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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스키여행 때 시내 구경을 못한 게 너무 아쉬워서, 혼자 히로사키 시내를 둘러볼 반나절 일정을 겨우 만들었다. 아오모리 시보다도 오히려 더 활기차다는 히로사키 시의 사람냄새 나는 풍경은 어떤 걸까. 초행길이라 이리저리 해매긴 했지만, 서투른 일본어에도 방긋 웃어주는 친절한 현지인들 도움 덕에 히로사키 성에서 최종 목적지인 히로사키 JR 역까지 무사히 도착! 쌀쌀한 3월의 봄바람을 맞으며 걷는 발걸음은 한발짝 한발짝 가볍기만 했다. 거리 구경, 카페 구경에 푹 빠졌던 히로사키에서의 오후.
히로사키 시내에 세워져 있는 도심 지도.
네부타 극장과 함께 붙어있는 다양한 기념품점. 히로사키 성 근처에 있다.
동네에 있는 작은 우체국.
시골 마을의 정취를 간직한 히로사키 시내의 골목 풍경
생각보다 썰렁했던 히로사키 성 구경을 마치고 돌아 내려오는 길. 구운 과자의 고소한 향기가 코끝을 찌른다. 피스타치오가 송송 박힌 센베를 시식으로 나누어주는 오래된 과자 가게 앞에서, 결심했다. 시내를 한 바퀴 둘러봐야겠다!
사실 단체로 움직이는 일정이었기에, 리조트 측의 양해를 구하고 혼자 카메라를 둘러메고 거리로 나섰다. 이제야 좀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초행길인데 거리에는 인적도 뜸하고, 어떻게 다닐지 금새 막막해진다. 다행히 네부타 극장 매표소에 부탁해서 작은 히로사키 시내 지도를 무료로 받을 수 있었다. 이젠 진짜 혼자다. :)
천천히 흐르는 듯한 골목길, 날씨는 조금 쌀쌀하지만 맑고, 발걸음은 가볍다.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 한대 두대, 행인 한두 명 뿐, 고즈넉한 시골길 풍경 그대로를 간직하고 있다. 주택가 한켠에 자리잡은 소박한 우체국이 왠지 귀엽다.
그런데, 내가 기준점으로 잡고 걸어갈 JR 역 방향은 아무래도 지금 걷는 방향과는 반대쪽인 것 같다. 도시인의 쓸데없는 조바심과 걱정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아까 스윽 지나쳤던, 앞마당을 쓸고 계시는 할머니에게 다가가 나의 저질 일본어 회화를 동원해 여쭤보았다. "JR역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내가 일어를 알아듣는 줄 아시고 뭔가 설명을 해주시는데, 잘은 모르겠지만 일단 걸어가기에 다소 멀다고 하시는 것 같다. 역시 난 반대방향으로 걷고 있는 것도 맞았고.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다시 발길을 돌려 걷는다. 그냥 한가로운 산책도 내겐 쉬운 일이 아니구나. 에효.
산책길에 만난 작은 빵집, 포포로(ポポロ)에서
할머니가 가르쳐주신 일본어 설명 중 오직 '왼쪽' '오른쪽'만 알아들었는데도 방향 잡고 걷기가 한결 쉽다. 좁은 주택가 골목을 지나니 어느새 조금 더 넓은 대로변으로 접어든다. 그때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 곳은, 아주 작고 소박한 동네 빵집, 포포로였다. 바깥에서는 안이 잘 보이지 않아서 몇번이나 망설이다 용기내어 문을 열었다. 젊은 여자분 두분이 분주하게 빵을 진열하고 있다. 빵의 종류는 얼마 되지 않았지만, 갈색의 동그란 빵에는 :) 이런 모양의 웃는 얼굴이 그려져 있다던지, 암튼 귀여운 빵들이 많아 보기만 해도 저절로 웃음이 난다. 동네 빵집 답게 가격도 무지 저렴하다. 100엔도 안되는 바삭바삭한 고구마 파이 하나와 130엔 정도 하는 감자 샌드위치 반쪽을 사면서 JR 역으로 가는 길을 물었다. 그러자 주인장 언니가 갑자기 문을 열고 나가더니 길에 서서 설명을 해주신다! 감동 ㅠㅠ 히로사키 사람들은 순박하고 정겹고, 또 친절하다. (워낙 작은 가게라 사진 찍는 건 실례일 듯 하여 외관 사진은 여기서 가져왔다.)
허름한 카페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길 건너에 보였던 요란한 외관의 술집.
사쿠라 문양이 예쁜 가로등.
낡고 오래된 느낌의 길 건너편 풍경을 감상하며 룰루랄라 걸은 지도 한 30여분. 슬슬 다리가 아프고 추워진다. 어짜피 산책이 목적인데 JR역에 빨리 도착할 필요도 없고, 이럴 땐 멋진 카페가 눈 앞에 짜쟌~ 나타나주면 좋겠다. 흑.
그때 길 건너편에 보이는 저 멋스러운 곡선의 건물 발견! 젊은 언니들 두 명이 막 문을 열고 들어가는 모습이 보인다. 그래~! 저기야. 사거리 모퉁이에 위치한 빵집 겸 카페, 파티셰리 르 쇼콜라 (Patisserie le chocolat).
몽블랑은 안에 바삭한 과자가 들어있어 식감이 단단한 편. 커피는 매우 신선했다.
테이블은 내가 앉은 것과 사진 속의 빈 테이블이 전부다. 대부분 테이크아웃하는 분위기.
달콤한 몽블랑과 커피 한잔의 여유를 즐기다
아까 들렀던 포포로가 정말 숨겨진 동네 빵집 느낌이라면, 이곳은 백화점 디저트 코너 수준의 훌륭한 셀렉션이 갖춰진 전문점이었다. 손님도 끊임없이 들어오는 걸 보니 동네 일대에서는 케이크 사려면 이집 오는 분위기. 앞서 들어왔던 젊은 언니 두명은 테이블에 앉아 케익 위에 얹을 초콜렛 글씨를 쓰고 있다. 같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걸 보니 회사의 누군가가 생일을 맞은 듯. 즐거워 보인다. :) 나는 뭘 주문할 지 별로 고민도 안하고 무심코 몽블랑과 커피 한잔을 주문하곤 달랑 두개 뿐인 테이블 중에서 케이크 언니들 옆 테이블에 앉아 잠시 퍼져 있었다.
한 10~15분쯤 지났을까. 쥔장 아주머니가 예쁜 잔에 담은 커피와 몽블랑을 가져오시며 묻는다. "여행 중이세요?" (아..이 말도 못 알아들어서 한참 해맸음ㅋㅋ) 그래서 한국에서 왔다니까 자기두 작년에 한국 여행 다녀왔다며 활짝 웃으신다. 일어를 좀더 잘했으면 여러 가지 얘기를 할 수 있을텐데 아쉬웠다.
이후 히로사키의 한 대형 서점에서 마츠우라 미타의 단행본을 사기 위해 점원에게 책 검색을 부탁했는데, 서투른 영어로 꼼꼼히 설명해줬던 젊은 여직원도 기억에 남는다. 그녀도 최근 한국에 다녀온 적이 있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는데, 그러고 보면 한류나 한국 여행의 인기가 이젠 중년층이 아닌 젊은 세대에도 꽤나 보편화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마츠우라의 책은 아쉽게도 절판되어 살수 없었지만 백화점 지하 슈퍼마켓에서 엄청난 양의 식료품 쇼핑을 하는 바람에, 나의 히로사키 산책은 그 지점에서 택시 타고 리조트로 귀가하는 것으로 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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