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4년부터 시작한 강의 일은 어느 덧 12년차를 맞이하고 있고, 여전히 강의는 재밌다. 재미있고 보람있고 돈까지 잘 벌 수 있는 일을 업으로 할 수 있다는 게 엄청난 행운이라는 것도 잘 안다. 하지만 직업으로서의 강의는 월급받는 일처럼 루틴화된 일이 아니고, 매번 새로운 업체와 새로운 협상을 해야 하는 일이다. 따라서 강의 자체를 즐겁게 여긴다고 해서 이 일 전체가 즐거울 수는 없다.
게다가 일을 받기 위해서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증명해야 한다. 더이상 증명할 게 남아나지 않을 만큼 이미 투명하게 모든 것이 증명되어 있는 분야에서조차도, 쓸데없는 행정 절차와 지리한 과정이 서서히 나를 지치게 만든 지가 몇 년 됐다. 아마도 이런 경험들이 쌓이고 쌓여서, 절대 교육 대행사나 정부 사업은 메인 사업으로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는지도 모르겠다.
몇 번이나 기록해 두었듯, 이러한 과정에 지쳐 유튜브에 뛰어들었다. 유튜브는 잘되면 이것 자체가 돈이 되는 일이고, 안되도 나를 손쉽게 증명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가 되기에 안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지금 내 유튜브 채널은 다행히도 여러 시행착오와 노력 끝에 이 둘 모두를 할 수 있게 됐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강의라는 본업을 대하는 내 태도도 서서히 바뀌고 있다.
예전처럼 나를 애써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물론 예전에도 나를 떠나간 일은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해 왔지만, 요즘 들어서는 굳이 내 가치를 쳐주지 않는 일을 붙잡으려 하지 않는다. 이미 특정 분야에서 내 업은 많은 증명이 되어 있고, 이 분야의 미디어를 몇 개나 운영하고 있고, 책도 여러 권 냈다. 기관 이러닝 사이트에 내 이름을 치면 개별 주제 강의가 37개나 나온다. 더이상 뭘 더 어떻게 증명을 해야 할까?
단가도 이제 많은 협상을 하지 않는다. 내가 여기서 단가를 낮춰주면 그 가격이 이 업계 상한선 기준이 된다. 나는 모든 강의를 그 지역이나 기관의 니즈에 맞게 커스텀하고, 최적화된 최신 사례를 리서치해 강의 내용에 넣는다. 즉 강의를 넘어 컨설팅의 영역까지 커버한다는 얘기다. 따라서 그러한 수준의 전문 강의를 요청하고도 단가를 낮추면 이제 애써 잡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합리적인 단가를 제시한 업체와만 빠르게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고, 준비에 최선을 다한다.
무엇보다 유튜브 채널이 미디어로 자리를 잡으면서 해외 출장이 크게 늘어났다. 즉 시간과 에너지 분배에 한계가 있고, 내가 어렵게 얻어낸 지식과 인사이트를 굳이 공공 분야에만 투입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공공 영역은 언제까지 고급 인력의 지식과 경험을 이렇게 싼 값에 쓰려고 할까? 이렇게 전문가들의 선의와 희생에 기대는 시스템은, 계속 잘 작동할까? 특히나 지금처럼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유튜브에 진출해, 저마다의 시장 몸값을 정확하게 평가받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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