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지만 활기찬 넬슨 파크의 파머스 마켓을 아쉽게 뒤로 하고
근처를 산책하던 중이었다. 갑자기 데비 스트리트(Davie Street) 쪽으로
수많은 인파들이 향하는 것을 목격했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밴쿠버의
거리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호기심이 가득해진 nonie,
일단 데비 스트리트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오옷!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데비 스트리트 전체가 축제의 물결이다!^^
바로 오늘은
데비 데이(Davie Day). 올해로 5번째 열리는 이 길거리 축제는
캐나다 은행인 Canada Trust의 스폰서로 1년에 단 하루 개최된다.
하루뿐인 축제인데 우연히 참가하니 너무 기뻤다. 이 짧은 여행 기간에
예상치도 못한 횡재를 연타로 두번째나 얻은 셈이다. 내가
여행에서
가장 가치있는 볼거리로 치는 것이 플리 마켓 다음으로 축제이기 때문이다.
현지인이라 해도 모르면 지나치기 마련이고,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큰 즐거움, 바로 도심의 거리 축제에서만 느낄 수 있다.
잔뜩 설레이는 마음으로 기꺼이 이 흥겨운 분위기에 몸을 실어본다.
데비 스트리트의 시작과 끝은 교통이 통제되어 있었다! 그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2008년 9월 6일, 오늘 하루를 신나게 즐기면 된다. 자. 그럼 한번 구경해볼까?
너무 갑자기 만난 축제여서 어디서부터 어떻게 돌아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일단
서있던 지점이 데비 스트리트의 딱 중간 지점이기 때문에, 우선 샤퍼스가 있는
오른쪽 거리부터 가본다. 여기엔 왠 마차에 진짜 말이 매여 있다! 옛날 마차 타기를
재현하고 있는 듯. 게다가 그 옆에서는 대장장이가 말발굽을 전통적인 방식으로
불에 달궈 망치질을 하고 있다. 일명 Blacksmith demonstrations 섹션이다.
캐나다의 시골 풍경을 지나쳐 조금 더 걸으니 이번에는 묘기하는 아저씨다;;
농구공을 3개씩 쌓는 묘기를 하시다가, 잠시 후에는 무지 높은 외발자전거
타기를 시도한다. 주위에 구경하는 사람들을 모두 참여하도록 유도하는 게
재밌었다. 이 아저씨는 유재석도 아닌데 진행 중독에 걸린듯 하셔서;;; 막
박수치면서 구경하다가 다음 구경거리로 이동.
거리 가장자리에는 이렇게 다양한 부스가 길게 늘어서 있다.
부스들의 성격도 정말 다양한데, 모금을 하는 비영리단체부터 먹거리를
파는 부스까지 각양각색이었다.
사실 이 부스 뒤에는 다 일반 가게들인데, 축제를 위해 기꺼이
영업 방해를 거리 홍보로 좋게 생각하고 협조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진짜 미국 드라마에서나 보던 전형적인 카니발 풍경!
이 마술사 공연 앞에는 어린 아이들이 빼곡히 앉아 열심히 이 아저씨를
쳐다보며 대답을 하고 있었다. 난 왠지 마술사는 다 사기꾼같더라;;;
요건 엄마와 아이가 같이 할수 있는 일종의 걸음마 연습 공간인 듯 했다.
아이가 노란 원에 발을 넣으면서 한발짝씩 이동하는 것. 이렇게 아이를 위한
교육적인 체험 행사가 정말 많았다.
처음에는 새하얀 차였겠지?^^ 많은 아이들의 참여로 하나의 예술품이 되어버린
그래피티 자동차.
자기 몸보다 더 큰 비눗방울을 만들어낼 수 있는 비눗방울 섹션도
아이들에게 대 인기였다.
이제 조금은 익숙해진, 밴쿠버의 거리 풍경을 생생히 담아낸 화가들의
작품들도 만날 수 있다. 특히 랍슨 스트리트와 캐나다 플레이스 등은
그림만 봐도 단박에 알아볼 수 있었다. 이 그림들과 데비 스트리트의
어우러짐도 정말 밴쿠버스럽다. 모든 게 한 편의 그림같고, 캔버스 속 풍경만 같다.
익살스런 원색의 그림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난 여행하면서 일부러 미술관이나 박물관을 거의 찾지 않는 편이다.
그것도 뭐 개인의 취향 차이겠지만, 유독 한국 사람들은 여행이 아닌 관광 코스로
도시를 인식한다. 한국 가이드북에 씌인 루트 그대로 정신없이 점을 찍기만 할 뿐.
그러다 보면 우리네 가이드북에 가득 적힌 각종 박물관만 들락날락하다가
하루가 다 간다. 난 그런 여행이 싫다.
굳이 축제가 아니어도, 난 어두컴컴한 건물에 박제된 유명한 그림보다는
길거리에 놓인 무명화가의 그림이 더 좋다. 이렇게 축제라는 행운을 빌려
만나는 멋진 그림들은 더욱 더 행복하고.
시간이 갈 수록 인파는 점점 늘어만 간다. 처음 올때만 해도 축제가 막 시작되는
분위기였는데 이제 점점 무르익어간다. 나도 덩달아 에너지 업업!
여러 부스들 중 꽤나 인상깊었던 오바마 부스.
나도 개인적으로 오바마를 지지하기 때문에 캐나다에서까지 오바마를
후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게 놀라우면서도 반가웠다.
캐나다도 미국의 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이번 선거가 강 건너 남의 얘기만은 아닌가보다.
흥겨운 축제 분위기 속에 어느덧 동심으로 돌아간 nonie.
저거 한번 해보겠다고 바득바득 우겨 붓 하나 얻었다. ㅋㅋㅋ
귀여운 아가들 속에 섞여 나도 노란빛 붓질을 보태본다. 이젠 정말
축제의 어엿한 일원이 된 뿌듯한 기분! ^^
아까 파머스 마켓에서 빵 한 조각 먹은게 전부인 nonie.
여기저기서 풍겨오는 맛깔스러운 향기와 지글지글한 소리에
갑자기 뱃속이 요동을 친다. 아까부터 계속 눈에 거슬렸던(?)
햄버거 부스로 고고씽.
데비, 랍슨 등에 있는 대중적인 그릴 레스토랑 "Moxie's Classic Grill'의 부스.
그릴에는 지글지글 패티가 익어가고, 이 냄새가 부른 길고긴 햄버거 줄에
살짝 합류! 쇠고기는 좀 불안하니 고기 패티 말고 살몬 버거로 결정.
근데 인스턴트 패티를 구워주는 햄버거와 달리, 살몬 버거에는
연어 조각을 통째로 그릴에 구워준다! 으핫~ 맛있겠다^^
빵에 연어만 끼워주면 나머지 재료는 자기가 알아서 적당히 넣어먹으면 된다.
욕심쟁이 nonie의 대형 버거. 미어 터진다 ㅋㅋ
양배추+양상추, 양파랑 토마토 슬라이스, 그리고 마지막으로 머스터드랑
케찹 잔뜩 뿌리면, 축제에서 먹는 즐거운 살몬 버거 완성!!!
선 자리에서 순식간에 사라졌...;; 역시 캐나다는 연어다. 넘넘 맛있었음.
오늘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데비 스트리트 끝에 마련된 대형 공연장에서
열리는 야외 콘서트! 쿵쿵거리는 음악 소리에 이끌려 가봤더니
이 분의 목소리가 낭랑하게 울려퍼지고 있었다.
모르는 가수인데 나이 좀 있어 보이는 분이라서...그냥 행사용
로컬 가수인가;;했는데, 노래가 너무 좋길래 돌아와서 조사해보니 이분 꽤 유명하다.
킴 쿠즈마(Kim Kuzma). 캐나다에서는 인디레이블 아티스트로는
가장 유명한 가수 중 하나다. 정규 앨범도 몇 장이나 발매했고
현재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고.
처음에는 큰 기대없이 그냥 즐겁게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는데,
이 분이 노래를 너무 잘하시는데다가, 기성 가수 커버곡 외에 자신의
곡이라며 소개한 곡들도 너무너무 좋은거다! 약간 애시드 재즈 풍.
이런 음악은 공연 재밌게 하기 상당히 어려운데 보컬 내공이 대단했다.
게다가 그 열정적인 모습이 정말 멋졌다!
커다란 400D로 너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으니까
요 언니 우리쪽에 포즈 취해주시면서 아는 척 해주는 센스!!ㅋㅋㅋㅋ
1부 공연 끝날때까지 자리를 뜨지 못했다. 샤카칸 노래를 몇 곡 했는데
Tell me something good 나올때는 나도 모르게 흔들면서 따라부르고 난리;;
하늘에 두둥실 떠있는 풍선들과 함께 내 마음도 한없이 떠오르는 기분.
갑자기 순간 눈물이 나올 만큼, 오랜만에 느껴보는 행복이다.
정말 이 순간이 멈춰버렸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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