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멜버른 시티투어를 시작하기 전에, 호주에서 가장 큰 디자인 전시회인 빅 디자인 마켓을 보러가기로 했다. 호주 전역의 날고기는 디자이너들이 한데 모이는 엄청난 광경도 진귀했지만, 행사가 열리는 왕립 전시관 내부가 너무나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굳이 판에 박힌 관광을 하지 않아도 오늘 하루가 풍성했던 건, 그저그런 숙소가 아니라 부담스러울 만큼 완벽한 서비스를 아침저녁으로 안겨주는 멋진 호텔과 함께 했기에 가능했다.
우아하게, 모닝 팬케이크 @ Crystal Club, Crown Tower
클럽 플로어에 묵게 된 덕에 전용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는다. 로비가 아니라 어제 프라이빗 체크인을 했던 크리스탈 클럽으로 향하니, 한창 조식 시간인데도 붐비지 않는 한가로운 레스토랑이 펼쳐진다. 기본 뷔페 외에 따로 메뉴를 주문할 수 있는데, 호주에 왔으니 역시 팬케이크 맛좀 봐야겠지? 훌륭한 커피와 푸짐하고 신선한 팬케이크의 조합은 역시 진리였다. 언제나 그렇듯 내가 조합하는 뷔페보다, 남이 만들어주는 디쉬가 훨씬 맛있는 법이다,
1년에 단 3일만 열리는 호주 최대의 디자인 마켓
매년 12월 초에는 호주 전역의 핸드메이드 작가와 디자이너들이 멜버른으로 향한다. 사흘간 열리는 빅 디자인 마켓(The Big Design Market)을 참관하기 위해서다. 멜버른에 도착한 다음날 마켓이 열린다는 정보를 타임아웃 멜버른에서 입수하고, 모든 일정을 조정해 이곳부터 찾기로 했다. 호주에 온 이유가 그들의 예술과 트렌드를 탐험하기 위해서인데,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게다가 입장료도 무료.
멜버른 대중교통에 아직 익숙하지 않았지만, 무료 트램을 타고 '멜버른 뮤지엄'이 있는 니콜슨(Nicholson) 스트릿에 내리니 왕립 전시관(Royal Exhibition Building)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몇몇 젊은이들도 마켓에 가는 길인지, 나와 같은 정류장에 따라 내린다. 하늘은 너무나 푸르며 쾌청하고, 눈앞에 펼쳐진 왕립 전시관은 시간을 거스른 듯 웅장한 포스를 드러낸다. 1880년 완공된 왕립 전시관은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멜버른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오 이런...입이 떡 벌어지게 웅장한 실내에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샹들리에가 눈에 띄는데, 자세히 보니 종이를 하나하나 접어 만든 것이었다. 이 마켓이 핸드메이드 아티스트들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큰 행사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로열 익스히비션 빌딩의 경력(?)과 위용을 고려했을 때, 이렇게 선뜻 모두의 건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자체가 놀라울 뿐이었다.(시드니의 MTV 파티 @ 타운홀 만큼이나 문화충격;;)
너무 놀란 나머지 꼼짝 못하고 서 있으려니, 입구에서 전시장 지도와 엽서 등을 손에 쥐어준다. 현재 호주에서 가장 트렌디한 로컬 디자이너와 그들이 만든 제품을 소비하려는 이들이 눈앞에 압축적으로 모여있는 광경. 믿기 어려운 행운의 순간이다. 정신 차리고 빨리 '바이어' 모드로 전환, 매의 눈으로 그들의 창의성과 아이디어를 빨아들여야 할 때다.
소형 캐리어에 예쁘게 걸어놓은 귀걸이들, 손으로 쥐면 살짝 뭉쳐지는 무독성 모래... 디스플레이부터 제품 자체까지 평범한 것들은 단 하나도 없었다. 구경온 이들의 안목도 매우 깐깐했다. 특히 호주는 친환경 제품이나 아기용품이 발달했기 때문에 디자인 제품 중에도 '에코' 컨셉트의 제품이 상당히 많은 편이었다. 멜버른과 시드니부터 저 멀리 태즈매니아, 그리고 물건너 뉴질랜드에서 온 브랜드까지 지역도 다양했다.
가격대는 꽤 높은 편이어서 이 모든 제품을 다 살 수는 없으니, 마음에 드는 부스를 발견하면 명함을 하나씩 가져왔다. 나중에 카달로그와 명함을 모아보니 꽤 되었는데, 명함도 어찌나 예쁘고 다양한지 디자인에 큰 참고가 된다. 만약 내가 멜버른 로컬이었다면 벽에 걸 예쁜 그림이나 인테리어 소품을 주로 샀겠지만, 여행자이니 쇼핑을 마음껏 못 한 게 아쉬울 뿐이다. 마켓이 열리는 날에는 야외의 푸드트럭부터 수상 경력이 화려한 크래프트 맥주와 커피 부스도 오픈하기 때문에, 점심 먹으러 겸사겸사 찾아오는 사람들도 꽤 많았다.
2014년 빅 디자인 마켓은 12월 5~7일에 열린다. 홈페이지는 http://thebigdesignmarket.com.
실은 마켓 구경을 한참 하다가, 예정보다 일찍 호텔로 돌아와야만 했다. 3주나 체류하기 때문에 현금만 소지할 수가 없어서 호주 우체국의 비자 선불카드에 금액을 충전해서 써왔는데, 갑자기 멜버른에서는 현금 인출이 안되는 바람에 디자인 마켓에서 쇼핑은 커녕 밥도 못 사먹었다. 일정은 아직 많이 남았는데 현금은 떨어져 가고....하는 수 없이 호텔 근처로 돌아와 NAB(호주 국립은행) ATM을 찾아서 겨우 현금을 인출할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어느덧, 저녁시간.
프리 디너는 그냥 디너로 @ Crystal Club, Crown Tower
크라운 컴플렉스 안에는 10불짜리 스테이크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레스토랑이 프로모션 중이었지만, 카지노를 찾은 관광객들로 식당마다 문전성시여서 한끼 때울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이때, 호텔 클럽 라운지의 Pre-Dinner 서비스가 갑자기 떠올랐다. 7시까지 라운지를 찾으면 가볍게 스낵과 와인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뭐라도 먹을 수 있지 않을까? 다시 호텔로 발길을 돌렸다.
크리스탈 클럽의 스낵 서비스는 눈물 겨울 정도로 훌륭했다. 아아니...굶주린 여행자에게 '석화' 굴이 왠말이냐ㅜㅜㅜ 신선한 스시와 김초밥, 해물 튀김과 구운 가지, 올리브와 고메 햄 등.....분에 넘치는 먹거리들이 가득했다. 자리에 앉으면 바로 피노누아를 따라주고, 반 정도를 비울라 치면 계속 리필에 리필....Stop, Please!
Today's Beer: Nine Tales amber ale
시드니에서 멜버른으로 왔으니 이제 주가 바뀐 셈이다.(시드니는 뉴사우스웨일스 주) 이제 빅토리아 주에 온 만큼, 로컬 맥주를 짧은 기간이나마 매일 마셔보자고 결심.ㅋㅋ 시내에서 한 병 공수해온 멜버른의 첫 맥주는 붉은 빛을 띈 앰버 에일. 알코올은 5.0%이고, 거품은 다른 맥주에 비해 살짝 적은 편이다. 사진을 찍고 나니 거품이 많이 꺼져 살짝 아쉬웠다. 향이 진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산뜻한 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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