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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VEL/Australia

[서호주 자유여행] 명품거리 킹스 스트리트에서 진짜 럭셔리의 의미를 생각하다

by 히치하이커 김다영 nonie 2009. 6. 5.



혼자만의 시간을 충만하게 보낸 프리맨틀에서의 여행을 마치고 다시 돌아온 퍼스.
왠지 처음 서호주 땅을 밟을 때보다 좀더 여유롭고 편안해진 기분이다. 변함없이 나를 반겨주는
퍼스의 깨끗하고 푸른 하늘과 함께라면 어디든 갈 수 있을 것만 같다.

가이드북을 꼼꼼히 뒤져 찾아낸 숙소에 짐을 풀고, 가장 먼저 찾은 곳은 King's Street.
처음 머물렀던 할리데이 인 호텔과도 매우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다. 킹스 스트릿은 아주 좁고 짧아서
관광객들이 따로 시간을 내서 오거나 여행서적에 소개될 정도의 거창한 명소는 전혀 아니다.
현지 가이드 책자에는 이곳이 쇼핑 스팟으로 소개되어 있길래 찾아가보기로 했다.









퍼스의 유일한 명품 거리(?)라 불리기도 하는 킹스 스트리트는 한국으로 따지면 압구정이나 청담동쯤
될 듯 하다. 하지만 몇 걸음만 걸으면 금새 끝이 보일 정도로 짧고, 매장도 그리 많지 않다. 그곳을
지나는 사람들도 자세히 보면 일본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더욱 독특했던 것은 그 거리를 따라 늘어선
그 몇개 안되는 소위 명품 매장의 디스플레이였다. 분명 같은 브랜드인데도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
만난 매장들과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루이비통 매장 앞을, 나는 그냥 지나칠 뻔 했다. 분명 한국의 많은 백화점을 지나면서도 보던 브랜드인데,
킹스 스트릿의 루이비통에는 특유의 힘이 많이 빠져있다. 대신 좁고 소박한 이 거리의 분위기에 맞춰
작고 아담한 매장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핑크와 장미를 모토로 한 캠페인을 전개하고 있어서인지
디스플레이 창이 한결 화사해 보였다. 무심코 지나면 루이비통인줄도 모를 정도였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쉽게 친근해질 수 있는 브랜드는 전혀 아니지만;; 고급 보세옷가게같은 루이비통을 만나는 재미는 제법 쏠쏠하다.









몇 발자국 더 걷다 보면 명품 매장들 사이로 난 벽에 온통 낡은 포스터들이 가득하다. 킹스 스트리트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뭔가 고급스럽고 힘이 바짝 들어간 청담동 분위기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홍대 앞의 자유분방함을 더 닮았다고 해야 할까? 내가 어림짐작했던 명품 거리의 선입견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 킹스 스트리트라는 작은 거리만 지나도, 거창한 허례허식을 지양하는
호주인들의 담백한 단면이 흘끗 엿보인다.









거리 한쪽에 브랜드 매장들이 늘어서 있다면, 반대쪽에는 몇 개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찾아간 점심 시간에는 이미 노천 테이블은 자리가 없을 정도로
손님이 꽉 차 있었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과 함께 평일 점심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들은 이 근처에서
일하는 직장인인 듯 했다. 넥타이 맨 셔츠 차림의 남자들이 많았으니까. 호주에서 느낄 수 있는
또 다른 여유로운 풍경이다. 사진은 술집 입구에 그려진 예쁜 그래피티.









나는 킹스 스트리트의 독특한 분위기가 과연 어디서 나오는가에 대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스트릿 중간에 숨어있는 킹스 아트 센터에 들렀다. 이곳은 퍼스의 현대 미술 아티스트와 디자이너들의
창작품을 전시하는 곳이다. 1층 한켠에는 갤러리와 숍이 함께 있어 독특한 기념품을 구입할 수도 있다.
센터에 들어서자마자 천장에 매달린 독특한 장식물과 함께 "세상을 새롭게 디자인하자"와 같은 구호가
쓰인 벽이 보였다. 가만, 호주에 유명한 미술가나 디자이너가 있었나? 잘 모르겠다.










로비에 전시된 저 구호의 의미가 무엇인지, 1층의 갤러리에 들어서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무엇이 21세기의 퍼스를 경쟁력있게 만드는가?"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발명(창조)하는 것이다"
"서호주에서 배출하는 디자인 전공자의 수는 가장 많지만, 실제 업계에서 활동하는 수는 매우 적다"
"서호주에서 7%의 학생만이 정규 대학에 진학한다" 등등.

디자인, 혁신,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절절하게 강조하는 수많은 문구들 속에서
서호주, 그리고 퍼스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을 잘 알 수 있었다. 아마도 퍼스의 수많은 미술학도가
가끔씩 이 센터에 와서 이 로고들을 읽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마음에 새기고 있으리라.
왜 명품 매장들 사이에 이 아트센터를 세운 것일까? 지금은 그저 꿈을 품은 학생들일지라도
세계적인 브랜드를 보면서 언젠가는 그런 것들을 만들리라 다짐하게 되지 않을까?

이걸 보면서 문득 마음이 철렁 내려앉는다. 과연 한국은 창의력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얼만큼이나 강조하고 있는 걸까. 우리들은 어떤 생각을 하며 명품 매장 앞을 지나는가.









킹스 스트리트가 끝나는 길목은 헤이(Hay) 스트리트로 이어지고, 그 길목에는 바로 퍼스의 자랑거리인
최대 규모의 예술 극장, His Majesty's Theatre가 있다. 1904년에 지어졌으니 무려 100년이 훌쩍 넘은
퍼스의 소중한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멋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극장 기둥을 지나면서 나는
킹스 스트리트에서의 짧은 순간을 떠올린다. 거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소박한 명품 스트릿, 그 속에 자리잡은
창조에 대한 자극으로 가득한 아트센터. 비록 지금은 서호주의 이름을 건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가 별로
없을지라도, 10년 후에는 모를 일이다. 디자인과 명품에 대한 과거와 현재, 미래를 한꺼번에
생각해볼 수 있었던, 킹스 스트리트에서의 한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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