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여행 중 꼭 한번씩은 들르는 재래시장, 특히 우리네 3일장, 5일장처럼 서는 이른바 농부들의 시장 '파머스 마켓'은 삭막한 도심 속 푸근한 인심을 만나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행 전에 샌프란시스코 파머스 마켓 정보를 조사했지만 대표적인 두 곳만 가기에도 빠듯했다. 현지인의 소박한 시장 풍경을 만날 수 있는 시빅센터 앞 시장, 그리고 낭만적인 바닷가의 정취를 느끼며 활기찬 사람 구경을 할 수 있는 페리빌딩 파머스 마켓의 비슷하지만 다른 풍경.
숙소에서 몇 걸음만 가면 나오는 광장에는 시청, 오페라 하우스 등 주요 건축물이 있다. 그리고 시빅 센터 앞으로 뚫려 있는 큰 길에는 매주 수, 토요일 아침 9시부터 파머스 마켓이 선다. 여행 3일째인 수요일 이른 아침, 처음으로 시장을 간다는 생각에 살짝 설레기까지! 광장 근처에는 벌써부터 과일과 채소를 한 꾸러미씩 들고 집으로 향하는 종종걸음이 많이 눈에 띤다. 위치는 잘 몰랐지만 그쪽으로 가는 이들이 많아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시빅센터 파머스마켓은 그야말로 관광객 보다는 현지인을 위한 시장이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여기서 파는 과일과 채소의 가격이 다른 시장보다 비교적 저렴하다. 그래서인지 동네 주민들이 장을 봐가는 모습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띤다. 시장의 규모는 그리 크지 않지만 다양한 채소와 식료품을 팔기 때문에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이곳 파머스 마켓에는 개인 농장에서 재배한 수확물을 바로 들고 나오기 때문에 품질에는 다들 자부심이 대단하다. 오늘 아침에 닭이 낳은 따끈따끈한 달걀, 채 이슬이 가시지도 않은 신선한 허브 다발을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이곳 시장이다. 엄마는 한국의 대형 마트와는 너무도 다른 이곳의 시장 문화, 캘리포니아의 풍성한 자연 혜택이 그저 놀랍고 부러우신지 자꾸 '여기서 살면 너무 좋겠다'고 하신다.ㅠ
왼쪽부터 라즈베리, 딸기, 골든 라즈베리. 맛은 우리나라 산딸기 맛?
엄마는 딸기를 보자마자 완전 꽃히셔서;; 8불 정도 하는 산딸기 세트를 통째로 사버렸다. 이걸 어떻게 가지고 다니지? 걱정했지만 선선하고 건조한 샌프란 날씨 덕에 하루 종일 들고 다녀도 멀쩡했다. 요거 파는 아저씨께 씻지 않고 먹어도 되냐고 물었더니 곧바로 탁자 밑에서 Organic이라고 씌인 판넬을 꺼내시며 "우리 딸기는 친환경 재배한 거니 그냥 먹어도 괜찮아요"라고 친절히 설명해주신다. 그날 오후 페리빌딩 근처에서 점심거리를 사서 요 딸기들과 함께 먹었는데 정말 상큼하고 맛있었다. 간만에 비타민 제대로 보충한 기분. 남은 딸기는 저녁에 호텔 가서 또 먹고.
토요일에는 가장 유명한 페리빌딩 파머스 마켓에 가보기로 했다. 시내에서 페리 쪽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벌써부터 빈티지 & 핸드메이드 제품을 파는 시장으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하지만 본격적인 파머스 마켓은 페리 플라자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서 있으니 발걸음을 재촉해 서둘러 마켓으로 향한다.
빈티지 마켓에서 파는 Flat bottles. 캘리포니아의 특산물인 와인의 빈병을 납작하게 눌러 장식품으로 재탄생시켰다.
페리빌딩 파머스 마켓은 사실 과일과 채소 같은 농산물을 사기에는 그닥 메리트가 없다. 이곳이 너무 유명해져서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이 되다보니 시빅센터보다 가격이 비싼 편이다. 대신 시식 코너가 풍부하니 다양한 모양의 과일을 구경하고 맛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또 핸드메이드 잼과 소스, 오일을 파는 곳이 많으니 선물용으로 구입하기에는 이곳이 더 종류가 많은 편이다.(가격은 물론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페리빌딩 파머스 마켓만의 매력은? 바로 이곳에서 난 신선한 식재료로 바로 만들어주는 먹거리 코너다.
시장 구경을 마치고 슬슬 배가 고파질 즈음 페리 플라자 뒤로 가면 La cocina라는 간판과 함께 각종 먹거리를 만들어 파는 노점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가장 인기 폭발이었던 코너는 "로스트 치킨 & 포테이토"를 파는 곳이어서 나도 그 길고 긴 줄 대열에 합류했다. 수십마리의 닭들이 갈색으로 익으며 먹음직스럽게 돌아가고 있으니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치는 건 치킨을 극도로 싫어하는 자가 아니면 불가능.;;
다행히 줄은 빨리 줄어들어 드디어 내 차례! 콤보 세트를 주문하니 치킨 반마리 & 치킨 기름으로 구워진 먹음직스러운 감자가 곁들여져 나온다. 감자는 로즈마리 시즈닝이라 그 맛이 가히 환상!!! 곁들여진 라임 꽉 짜서 뿌리고 정신없이 먹고 있으니 이게 행복이다 싶다. 내 오른쪽에는 샌프란의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난 치킨 먹고...ㅋㅋ
시빅센터에서 현지인들의 정겨운 생활 현장을 만남과 동시에 삶의 팍팍하고 고단한 흔적을 슬며시 엿보았다면, 페리빌딩에서는 다소 상업적으로 변질된 시장과 관광객 무리를 만난 대신 샌프란 특유의 여유로움을 물씬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마켓으로 향하든지 그것은 당신의 자유다. 어짜피 시장에서 사람 구경을 실컷할 순 있지만 결국 '구경'만으로 끝낼 수 밖에 없는게 여행자의 숙명이니까.
파머스 마켓은 이 두곳 외에도 Fort Mason Center, Mint plaza에서 정기적으로 하는 마켓이 있으니 인터넷으로 마켓이 여는 기간과 요일을 꼭 알아보고 찾아갈 것. 겨울에는 하지 않는 곳이 많다.
반응형
'TRAVEL > USA'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알카포네의 쓸쓸한 최후를 좇는 감옥 여행, 알카트라즈 투어 (0) | 2010.11.22 |
---|---|
페리빌딩에서 만난 블루바틀 커피, 그리고 한가로운 런치타임 (4) | 2010.11.15 |
샌프란시스코의 문화적 심장, 골든게이트 파크와 드영 박물관 (5) | 2010.11.05 |
완벽한 그들만의 도시,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에서 (7) | 2010.10.30 |
여행의 시작은 샌프란의 바다 향기와 함께, 피셔맨즈 워프 (8) | 2010.10.29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