고민이 될 것이다. 하와이가 처음이라면, 무조건 숙소는 와이키키 주변에 정하되 메인 대로변에 늘어선 체인 호텔의 말도 안되는 가격을 보고 지레 겁먹지는 말기를. 대로변에서 한박자만 물러서면, 개성있는 소형 호텔이 꽤 있다. 에어비앤비는 정말 말리고 싶지만, 꼭 쓰고 싶다면 기존 콘도미니엄이나 호텔 객실이 올라와 있는 매물을 공략하길. 일반 가정집 같은 데는 보안도 시설도 대부분 최악이니(사진과는 딴판인 경우가 대부분) 혼자라면 가볍게 패스하시고. 하와이는 예쁜 수영장 딸리고 비치 가까운 호텔이 갑이다. 불편한 여행을 애써 만들지는 않기를. 여행 한 달 전부터 슬슬 핫와이어같은 호텔 역경매 사이트도 좀 거들떠 보고.
아이고 좋다. 이 예쁜 곳을 두고 일어나기 싫지만, 동네 탐색좀 빡세게 해줘야 하니 한 잔 휘릭 마시고 좀 돌아볼까나.
이 동네의 잡화 숍에서는 파인애플 샌드위치 쿠키라는 독특한 메뉴를 팔고 있었는데, 어김없이 레아레아 매거진 제휴점이다. 외식 컨설팅을 받아 급조한 메뉴로 보인다. 하와이는 철저히 일본 위주로 돌아가는 곳이다. 그들의 성향을 고려했을때, 포토제닉한 요소나 로컬의 특징 등을 넣어 일부러 만든 메뉴임이 분명하다. 이 카페에서 마신 예쁜 커피잔 또한, 그런 기획의 연장선일테지.
혼자 여행, 먹거리 쇼핑은 돈키호테
2년 내내 오아후의 여러 쇼핑스팟을 다녀봤다. 심지어 알라모아나의 경우 근처에서 1주일간 숙박하면서 돌아봤을 정도니까. 이번에는 알라모아나 호텔에 묵었기 때문에, 근처의 돈키호테를 가기가 편했다. 그런데 하와이의 많은 쇼핑몰 중에서도 돈키호테는 그냥 딱 내 취향. 일본적인 기념품도 참 많고, 헌책방인 북오프도 있고, 냉동식품도 많고.ㅋ 전자렌지가 딸려있는 호텔에 묵었기 때문에, 이번이야말로 하와이를 대표하는 팸레 '지피스'의 칠리를 무려 테이크아웃으로 맛볼 차례다.
알라모아나 쪽에 묵는다면, 무조건 테라스가 딸린 숙소를 골라야 한다. 그래야 와이키키 쪽 호텔에선 볼 수 없는 아름다운 야경을 매일 밤 내것으로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선선한 저녁, 돈키호테에서 사다 나른 먹거리가 매일 저녁 만찬이 된다. 칠리는 나초칩에 얹어 먹고, 가끔은 계란 얹은 로코모코도 따끈하게 데워 한 그릇 먹어 줘야지. 마우이 한정 맥주는 첫날 이미 6캔 팩을 들여놔서 마음이 든든하다.
가끔은, 외식도 테이크아웃으로
로컬 맛집도 많이 다녀왔지만, 역시 작년 하와이 연재 당시엔 소개를 할 수 없었다. 서프 앤 터프 타코스에 갔었던 것도 사진을 정리해보고 나서야 기억이 났다. 와이키키 메인 로드의 메이시스 백화점 바로 뒷편에 있다. 맥주 반죽으로 튀긴 이곳의 피쉬 타코를 안먹고 하와이를 뜰 수는 없지. 진짜진짜 오래 기다려서 겨우 포장을 받았던. 여기는 밖에서 먹고 갈 수도 있지만, 와이키키 근처에 묵는다면 포장해 가서 시원한 호텔방에서 맥주랑 먹어줘야 제맛이다.
와이키키 혼자 여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베스트 탑 3 중 하나. 와이키키 해변. 누가 뭐래도 와이키키는 와이키키. 최고시다.
취재한 숍에서 선물받은 예쁜 비치타올 쫙 깔고, 근처 유명 갈릭새우 포장해 와서, 날아다니는 꽃 하나 붙잡고 노을 보면서 저녁먹는 시간. 해가 지는 모습을 아주아주 천천히 한 장면씩, 놓치지 않으면서.
만약, 여행을 좋아하니까 여행쪽 직업을 가져야지! 라는 단순한 발상으로 어설픈 여행서나 몇 권 내는 여행작가 타이틀에 그쳤다면, 절대로 지금의 커리어와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기존의 이 분야 종사자들과 처음부터 아예 다른 전문영역을 개척하려 했고, 그 과정은 매번 '이게 맞을까' 싶을 정도로 외로운 싸움이었다. 하지만 직장에서 독립한지 어느덧 4년차, 냉정한 이 세계에서 프로페셔널한 경력을 쌓으며 그럭저럭 잘 버텨온 내 방향이 옳았음을, 이제는 안다.
그저 현재를 즐기기 위해 돈을 쓰기만 하는 여행은, 처음부터 관심이 없었다. 지금 적당히 즐기고 늙어서 (자연히) 가난해지는 삶을, 나는 반대한다. 그래서 '욜로' 트렌드에 개인적으로 그닥 공감하지 않는다. 나에게 여행은 미래를 위한 투자이고 공부이며, 언제나 그렇게 여행을 설계한다. 문득 와이키키의 석양을 바라보면서, 첫 배낭여행을 시작하던 십수 년 전이 떠올랐다. 이제는 온전히 내 힘으로 멋진 곳에서 여행과 일을 하고, 그 둘 사이에서 더이상 방황하지 않고, 여행을 하면 할수록 커리어도 더불어 성장하고 삶도 윤택해지는 30대의 삶을 갖게 된 지금이 새삼 감사할 뿐.
차갑고 부드러운,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마이리얼트립에서 예약한 스냅사진 촬영을 '혼자' 씩씩하게 마칠 무렵, 로컬 피플인 사진작가 분이 '와이키키 맛집 얼마나 알아요?'라고 물으신다. 그러더니 갑자기 고급 정보를 줄줄 읊어주시는데!! 이미 여행 일정은 막바지고 아아아. 그 와중에 '파인애플 아이스크림은 드셨죠?'라고 물으시길래, 그거라도 먹고 가야겠다 싶어 메모해 두었다. 티 갤러리아 가장 안쪽, 에스컬레이터 맞은 편에 돌 플랜테이션 매장이 있다. 파인애플의 모든 것을 파는 숍인데, 여기서 휩 아이스크림을 주문할 수 있다. 맘씨 좋은 여직원이 미어지듯 듬뿍 담아준 아이스크림, 보기만 해도 벌써 맛있다.
핵꿀맛. 근데 원래부터 아이스크림을 그닥 좋아하는 편이 아니어서, 5불이 넘는 가격이 좀 비싸다 싶긴 하다. 그런데....
이거 뭐야. 내가 묵던 엠버시 스위트 맞은 편 ABC스토어에서 밤늦게 쇼핑하다 낯익은 기계 하나 발견! 갤러리아에서 본 돌휩 아이스크림 기계인데, 컵도 똑같고ㅋㅋ 심지어 여기는 가격도 3.99$네. 괜히 비싼 쇼핑몰 가지 말고 여기서 사먹으면 됨.
물론, 1박에 기백만원씩 하는 포시즌스 라나이에서의 시간 또한 좋긴 했다. 이번에 처음으로 하와이 주내선을 경험했는데, 그때는 정신이 없어서 놓쳤던 주내선 마일리지 적립도 귀국해서 무사히 성공했다. 하와이안 항공은 스카이패스 쪽에 적립할 수 있는데, 비록 얼마 안되는 마일이지만 소중히 모셔온 보딩패스 덕택에 사후적립 신청도 손쉽게 했던 기억이 난다.
하와이, 무조건 돈 많이 드는 여행지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2015년에는 미국 여행 시에 달랑 35000 마일로 미대륙~하와이 왕복 노선을 끊었고, 2016년에는 다구간 신공을 이용해 50만원 대에 하와이와 상하이를 무려 3주나 여행하기도 했다. 2017년 하반기에는 에어아시아가 일본~하와이 신규 취항을 하기 때문에, 좀더 연구해 볼만한 항공노선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일본여자들은 하와이 혼자 와서 잘만 돈쓰고 놀다 가는데, 유독 우리에게만 꺼려지는 건 왜일까 싶지만, 난 또 기회가 된다면 언제든, 기꺼이 혼자 여행하고 싶은 여행지 중 하나다.
P.S '여자 혼자 하와이 즐겁게 여행하는 법'을 담은 전자책을 작업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하와이 여행 클래스 겸 모임을 열어서 궁금하신 점을 알려드리는 자리를 마련할 예정입니다. 출간 소식 및 사전 초대장을 먼저 받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비밀댓글로 이메일과 함께 남겨주시면, 메일로 안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행놀이 vol.2 하와이' 2017년 11월 출간 되었습니다!
여행놀이 시리즈는 여행을 놀이처럼 즐기는 감성 미션을 모아서 소개하는, 히치하이커의 새로운 여행서 시리즈입니다. 특히나 이번 하와이 편은 저처럼 '하와이 혼자여행'을 계획하시는 분들께 도움이 될 만한 실용적인 정보를 엄선했습니다.
당장 하와이로 여행 예정이 없으시더라도, 막연하게 꿈꾸는 여행지인 '하와이'를 감성적으로 편하게 접하실 수 있는 에세이입니다. 또한 블로그에는 싣지 못한 하와이의 알짜 맛집과 자잘한 정보들을 모두 담았어요.
예스24 바로 가기: http://www.yes24.com/24/Goods/49864609?Acode=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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