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비앤비의 첫날 밤은 무사히 지나가고, 어제 데보라가 알려준 동네 카페에 슬렁슬렁 걸어가 아침을 먹는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알버트 파크를 따라 걷는 아침 산책, 주말에 열리는 해변가의 빈티지한 시장 구경으로 이어진다. 멜버른 로컬들의 일상과 다를 바가 없는 반나절을 보내고, 다시 시내 중심가에서 열리는 세련된 멀티미디어 전시를 보며 큰 영감을 충전한 후 돌아왔다. 하루가 조바심없이 꽉 찬 채로, 그렇게 끝났다. 멋진 여행이다. 










멜버른에서의 아침 @ Truman

전원 주택과 거대한 녹지공원이 이어지는 알버트 파크 근교의 한적한 동네. 현지인이 아니면 절대 갈 일이 없는 위치에 보석같은 카페가 숨어있다. 호스트인 데보라가 아침은 만들지 않기 때문에 그녀가 미리 알려준 카페를 찾았다. 이미 주말 아침을 즐기려는 인파로 야외석이 한껏 북적인다. 그들을 구경하고 싶어서 실내의 예쁜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언제나 그렇듯 롱블랙 진하게 한 잔, 토마토와 치즈를 넣어 구운 빵을 주문했다. 쾌활한 직원들이 바삐 움직인다.


단순하지만 신선한 재료만 사용한 나의 아침식사는 미소가 절로 나오는 맛이었다. 커피에는 농도를 조절할 수 있도록 더운 물을 함께 내온다. 소박한 빈티지 소품들로 꾸며놓은 카페 내부를 천천히 둘러보며, 느긋하게 아침을 먹었다. 에어비앤비에서의 하루는 이처럼 살짝 특별해진다. 호텔보다 저렴하게 머물면서, 현지인이 추천하는 카페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 더해지니까.









아침 산책 @ Albert Park

한국식 일정으로 멜버른을 둘러보는 이들이 절대 선택하지 않을 코스 중에 알버트 파크가 있다. 관광지도 볼거리도 아니고, 시내와도 트램 타야 하는 거리에 있으니까. 하지만 알버트 파크 끝자락에서 일정을 시작하는 내겐 이 공원을 산책할 기회가 주어진 셈이다. 사실 알버트 파크는 멜버른을 대표하는 공원 중 하나이고, 멜버니안에게는 멋진 조깅 트랙이자 산책 코스다. 트램을 타도 되지만, 오늘은 걸어보기로 했다.


이어폰을 귀에 꽃고, 여행 오기 전에 ECM 전시회에서 접한 Iain Ballamy의 고요한 포크 음반 'Quercus'를 플레이한다. (BGM 링크는 여기) 머릿 속의 잡념들이 완전히 사라지고 저절로 하늘을 올려다보게 되는 아침 산책 시간. 완벽했다.









에스플라나드 마켓 구경 @ St.Kilda 

끝날 것 같지 않던 푸르른 녹지가 지나고, 눈 앞에 시원한 세인트 킬다 비치가 펼쳐진다. 게다가 오늘은 마라톤 대회도 있는지 한 무리의 러너들이 떼지어 달려오는 중이다. 세계적으로 스포츠를 가장 많이 즐기는 사람들이 호주인이라는 통계도 봤는데, 그들의 생동감 넘치는 주말 풍경이 그대로 다가온다. 해변을 따라 걷다 보니 드디어 세인트 킬다를 상징하는 익살맞은 어뮤즈먼트 파크 'Luna Park'앞에 다다랐다. 이제 산책은 끝나고, 해변 윗길을 따라 주말마다 펼쳐지는 에스플라나드 마켓을 구경할 시간이다.








호주의 여러 시장을 돌면서 느끼는 거지만, 뻔한 관광객용 기념품보다는 아티스트의 개성을 담은 수제품이 참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특히 에스플라나드 마켓에서는 세인트 킬다의 정체성을 담은 아이템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루나 파크의 풍경을 그린 액자나 벽장식, 엽서도 많았고 비치의 자유로움을 표현한 제품도 많았다. 세인트 킬다는 옛부터 멜버른의 엘리트나 아티스트가 모여 살면서 보헤미안적인 분위기가 형성된 지역이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마켓도 참 이곳을 닮았다. 서울에도 이보다 큰 규모의 벼룩시장이 이제 많아졌지만, 서울과 그 지역의 개성을 담은 아이템은 아직까진 없는 것 같다.









뮤직비디오의 역사를 한 눈에! @ ACMI

평화로운 교외에서의 반나절을 마치고 페더레이션 스퀘어로 넘어왔는데, 날씨가 어둑어둑한 게 느낌이 불안하다. 금방이라도 빗방울이 떨어질 기세여서 실내 구경거리를 찾기로 했다. 그런데 마침 멀티미디어 전문 센터 ACMI에서 무려 '뮤직비디오'의 역사를 전시한 특별전이 진행 중이어서 1초의 망설임없이 바로 티켓팅. 근데 트램 안에서 가져온 카달로그를 제시하면 5불을 할인받을 수 있었는데 깜박하고 안 보여줘서 15$ 풀로 다 냄...ㅜ









영미권 팝 오덕질;;을 오랜 세월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호주 팝 신에도 관심이 많았는데, 호주를 비롯해 영미권 팝이 호주에 끼친 영향과 미국의 뮤비 역사까지 종합적으로 다룬 진귀한 전시였다. 호주 최초의 팝 뮤직비디오부터, MTV의 등장으로 호주의 팝신이 어떻게 변했는지, 그리고 영미권 메인스트림의 뮤직비디오가 어떻게 변화해 왔는지 생생하게 다루고 있다. 기발한 체험 부스도 많아 눈요깃거리가 풍성하다. 전시의 마지막은 놀랍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패러디한 '리믹스' 테마로 마무리된다.  


특히 MTV가 등장한 80년대 뮤직비디오가 흘러나오는 부스에서는 완전 추억이 새록새록 돋아나는 플레이리스트가 담겨 있어서 오랜 시간을 보냈다. 이 여행을 오게 된 것도 결국 MTV 덕분이고, 내 10대의 가장 많은 시간을 쏟은 컨텐츠도 뮤직비디오였다. 개인적으로는 큰 의미가 있었던 전시였다. 2014년 3월 현재 이 전시는 아쉽게도 종료되었고, 지금은 드림웍스의 특별전이 이어지고 있다. 








Lunch @ il pomodoro

전시를 오랫동안 보느라 점심 때를 살짝 놓쳐버렸다. 기왕 먹는 거 오늘은 돈 좀 써서 맛있는 걸 먹자는 생각에, 호기롭게 페더레이션 스퀘어에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의 야외석에 자리를 잡았다. 멜버른 시내에서도 가장 번화한 광장의 식당이라 비쌀 건 예상하고 있었지만, 볼로네즈 한 접시가 25$.....OTL 하지만 멜버른의 맛은 나를 배신하지 않았다. 직접 만든 홈메이드 소스를 얹어 눈 앞에서 파마자노를 갈아 내는 파스타는 수준급이었다. 오락가락하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따뜻한 한 접시를 금새 비워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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