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French Kitchen, 세번째 레시피 - 보르도 와인으로 끓인 소박한 닭요리, 코코뱅
파리지엔의 아파트에 머물며 여행과 요리를 즐기는, 내 스타일의 파리 여행도 어느덧 3일째. 손님 초대도 해보고 도시락도 싸보니 요리에도 한층 탄력이 붙는다. 어제 친구들이 가져온 와인이 1병 남았으니, 내친 김에 오늘 저녁엔 진짜 요리다운 요리에 도전해볼까? 그리하여 내가 만든 오늘의 디너는 프렌치 가정식의 대표 메뉴, 코코뱅이다.
내 요리 솜씨가 아니라 신선한 프랑스산 현지 식재료가 다 해준, nonie 스타일의 코코뱅 만들기.
Ingredients (부르고뉴 식 프렌치 꼬꼬뱅 기준)
닭고기 1마리 (잘라서 손질된 것)
라돈 or 도톰한 베이컨 한 팩
레드 와인 반 병
토마토 1개
마늘 2쪽
셜롯 3~4개
양송이 15개
프로방스 허브믹스(부케가르니 대체)
버터 1큰술
소금&후추
* 줄리아 차일드의 레시피를 참고하였으나, 루(roux)를 만들어 넣지 않고 좀더 깔끔한 국물로 마무리했다.
바스티유 마켓에서 사둔 토마토와 셜롯은 큼직하게 썰고, 양송이는 모두 예쁘게 반 토막. 마늘도 다져놓고.
내일이면 이 정든 키친을 떠나야 하는데, 코코뱅 덕분에 남은 식재료까지 알뜰히 쓰고 간다. 마트에서 새로 산 재료는 닭과 베이컨, 마늘 뿐이다. 3~4인분의 코코뱅을 만드는 데 10유로도 안 들었다. 파리처럼 물가 비싸고 현지 미식과 관광객용 식당이 철저하게 분리된 도시에선, 현지 요리에 도전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줄리아 차일드의 프렌치 코코뱅은 베이컨을 먼저 볶아 기름을 낸 뒤, 그 기름에 닭을 굽는 게 첫번째 비법이다.
파리의 대형 마트에 가면 잘라서 손질된 닭고기를 쉽게 살 수 있다. 닭은 흐르는 물에 깨끗히 씻어 소금 후추에 잠시 재어두고, 냄비에 베이컨을 볶는다. 기름이 충분히 나오면 베이컨을 잠깐 건져놓고, 닭을 넣어 표면이 노릇하게 굽는다.
닭이 맛있는 향기를 뿜으며 노릇하게 익어가면, 건져놨던 베이컨과 와인을 넣는다. 와인은 드라이한 레드 와인이라면 어느 품종이든 좋은데, 마침 1병 남아있는 보르도 와인을 아낌없이 쏟아 주었다. 닭이 잠길 정도로 듬뿍 부어준다.
여기에 원래는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지만, 신선한 토마토가 남아 있어서 잘게 썰어 넣어주고, 다져놓은 마늘과 허브 믹스를 넣고 뚜껑을 닫는다.
이제 시간이 코코뱅을 만들어주는 단계. 약불에서 20~30분 이상 끓도록 두고, 옆 불에서는 양송이를 볶을 준비!
셜롯과 양송이는 무염버터 1큰술을 두른 팬에 소금 후추로 살짝 간을 하며 재빠르게 볶는다. 처음부터 코코뱅에 넣고 오래 끓이면 씹는 식감이 떨어지니, 따로 볶아서 나중에 넣는다. 버터가 좋아서 그런지 뭘 볶아도 제 맛이 난다.
와인에 닭을 빠뜨린 것 뿐인데, 과연 이게 요리가 될까 싶었던 우려도 잠시. 30분 후 냄비에선 알콜향은 자취를 감추고 생전 처음 맡아보는 황홀한 향기가 솔솔 새어나온다. 토마토가 풀어질 정도로 푹 익었을 때 따로 볶아놓은 버섯과 셜롯을 넣고 3분 정도 약불에서 졸여주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소울푸드 '코코뱅' 완성!
* 원래 정통 프렌치 레시피에는 마지막에 버터와 밀가루를 볶은 루를 넣어 국물에 걸죽함을 더하는 단계가 있지만, 생략해도 요리 맛에는 전혀 지장이 없었다.
생마르탱에서 줄서서 득템한 바게트도 가지런히 썰어서 곁들여 주고, 코코뱅을 만들고 남은 레드 와인도 멋진 와인잔과 함께 세팅해 놓기.
냄비채 식탁에 세팅한 푸짐한 코코뱅, 신선한 프렌치 바게트, 마레 지구의 작은 와인숍에서 샀던 이름모를 와인 한 잔. 파리지엔의 아름다운 아파트에서 묵는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저녁식사, 이 정도면 여행자에겐 분에 겨운 호사다.
태어나서 처음 만들어본 프렌치 코코뱅, 설레는 마음으로 접시에 덜어 천천히 음미해보기. 과연 맛은 어떨지?
헐! OMG! 너무 맛있어! 물론 내 솜씨가 아니라 신선한 현지산 식재료가 다 해준 코코뱅이기에 맛이 없을 수는 없지만, 들인 노력에 비해 코코뱅의 맛은 기대 이상으로 훌륭했다. 와인의 풍미가 닭고기에 속속 배어있고, 베이컨의 염분과 감칠맛 덕분인지 소금간을 거의 하지 않아도 간이 딱 맞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함께 식사한 언니도 프렌치 레스토랑에 자주 가는데 한국에서 먹어본 비싼 코코뱅과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라며 폭풍 칭찬에 폭풍 흡입...."파리에서 한 프랑스 음식이라 맛있는 거다. 똑같은 레시피로 한국산 재료를 쓰면 이 맛이 안날 거다"라며 나름의 결론을 내렸다.
남은 소스까지 바게트에 찍어 야무지게 클리어한 내 접시.....; 아, 정말 바람직한 저녁 식사였다.
3~4인분 정도 되는 양을 끓였는데, 실컷 먹고도 1인분 정도가 남았다. 하지만 남은 코코뱅은 절대 버리면 안된다. 다시 데우면 훨씬 더 맛있어지는 게 이런 요리의 특성 아닌가.
다음 날 아침 풍경. 다시 데워 좀더 풍미가 깊어진 코코뱅이 재등장했다. 빵은 오븐용 그릇에 담아 따뜻하게 굽는다.
이놈의 코코뱅은 질리지도 않는다. 전날 그렇게 많이 먹고 아침에 또 먹는데도 여전히 맛있다. 하지만 이것만 계속 먹기엔 느끼할 수 있으니 사과를 썰어 곁들이고, 만들어둔 사과 콩포트를 빵에 발라 코코뱅과 함께 먹어보니 더욱 맛있다. 쳐트니처럼 상큼하게 입맛을 돋우는 역할을 해준다.
여러 번 요리를 하고 많은 커트러리를 사용하고도 설거지 부담없이 요리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던 건, 식기세척기까지 완벽하게 갖춰진 프렌치 키친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중에 나만의 부엌을 갖게 되면 공간 연출부터 동선까지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신선한 아이디어를 듬뿍 얻은 시간이었다. 머무는 매 순간이 행복했던 이 곳을 떠나, 또 다른 파리의 아파트를 경험할 시간.
nonie의 파리 여행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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