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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Perth의 지하철 노선도.
오랫동안 머릿속을 맴돌던 이 주제를 어떻게 풀어볼까 고민을 많이 했다. 두서가 없겠지만 또 한번의 여행을 앞두고 되는대로 끄적여보려 한다. 어느날 문득 떠오른 생각, 내가 지금까지 해온 여행은 관광일까, 여행일까? 사실은 그 두 개념조차 한국 여행시장에선 명확히 정립되어 있지 않다. 둘다 '떠나다'를 표현하는 단어로 두리뭉실하게 쓰이고 있다. 하지만 내게 두 단어가 주는 어감은 많이 다르다. 쉽게 말하자면 관광은 여행사 패키지 상품이고, 여행은 말 그대로 자유여행을 의미했다. 지금까지 '관광'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배제시켜왔던 내 여행은, 그렇다면 진짜 여행일까?
언젠가부터 막연히 '관광'이라는 단어에는 왠지 거부감이 있었다. 사람들이 물건을 사듯 손쉽게 패키지 상품을 사서 남들과 똑같은 루트로 돌다 오는 여행은 '여행'같지 않았다. 항공권을 따로 끊고, 숙소는 현지에 가서 대충 해결하고, 좌충우돌 부딪혀 가며 하나하나 배워가는 여행만이 진짜 여행이라고 굳게 믿었다. 어쩌면 내 스스로가 온전히 그런 여행을 해본 적이 많지 않아서 이상적인 여행가는 이래야 한다, 는 롤모델을 만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여행 블로거라는 나 자신조차 '여행'의 본질에는 아직 다가가지 못한 것 같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지금껏 스쳐간 전 세계 40여 도시들도 대부분은 일 때문이었다. 온전히 그 곳을 음미하고 돌아온 적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항상 뭔가를 기록하고 주워담느라 바빴다. 한마디로 본전을 뽑아야만 했다. 내 돈 주고 갔던 여행은 그리 많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외형적으로는 여행의 포지션으로 떠났지만, 현지에서는 관광과 별 다를 바 없는 구경만 하고 온 적도 적지 않았다. 어쩌면 난 아직 제대로 된 여행을 해본 적도 없고, '여행'을 할 마인드도 준비되어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대다수의 보통 사람들은 아직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아직은 뭔가 두렵고, 일단 현지에 가면 남들 간 곳 나만 안가면 왠지 손해본 것 같고, 현지인과 만나고는 싶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방법도 모르겠고. 그래서 결국 큰맘먹고 간 타지에서 우리가 겨우 남겨오는 건, 몇 장의 식상한 사진 뿐이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니 관광과 여행은 그 목적 자체가 매우 달랐다. 그래서 목적지도 많이 다르다. 패키지로 손쉽게 떠나는 관광, 딱히 가고 싶어서 가는 것도 아니다. 시간도, 돈도, 용기도, 아직은 그만큼만 허락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관광을 떠나는 목적은 한 가지다. '단조로운 일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유명 관광지에는 우리네 삶이나 비루한 일상 따위는 목격하기 어렵다. 최대한 화려하고 비현실적인 것들이 우리의 욕망을 충족시켜 준다. 그것은 새로운 쇼핑지구일수도 있고, 리조트 앞에 펼쳐진 바다일수도 있고, 거대한 놀이동산일수도 있다. 그것이 관광지의 대체적인 특성이다. 우리는 관광에서 짧은 유희를 만끽하고, 다시 지옥같은 일상으로 돌아가 언젠가 떠날 진짜 여행을 꿈꾼다.
하지만 여행은 다르다. 모든 걸 버리고 떠나는 게 '여행'이다. 때문에 여행자가 되기로 마음을 먹은 사람은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진 지역을 선택한다. 단지 지리적으로 먼 곳이 아니라 맘을 단단히 먹지 않으면 쉽게 갈 수 없는 곳 말이다. 혹은 흔한 여행지라도 한 지역에서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장기 체류하는 일이 빈번하다. 비로소 여행자는 현지인의 일상과 좋든 싫든 마주하게 된다. 그들의 삶을 보면서 깨닫는다. 처음에는 '다름'을 체험하기 위해 왔지만, 결국에는 그들과 우리의 삶이 '같음'을. 여행자가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을 즈음, 그 자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으며, 여행자 스스로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람이 아니다. 모든 것이 조금, 혹은 많이 변화한다. 그러한 떠남은 바로, '여행'이다.
물론 자유여행이 늘어나는 요즘, 관광과 여행을 뚜렷하게 구분짓기는 쉽지 않다. 관광으로 떠났지만 여행이 될 수도 있고, 여행으로 떠났지만 관광보다 더 못한 구경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현재 한국 여행시장의 극명한 이원화(패키지 vs. 자유)로 볼 때,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왜 떠나는가?'에 대한 답은 크게 이 두가지 의미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지금 왜 떠나는가? 왜 그토록 '떠남'을 갈망하는가? 스스로에게 한 번쯤 되물어볼 만한 질문이다. 지금 나도, 어쩌면 처음으로 진짜 '여행'을 꿈꾸면서 짐가방을 싸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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