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디어 취재처 보폭을 넓히려고 업계 행사에 출몰하다 보니, 보고 들은 것들이 많아졌다. 유튜브 스트레스도 살짝 있다보니 머릿 속에 너무 많은 생각(negative)이 떠돌아서, 단상을 한번은 정리하고 가야겠다.
쓰다보니 엄청 길어질, 쓰다보니 더 화나는 이런저런 잡소리들.

여행사 왜 안 하냐고? '왜 해야 하는데?'
'혹시 여행사도 하세요?'
지난 12년간 여행 전문 강사로 일하면서 가장 많이 들었고 동시에 가장 외면했던 질문 중 하나다. 솔직히 강의 현장에서는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기분이 썩 유쾌하지는 않다. '강의 잘 들었는데, 내 여행은 그냥 맡길 수 없냐'는 투명한 의도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스스로 여행을 똑똑하게 예약하는 법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힘이 빠지는 질문이다. 요새는 유튜브를 통해 굳이 비즈니스 메일 주소에 꾸역꾸역 메일 보내며 여행 상담 맡겨놓은 듯이 구는 어르신들의 생떼를 보며 비슷한 감정이 든다.
트렌드 지났고 한물 간 사업이고 나발이고 다 떠나서, 현재 통용되는 '예약 대리 및 인솔 토털 서비스' 개념의 여행사는 경제학도인 내 관점에서 좋은 비즈니스가 아니다. 변수가 너무 많아서 리스크 관리가 안되기 때문이다. 아무리 인솔 이력이 많더라도 사고가 없을 것이라는 보장이 전혀 없는 것이 여행업이다. 현지에서 발생하는 문제뿐 아니라, 외부 지형이 급변하면(팬데믹) 산업 자체가 흔들릴 정도로 외부적 환경 변수도 크다. 본인이 '여행을 많이 해봤으니 여행사를 차리자'는 생각으로 연결되는 사람들이, 나는 너무 신기하고 겁이 없다고 느낀다.
남의 여행을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오만함이라는 기본적인 생각이 바뀌지 않는 한, 저런 스타일의 여행사는 굳이 할 이유도 없고 관심도 없다. 다만 유튜브를 통한 커뮤니티가 커질수록 플랫폼이나 현지 투어사들과 협업하여 자유여행 시장의 판을 키울 것이다. 또한 장기적으로 여행사의 개념은 미국처럼 1:1 에이전트 컨설팅으로 바뀔 것이라고 본다. 그러한 흐름에서, 럭셔리 마켓에서 국내에서 가장 많은 정보와 지식을 모으고, 제대로 진출할 준비를 하려고 한다.
그들의 마지막 밥그릇? 손 하나 까딱하기 싫은 여행자의 게으름
구독자 7만에 가까운 여행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요즘 가장 많이 받는 메일은 '패키지 구려서 싫은데, 자유여행하려니 알아볼 거 개많네. 나 나이 많아서 힘들어. 상담 수수료 낼테니까 대신 예약좀 해줄래?'다. 이거, 나만 받을 리가 없다. 엊그제 행사에서 만난 유명 여행 유튜버 분도 같은 내용의 메일을 많이 받는다며 토로했다. 근데 더 웃긴 건 우리 대화를 지켜보던 패키지 여행사 직원이 '사람들이 개인 유튜버에게 그런 메일을 많이 보낸다고요?'라며 놀라워 했다는 것이다.
이게 놀랍다는 여행사가 난 더 놀랍다. 대체 뭐가 놀라운가? 이게 다 너네 때문이라는 생각을, 이젠 좀 해야 하지 않나? 초저가 낚시로 모객해 선택관광과 쇼핑 덤탱이 씌우는 걸 수익모델화하고, 그걸 '여행'이랍시고 가스라이팅해 온 세월이 쌓여 소비자의 불신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게다가 유튜브의 세상이 도래하면서, 굳이 검색을 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을 통해 정보에 강제로 노출되는 미디어 환경이 만들어졌다. 덕분에 유구한 역사의 단체여행 가스라이팅도 막을 내리는 중이다.
거의 모든 세대의 사람들이 여행사의 추악한 이면을 다룬 유튜브 영상에 자연스럽게 노출되고 있다. 어떤 채널은 패키지 여행에 잠입해 자신을 협박하는 가이드를 촬영해 오기도 하고, 나처럼 300만원 크루즈를 2천만원에 파는 여행사의 폭리를 소개하기도 한다. 모두 알고리즘을 타고 널리널리 퍼져나가 수십 ~ 수백 만 명이 시청한다. 이로 인해 여행사에 대한 일반인(특히 정보에 소외되어 있던 노년층)의 시각은 최근 몇 달 새 정말 많이 바뀌었고, 앞으로 더 빠르게 바뀔 것이다.
하지만 소비자는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이 아니므로, 각자의 입장에서 대안을 찾을 뿐이다. 일반인 기준으로 가장 쉽게 떠오르는 방법은, 자유여행 정보를 알려주는 유튜버에게 내 여행을 부탁하는 것이다. 다만 여행사에게 호구잡히고 싶진 않으면서 예약 방법을 스스로 공부하기도 싫은 이기적인 소비자들을, 난 영원히 상대할 생각이 없다. 무엇보다 여행 컨설팅과 매표 대리는 '여행업에 등록한 사업자'만 할 수 있는 일이다. 유튜버에게 백날 메일 보내봤자 해결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뭐 좀 다른 거 없나 찾던 중장년 소비자를 노리는 이들은 따로 있다. 온갖 다단계와 쪼개기 납부, 현금 선입금 방식으로 선불 여행사 해먹다가 망하고 튀는 사기꾼들 말이다. 이 사례를 몇 년 전부터 수집하다가 관뒀다. 전국적으로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업계에서 고위 보직에 있던 자들이 운영하던 여행사들도 무책임한 파산을 면치 못했다. 그러고도 또 스멀스멀 기어나와 권력에 기웃거리는 이들이 포진한 이 업계는, 이토록 낡았다.
이게 다 유튜버 때문이라고?
이외에도 요즘 내 눈에 띈 여행사 님들의 면면은, 대충 다음과 같다.
- 제대로 된 영업활동도 없이 온갖 업계 행사마다 빠짐없이 와서, 호텔 밥이나 축내고 다니는 '무늬만' 여행사.
- 내 채널의 귀한 구독자들 댓글마다 훈계하며 어그로 끌던 여행사. 개인 계정도 아니고 여행사 공식 계정으로 다신 댓글들 잘 봤고요, 응. 차단이고요.
- 근데 애써 철판 까실 일 만들어 주셨길래, 저도 친히 같이 깔아 드렸습니다.
- 이름만 대면 알 패키지 여행사 다니면서, 개인적으로는 무조건 자유여행 간다고 자랑스레 떠벌리던 여행사 직원. 이건 그냥 좀 웃겼다.
이처럼 직업적 수명이 다 되어가는 이들의 눈에는, 소비자가 우리를 떠난 건 다 그놈의 유튜버들 때문이라고 억울해하는 것 같던데, 그거 아는가. 유튜버들은 언제나 수많은 대중의 눈높이에 맞춰 콘텐츠를 기획한다는 걸 말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걸 만들어야 팔리지 말입니다.
지금 시대에는 완전히 새로운 방식의 미디어형 여행 플랫폼이 필요하다. 우수한 현지 여행사와 혁신적인 스타트업, 똑똑한 소비자, 그리고 이들 사이에서 훌륭한 연결자 역할을 하는 게 장기적인 목표다. 천천히 한 발씩 나아가면서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하는, 하지만 볼때마다 열받는 업계 작태는 일단 이 정도만 기록해 두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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