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 X Finland - 피니쉬(Finnish) 쿠킹 클래스 @ 헬싱키 컬리너리 인스티튜트
이번 핀란드 여행에서 유독 기대치가 낮았던 분야는 '식문화'였다. 지역도 북유럽인데 방문하는 계절마저 겨울이어서, 캐리어 가득 한국 먹거리를 챙겨갔더랬다. 그러나 Juuri의 놀라운 3코스 점심에 이어 다양한 커피 로스터리와 로컬 식재료를 차례로 경험하면서, 나는 핀란드의 음식 문화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결정적으로 핀란드 퀴진에 매료된 계기는, 내 손으로 그들의 음식을 정찬 코스로 만드는 쿠킹 클래스다. 가히 핀란드를 '미식' 관점에서 여행했다고 해도 손색이 없었던 건, 무척이나 행복했던 이 클래스 덕분이다.
헬싱키의 쿠킹 스쿨에서 배우는, 본격 요리 수업
헬싱키는 한국인 입장에서는 북유럽 여행의 관문이자 시작이다. 유럽에 가장 빨리 도착하는 핀에어의 인천~헬싱키(9시간) 직항 덕분에, 헬싱키를 경유해서 유럽 전역으로 여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는 이 점에 주목해서, 이번에 초청된 전 세계 인플루언서를 위해 스톱오버(stop-over)를 홍보하는 다양한 일일투어를 마련했다. 수많은 스톱오버 투어 중에 내가 참가한 테마투어는 바로 '푸드' 투어다.
푸드 투어의 첫 일정은 쿠킹 스쿨에서 진행되는 요리 수업이다. 하지만 전 세계 블로거 친구들과 참여하는 단체 일정이어서, 셰프의 시연을 지켜본 후 맛이나 보는 가벼운 수준으로만 생각했다. 그러나.....이 일정은 내 여행의 품격을 높여준 최고의 3시간이었다. 그동안 수없이 참가해 본 요리 수업과는 '클래스'가 달랐던 것. 개교한 지 20년이 넘은 고풍스러운 분위기의 쿠킹 스쿨에 입장하니, 곧이어 내 손에는 샴페인 글라스가 쥐어졌다.
헐리우드 영화배우의 포스를 풍기는 멋진 셰프가 먼저 소개한 식재료는, 훈연 향을 가미한 핀란드 전통 술과 각종 로컬 식재료에 대한 설명이었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앞치마를 두르고 도마 앞에 선 나를 발견...; 두어 명씩 조를 짜서 각자 맡은 식재료를 다듬기 시작했는데, 하필이면 요리 경험이 많지 않은 내가 메인 디시인 화이트 피쉬를 맡게 되어 부담이 오백배;; 핀셋을 들고 생선살 켜켜이 숨어 있는 뼈를 뽑는 게 나의 첫번째 임무였다. 위 사진은 셰프한테 몇 번 혼나고 잔뜩 긴장한 내 손ㅎㅎ
뼈를 뽑고 다듬은 생선살은 곧바로 조리에 들어가는데, 그 방법이 매우 신선했다. 팬에 소금을 뿌리고 그 위에 바로 생선을 굽는 것이다. 껍질이 있는 등쪽을 소금 뿌린 팬 바닥에 놓자, 치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노릇노릇하게 익으면서 오일이 지글지글 흘러 나온다. 그 상태에서 겉을 잘 지져 색을 낸 다음, 오븐에 넣어 구워내면 메인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생선 스테이크 완성.
핀란드의 겨울 요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채소 '비트' 역시 오늘 메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비트는 먼저 껍질 채로 물에 넣고 푹 익혀서, 칼로 껍질을 도려내고 반으로 잘라서 오일과 차이브 등을 넣고 잘 볶아낸다. 이 비트 요리는 생선 스테이크의 밑부분에 깔리는 가니쉬 역할을 한다. 비트 요리는 잔손이 무지 많이 가는 파트였는데, 재미있게도 우리 조의 핀란드인 친구들이 전부 비트 담당으로 배정ㅋㅋ 어쩌자고 메인은 한국 애한테 주고ㄷㄷ 에피타이저는 미국 블로거가, 빵은 네덜란드 친구가 굽는 이 아름다운 위아더월드 분업이라니.
나의 파트였던 생선은 가장 까다로운 식재료이긴 했지만(손에 진하게 밴 비린내마저 흑흑) 조리는 가장 빨리 끝나서, 다른 조 요리를 맘껏 구경할 수 있었다. 핀란드 식사에 매번 곁들이는 납작한 크래커같은 빵은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는데, 빵반죽을 엄청 얇게 민 다음 캐러웨이 씨드와 굵은 소금 등을 뿌려 오븐에 짧게 구워낸다. 이 바삭바삭한 빵이 어찌나 맛있던지, 나중에 식사하면서 한 세 번은 리필한 듯.
우아한 테이블, 와인과 함께 즐기는 핀란드 퀴진
빡세게 요리를 하고 나니 두어 시간이 훌쩍 흘렀다. 그런데 테이블 세팅을 하러 식당으로 가니 어머나. 이렇게 아름다울수가. 따스하게 퍼지는 촛불의 빛이 겨울 오후의 아늑함과 맞닿아 근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드디어 모두가 함께 협동해서 만든 요리를 직접 맛보는 시간. '각자가 만든 요리를 설명해 달라'는 셰프의 말에, 왠지 유럽의 식문화는 이렇구나 싶어 괜시리 신기하다.
첫 요리는 북유럽에서 널리 먹는 야생동물의 생고기를 얇게 저며 만든 카르파치오의 일종이다. 커다란 고기써는 기계와 왠종일 씨름을 했던 미국 아저씨 숀이, 웃으며 요리 만드는 과정을 짧게 소개했다. 근데 이 요리 너무 이쁜데?ㅋㅋ 얇게 썬 생고기 위에 새콤한 크림소스와 케이퍼, 차이브, 굵은 소금을 뿌린 심플한 전채 요리다. 와인이 그냥 술술 들어가는 맛.
우리 핀란드 친구들이 영혼을 탈탈 털려가며 오래 조려낸 비트 위에 크림 소스와 베이비 리프, 그 위에 바삭하게 구워낸 생선살을 올린 오늘의 메인 요리가 나왔다. 이 요리에 대해 유럽 친구들에게 설명을 하는 내 스스로가 너무 웃긴 것이, 한국인 앞에서 불고기 만드는 과정 설명하는 외국인이 된 꼴이니ㅋㅋㅋ..;;
근데 이 요리, 너무나도 맛있는 것!!! 피니쉬 퀴진을 접할 때마다 깜짝 놀라는 순간이, 식재료간의 심플한 조화가 참 절묘하게 잘 맞는다는 것이다. 부드럽게 조려진 비트에 짭짤한 생선살, 홀랜다이즈 소스가 만들어내는 궁합이 참 훌륭했다. 함께 요리한 멤버들도 맛있다고 해줘서 너무 다행이었다. 아름다운 테이블에서 와인과 요리, 그리고 서로 다른 각국의 문화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참 행복하고 즐거웠다.
그나저나 오늘의 푸드 투어는 이제 시작일 뿐인데, 와인 몇 잔에 알딸딸해지니 큰일.ㅎ 정신차리고, 본격적으로 핀란드의 맛을 찾는 여정을 향해 출발.:)
이곳의 쿠킹 클래스는 헬싱키 관광청에 예약을 문의할 수 있다. 상세 페이지는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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