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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여행

우리의 여행, 무엇이 변화해야 할까? feat. #blacklivesmatter

by 여행강사 김다영 nonie 2020. 6. 3.

여행산업의 진짜 위기는 이제부터

우리는 흔히 "인기 있는 건, 다 이유가 있는 거야"라는 말을 종종 한다. 다수가 좋아하는 것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내 선택을 대세에 맡기는 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소비 정서는 패키지 여행이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오명에도 불구하고 지난 20여년 가까이 소비자의 사랑을 받는 기반이 됐다. 자유여행의 목적 또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인스타에서 발견한 타인의 인증샷을 내 얼굴로 바꿔넣기 위해, TV 먹방을 내 '먹방'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큰 고민없는 여행을 반복해 왔다. 

 

 

 

 

최근 아이슬란드 관광청이 페북에 게재한 미국의 인스타그래머, 빅토리아 & 테렌스의 사진. 나는 2018년 인도 호화기차에서 이들과 함께 여행했다. 수많은 의상을 준비하고 철저하게 계산된 촬영으로 '동경'을 유발하는 사진 기법은 인플루언서의 '글로벌 스탠더드'로 통한다. 

 

 

여행업계는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인 나약함을 먹이 삼아 성장했다. 타인의 욕망을 나의 것으로 착각하는 나약함 말이다. 소셜 미디어는 소비자가 인플루언서(생산자)의 결과물에 일방적으로 노출될 수 밖에 없으며, 여행업계는 이 점을 최대한 활용해 양적 팽창을 거듭해 왔다. 한국에서 오버 투어리즘이 이슈조차 된 적이 있었던가?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는 파리, 프라하, 바르셀로나, 베네치아는 지난 10년간 한국인의 최애 여행지였다. 나는 여행 콘텐츠 생산자로서 여행과잉 현상에 책임의식을 느꼈다. 강사가 업이 된 이후부터는 의도적으로 이들 도시를 관광지로 부각시키거나 굳이 여행을 하지 않았다. 내가 아니어도 이미 소개하는 사람이 많고, 개인적으로 구대륙에 흥미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의식적인 여행(conscious travel)'은, 소극적 실천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걸 깨닫고 있다. 

 

2020년, 전염병의 창궐로 인해 자의가 아닌 타의로 '오버 투어리즘'은 끝났다. 이제는 싫어도 어떤 나라를 가는 이유에 대해 신중하게 생각해야만 하는 시대가 왔다. 동시에 새로운 위협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제 관광객을 향한 띠꺼운 눈총을 넘어 '동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뜻모를 공격을 당할 위험과 맞서야만 한다. 우리가 동경하던 유럽은 코로나 사태로 순식간에 초토화되었고, 세계 1등을 자처하던 미국은 인종차별이라는 오랜 사회적 모순까지 겹쳐 사회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코로나 자체보다 코로나로 파생된 일련의 상황을 보면, 미국을 축으로 돌아가던 세계 여행산업의 재건은 훨씬 더 멀어졌다고 생각한다. 

 

 

 

'You Chinese virus spreader': After coronavirus, Australia has an anti-Asian racism outbreak to deal with

After a knife-wielding white woman spewing racial abuse attacked them in their own hometown in New South Wales at the end of March, it took weeks for Vietnamese-Australian sisters Rosa and Sophie Do to once more feel comfortable crossing the street....

www.asiaone.com

-> 호주에서 점차 확산되고 있는 심각한 동양인 인종차별 현상. 미국의 시위가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여행을 해야 할까?

미국의 #blacklivesmatter 운동은 나에게 큰 각성으로 다가왔다. 산업의 기반이 망가져도 코로나19는 언젠가 백신과 함께 메르스나 사스처럼 지나갈 일이라고 생각해 왔지만, 미국의 인종차별 반대 시위는 차원이 다르다. 미국만의 일이 아니고, 여행업계와도 무관하지 않은 일이다.

우리는 소셜 미디어로 각자 세상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편향된 프레임을 갖게 됐다. 나의 마음에 맞지 않는 정보는 버리고, 내 정치적 스탠스와 결이 같은 뉴스만 손쉽게 취할 수 있다. 미국에서는 트럼프 증오자와 트럼프 지지자가 극명하게 갈리며, 11월에 트럼프가 패배한다고 해도 그 '지지자'가 사라지는 건 아니다. 세계적으로 보수성을 띤 민족주의 운동은 증가하는 추세고, 세상은 안타깝게도 더욱 분열되고 있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무형의 여행 인프라, '평화'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업계 주류는 인종차별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요구하는 #blacklivesmatter 운동에 침묵하고 있고, 미국의 여행 미디어 스키프트는 이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여행업계가 이 사태를 방관하고도 코로나만 버티면 이전처럼 여행자의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을까? 세계는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고, 사람들은 기업들이 어떻게 대응하는지 지켜보고 있다. 결국 6월 2일, 마지막까지 트럼프의 눈치를 보던 미국의 호텔 경영자 중 몇몇은 시위에 대한 공개적 지지를 표명했다.

 

여행자 역시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절대 자유로울 수 없다. 이제는 부도덕한 여행 기업, 인종차별을 조장하면서도 동양인의 돈은 노리는, 예를 들면 트럼프가 연관된 기업은 더 이상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고 적극적으로 얘기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의식적인 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기업을 찾아야만 한다. 환경을 조금 덜 파괴하고, 지역민에게 더 많은 이익을 돌려주고, 다양성과 포용성을 기반으로 사회에 기여하려는 여행 기업 말이다. 코로나 이후 여행산업이 어느 정도 회복되고 나면, 컨셔스 트래블에 대해 좀더 깊게 연구해 보려고 한다.

이제 여행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란, 대단히 어려워질 것이다. 앞으로 여행 서비스나 여행 콘텐츠를 기획하고 있다면,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스스로 어떤 역할을 해야 할지를 이전과는 다른 방향으로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이건 근 두 달째 정부의 관광창업 지원사업에서 심사와 컨설팅 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나 스스로의 의식과 방향성을 다잡는 글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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