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 전 배낭여행 중 뮌헨과 프랑크푸르트에서 뭔가를 먹은 기억은 고작 소세지와 1리터짜리 맥주였지만, 현지에 사는 친구와 함께한 베를린의 첫인상은 먹거리의 천국이었다. 신선하고 영양 가득한 호텔 조식부터 현지인만 아는 레스토랑에서 먹는 파스타, 노천에서 마시는 커피 한 잔, 그리고 우연히 들렀던 티벳 커리집까지....관광지 순례가 아닌 맛집 순례로 꽉 채운, 베를린에서의 하루.
Breakfast @ 25 Hours Bikini
런던에서 베를린으로 이어지는 유럽 여행도 어느덧 2주째. 에어비앤비와 조식 불포함 호텔만 투숙하는 바람에, 따뜻하고 신선한 호텔 조식을 유럽 와서 처음으로 먹는다. 감격ㅠ 25 Hours의 숙박 요금이 워낙 저렴한 조식 포함 13만원대라, 부담없이 조식 패키지로 결제해둔 덕분이다. 객실 디자인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멋졌지만, 시원한 통유리창의 레스토랑에서 만난 조식 뷔페 역시 이곳을 선택한 게 잘했다 싶을 정도로 뿌듯한 메뉴 구성이었다.
언뜻 보면 아메리칸 스타일의 평범한 뷔페같지만, 양봉한 밀랍을 통째로 갖다놓은 신선한 꿀과 소시지, 치즈, 온갖 종류의 고기 페이스트를 보니 독일에 왔다는 게 실감이 난다. 신선한 야채와 계란을 듬뿍 담고, 도톰한 통밀빵에 멧부어스트를 올려 한입 베어무니 완전 내 스타일! 그라놀라와 말린 과일, 요거트 종류가 특히 다양해서 이런저런 맛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1박만 해서 이 조식을 한번만 맛보는 게 아쉽지만, 아직 다른 호텔이 줄줄이 남아있으니...ㅎㅎ
티켓은 기차역이나 지하철역에서 자동 머신으로 구입할 수 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기계에 넣으면 첫날 날짜가 티켓에 찍힌다.
베를린에서 가장 어려운 한 가지, 지하철 티켓 사기
아침 일찍 호텔로 데리러 온 친구는 3년만에 만난 내게 대뜸 "지하철 표부터 사러 가자!"며 발길을 재촉한다. 생각해보니 어제 공항에서 시내로 지하철을 탈때 개찰구가 없는 것이 의아했다. 알고보니 베를린의 지하철에는 원래 개찰구가 없단다. 역 탑승구 내에 티켓 날짜를 찍는(Validation) 기계가 서있는데, 이게 여행자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여행자들은 대부분 베를린에서 종종 무단으로 탑승한다. 물론 돈을 아끼려는 생각도 있겠지만 이 기계가 잘 안보여서 실수로 그냥 타기도 쉽다. 하지만 불심검문은 생각보다 자주 이루어지며 실제로 역 앞에서 딱 걸린 한국인 여행자를 내 눈으로 보기도...이렇게 걸리면 벌금은 엄청나다.; 현지에 사는 친구는 이런 위험을 잘 알기 때문에 티켓부터 끊자고 안내한 것.
티켓은 반드시 구입해서 소지해야 하는데, 정액권인 시티투어 카드(35.9유로/5일)를 머무는 날짜만큼 설정해 끊으면 며칠 지내기에 좋다. 지하철 뿐 아니라 모든 교통수단을 A~C존까지 자유롭게 탈 수 있다. 덕분에 여행 내내 하루에도 몇 번씩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닐 수 있어서 정말 편리했다.
Lunch @ Kaffee A.Horn
베를린이라는 도시에 첫발을 내딛는 오후, 야속하게도 하늘은 점점 흐려지고 빗줄기가 점점 굵어진다. 3년만에 만난 친구는 서둘러 한적한 숲속에 자리잡은 한 카페로 나를 안내했다. 분명 도심 한복판인데 푸르른 나무가 무성하고, 강가를 따라 늘어선 아기자기한 식당들은 겉에서 보는 한적함과 달리 현지인들로 북적거리고 활기를 띈다. 친구가 자주 간다는 한 카페 역시 빈 테이블이 없어서 한 노부인이 앉아 있던 큰 테이블의 한쪽에 겨우 자리를 잡는다.
10유로 남짓의 '오늘의 런치' 세트를 주문하니 따뜻한 빵과 채소 스프, 그리고 토마토와 치즈, 루꼴라를 곁들인 담백한 파스타가 푸짐하게 차려졌다. 영국의 살인적인 물가와 빈곤한 식문화를 겪다가 베를린에 오니 천국이 따로 없다. 빈티지하면서도 따뜻한 카페 분위기, 창밖에 내리는 비, 정성어린 음식, 무엇보다 오랫만에 만난 인생의 친구를 앞에 두고 집에 온 듯 편안한 점심시간을 보냈다.
카페 A.Horn 홈피 http://www.kaffee-ahorn.de/
Coffee @ Espresso Lounge
맛있는 점심도 먹었으니 끝나지 않는 수다를 이어갈 카페로 자리를 옮겨보기로. 마침 비도 그쳐서 그녀의 안내로 카페가 즐비한 거리로 향했다. 통유리 너머로 비치는 카페 전경이 꽤 멋져보여서 친구에게 물으니 자주 가는 카페란다. 서울에서도 우린 자주 카페에 죽치고 앉아 하루종일 수다를 떨곤 했었다. 장소만 베를린으로 옮겨왔을 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우리의 대화는 때론 진지하고, 때론 웃기고, 때론 열정적이다.
런던에서는 꿈도 못꾸던 노천 카페에서의 오후. 베를린에서는 첫날부터 일상이 된다. 이렇게 로컬 피플의 힘을 다시 한번 실감하면서ㅎㅎ 진한 치즈케익도 그녀가 자주 즐기는 메뉴라며 권한다. 점심에 커피까지 쏘는 그녀에게 "갑자기 불쑥 찾아온 친구에게 이렇게 후한 대접할 수 있는 너는 성공한 인생이다"며 추켜 세운다. 독일 남자와 결혼하고 곧 출산을 앞둔 그녀의 표정은 행복으로 가득하다. 우중충한 비는 어느새 활짝 개고, 선선한 봄바람 속에서 즐기는 커피 한 잔에서 베를린만의 여유를 느껴본다.
Dinner @ Tibet Haus
아무리 여행자라지만 얻어먹기만 하는 건 맘이 편치 않아서, 저녁은 내가 사기로 하고 메뉴를 탐색해보니 마땅히 갈 데가 없다.(하루종일 먹기만 하기도 했고;;) 그때 범상치 않은 앤티크 풍의 '티벳 하우스'라는 간판이 눈에 띈다. 친구도 이 거리를 맨날 다니는데 이 집을 처음 본단다. 아늑한 식당 안에 들어가 보니 빈 테이블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인기다. 막 식사를 끝낸 테이블을 간신히 잡아 운좋게 자리를 잡았다. 메뉴판을 보니 커리 종류가 수십여 가지...ㅎㄷㄷ티벳 커리만을 전문으로 하는 집인데 밥과 샐러드를 곁들인 세트 메뉴도 1인분에 6~7유로로 너무 저렴하다. 역시 베를린...ㅜㅜ
치킨 커리 세트. 말이 필요없는 꿀맛이었다. 식판 위에 세팅된 것도 재미있고, 스프와 샐러드, 쌀밥까지 푸짐하게 곁들여 나온 커리의 이국적인 맛은 유럽 여행에서 단비와도 같은 저녁식사였다. 시원한 라씨 한 잔을 곁들이니 여기가 독일인지 티벳인지....지금 베를린은 유럽 젊은이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예술과 자유의 도시로 꼽힌다. 그래서 저렴하고 맛있는 다국적 음식점도 유난히 많은데, 티벳 하우스도 저렴한 가격과 맛좋은 커리로 인기를 끄는 듯 했다. 친구도 맛집 하나를 더 알게 되었다며 폭풍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렇게 베를린 첫날은 현지인과의 맛집 투어로 끝을 맺었다.
Tibet Haus Berlin : Zossener Straße 19, 10961 Berlin, Germany
2014년 8월 18일 다음 메인에 소개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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