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현재, 나는 직업의 독립 5년 차를 맞은 1인 기업의 대표다. 30대 전체를 통틀어 내 삶에서 가장 잘한 결정은 단연코 ‘직업의 독립’이다. 지금은 실제 필드에서 프로 경력을 쌓는, 제 2라운드(35~45세)의 중간에 서 있다. 만약 내가 여전히 조직에 남아 45세가 되었다면, 그 후 직장에서 버틸 수 있는 기간은 길어야 10년, 짧으면 5년일 수도 있다. 이미 50대가 되어 향후 20~30년의 커리어를 다시 설계하는 퇴직예정자 대상 교육을 하다 보니, 커리어 관리는 인생 관리와도 같다는 것을 매번 절감한다.
책 '쿨하게 생존하라'에서는, '일반 직장인이 자기 업을 찾는 마지노선은 35세'로 정의했다. 일단 35세에 업을 찾으려면, 25~34세에 무엇을 했는지를 깊이 살펴봐야 한다. 나 역시 30대 중반이 되기 전 독립을 결정했고, 정확히 25~34세에 쌓은 경력이 밑바탕이 되었다. ‘직장에서 직업 만들기, 35세 이전에 업을 찾고 독립하기’의 성공 여부는, 초반 2~3년 차에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아직 과정에 있기는 하지만 나름 5년 차로 접어들다 보니, 그간의 과정에서 영향을 미친 요인을 살펴봐야 다른 이에게도 구체적인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직장이 직업을 만들어주지 않다는 건, 누구나 안다. 급한 마음에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다. 내가 처음 강의를 시작한 백화점 아카데미에서는, 꽃꽂이와 요리 수업에서 두 손 가득히 오늘의 결과물을 든 채 뿌듯한 표정으로 나서는 이들을 매일 본다. 지난 달에 내 여행글쓰기 수업을 들은 이들이, 다음 달에는 그쪽 강의실에 앉아있는 식이다. 이런 강의를 듣는다고 단번에 여행작가, 플로리스트, 셰프가 되길 바란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 직업에 대한 동경을 끊임없이 상품화하는 수업이, 길어야 4주짜리 직업 체험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나? 취미는 일상을 풍요롭게 만들지만 '직업', 즉 40~50세 이후의 무기로 성장시키기는 매우 어렵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 취미는 당신의 '강점'이 아니기 때문이다. 장기간 수련을 통해 강점으로 변모할 수도 있고, 이것저것 탐색해보는 과정도 필요한 거 아니냐고? 맞다. 하지만 이미 30대 중반 언저리에 와 있다면, 자신이 이미 가진 무기를 섬세하게 갈고 닦는 데 집중하는 것이 확실한(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많은 이들이 막연하게 선망하는 '여행작가(넓게는 여행콘텐츠 직종)'의 사례를 한번 보자. 여행기자 출신이자 11년 차 여행 블로거로서 이쪽 업계를 오래 지켜봐 온 입장에서는, 일반인/블로거 출신 여행서의 출간 후 행보는 장기적인 업으로 연결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여행 분야와 연결고리가 없는 일반인이 이쪽 일을 막연히 꿈꿀 때, 일단은 부수적이라도 여행작가 타이틀을 갖고 샆어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세계일주를 하고 책을 내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출간은 '인생의 이벤트', 해프닝으로 끝난다. 블로그를 하고 안 하고, 책을 내고 안 내고는 중요하지 않다. 취미와 업을 가르는 결정적인 필수 조건은, '경력과 차별성'이다.
강점 2의 세계에서 강점 1을 추가로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다.
개인적으로 한국에 '여행작가' 타이틀을 단독 업으로 가진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보는데, 극소수의 예외로 여행작가이자 시인 최*수 님이 있다. 첫 책을 낼 당시 그는 주요 언론사의 여행 기자였다. 책에서는 기사와는 완전히 다른 색깔의, 시에 가까운 감성 에세이를 선보였다.(*강점 1: 신춘문예 등단->필력) 여행작가로 독립해 활발히 일하시는 지금은, 기업과의 협업 시 철저히 취재 기사로 접근한다. (*강점 2: 여행기자 경력->업의 전문성) 강점 1은 '잘하지만 돈이 되기 힘든 일'이라면, 강점 2는 '잘하고 돈도 어느 정도 되는 일'이다. 그런데 강점 2의 세계에서 강점 1을 가진 사람은 매우 드물기에, 남과 차별화된다. 이 두 가지 내공을 연결하여, 시장이 원하고 자신도 잘하는 영역을 구축한 것이다.
사회에서 '제 값'을 매겨주는 가치의 기반은, 자신의 경력과 연계된 전문성이다. 콘텐츠로 업을 만들고 싶다면, 이 정도의 엄청난 경력직 프로가 이미 필드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여행 바닥이든 아니든, 글쓰기로 직업을 만든 사람은 대부분 프로 세계에서 녹을 먹었던 이들이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유명한 말을 남겼지 않은가. '돈을 받기 시작했을 때 더 나은 글을 쓰기 시작했다'라고 말이다. 업계는 언제나 프로와 아마추어를 냉정하게 걸러내 가격을 매긴다. 그 가격의 총합으로 '지속 가능한' 생계가 가능해졌을 때, 비로소 해당 업을 가졌다고 볼 수 있다.
나의 강점을 찾기 쉽다면, 왜 고민을 하겠는가?
그래서 35세 이전에 나만의 업을 찾으려면 '과거를 분석하고 강점을 발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그걸 찾기 쉽다면 왜 고민을 하겠는가? 내 강점을 스스로 알아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여행 커리어 워크숍을 하면서 만난 수많은 직장인들이, '여행' 쪽에서 뭔가를 하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1:1 코칭까지 하지는 않았지만, 대부분 자신의 강점은 애써 회피하거나 외면하는 경향을 보였다. '저도 선생님처럼 여행하면서 살고 싶어요'라면서 찾아오지만, 사실은 현재 커리어가 불만족스러운데 대안이 없는 것이다. 여행은 그 과정에서 반복적인 도피처로 기능할 뿐, 사실은 자신의 강점과 아무런 연관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이쯤 해서, 워크숍 사례 하나.
졸업 후 사무직종에 다니다가 쉬고 있다는 수강생의 여행기를 읽었다. 흔히 알려지지 않은 클래식 음악가의 생가와 음악 박물관을 집요하게 순례하는, 전문적이고 흥미로운 기록이었다. 알고 보니 그녀는 최근에 고전음악을 전공한 음대 졸업생이었다. '이게 뭐, 의미가 있겠어요? 지금은 음악도 포기했고, 글도 잘 못 쓰는데' 라며 말끝을 흐렸다. 자신은 잘하는 게 없는 게 고민이라고 했다. 자, 여행 가이드북을 쓰는 소위 여행작가가 이런 콘텐츠를 만들 수 있을까?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그런데도 참 신기한 것은 정작 전공자(전문가)는 자신의 분야가 그저 당연한 '기술'일 뿐, 남에게 없는 강점이라는 생각을 못한다.
타인의 결과만 바라보는 '막연한 동경'은, 자신으로부터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그래서 강점이라는 건, 객관적 시선이 필요한 것이다. 만약 그녀가 음악적 지식, 연주 등을 결합한 이야기를 꾸준히 연재했다면 어땠을까? 하지만 수업이 끝날 때까지, '나도' 여행하며 살고 싶다던 그녀는 끝내 연재를 시작할 용기를 내지 못했다. 아마도 전공을 포기하고 현실에 편입되는 과정에서 무의식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테고, 이 부분을 심리적으로 치유하는 과정 역시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결과만 끊임없이 부러워하는 막연한 동경은, 자신으로 향해야 할 시선을 계속 밖으로 향하게 한다. 여기서 더 나가면 남의 커리어를 흉내만 내거나, 알맹이도 없는데 껍데기(브랜딩)만 앞세우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스스로를 제대로 평가할 시점은 한없이 멀어져 가고, 시간이 많이 흘러 후회하면 너무 늦는다. 아직 35세 전이고 자신만의 업을 찾고 있다면, 직장에 있을 때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서 강점과 연계한 커리어를 처음부터 탄탄히 설계하기를 권한다. 무작정 뭐라도 해보자라며 실행만 앞서는 게 정답이 아니다. 이미 20대를 지난 30대라면 더더욱.
※이 글은 2018년 2월 4일 제목 '35세 이전에 내 업을 찾고 싶다면'으로 브런치에 발행한 글입니다. 브런치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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