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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미디어

서울 아트 투어 - 비디오 아트 전시로 읽는, 예술가와 여성주의

by 히치하이커 김다영 nonie 2021. 2. 13.

 

로컬로 보는 서울, 셀프-아트 투어

2021년에는 로컬(local)로서의 서울과 한국을 바라보는 나만의 방식을 찾아보는 중이다. 특히 관심을 두는 것은 현 시대를 읽고 표현하는 여러 분야 종사자의 결과물이다. 도시연구자, 예술가, 북 큐레이터의 전시도 좋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레스토랑이나 숍 등 로컬에서 탄생한 모든 것이 관찰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로컬 경험의 목적은 새로운 여행의 미래를 살펴보려는 흐름과 연결되어 있다. 코로나 이후, 지역을 깊이있게 여행하는 '새로운 로컬 여행'의 시대가 우리 앞에 오고 있다. 물론, 아직은 태동기이기도 하다.  

 

'현대 미술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욕망을 읽는 데 도움이 된다'

- 책 <마케터의 여행법> 

 

인간의 욕망을 읽지 못하면 사실상 좋은 콘텐츠를 만들 수 없다. 콘텐츠(강연, 책 등)를 만드는 나와 같은 사람이라면, 다양한 전시 관람이 꼭 필요한 이유다. 어차피 갈 곳 없는 코로나 시국 연휴에 머릿 속 정리도 할 겸, 미세먼지를 헤치며 대학로로 향했다. 

 

 

 

 

 

 

시대를 넘나드는 여성주의 아티스트

아르코 미술관 : 홍이현숙 개인전 <휭, 추-푸> ~02.21 

연휴 중에 문을 여는 전시라는 이유로, 별다른 사전 정보없이 아르코 미술관을 찾았다. 도착해서 팜플렛을 보고서야 홍이현숙 작가가 무려 90년대부터 여성, 환경, 신체 등을 주제로 작품활동을 해온 베테랑 예술가라는 걸 알게 됐다. 그리고, 1층의 설치 미술 작품을 빼고 2층의 전시 대부분이 비디오 아트, 그러니까 영상 예술 전시였다. 평소 비디오 아트를 좋아해서 흥미롭겠구나 싶었다. 

 

 

 

 

 

 

 

1층 <여덟 마리 등대> 전시는 설치 미술로, 온통 새카맣게 어두운 공간에 배 한 척이 떠있는 듯한 설치물만 덩그러니 있다. 안내요원이 그 위에 앉거나 누워도 된다고 일러 주었고, 8개의 스피커에서는 서로 다른 8종의 고래들이 우는 소리가 13분동안 들려온다. 매우 기묘하고 신비로운 '몰입형' 경험이면서도, 고래 소리의 볼륨이 꽤 큰데도 위협적이거나 소음으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딱 그 경계 어딘가에서 엄마의 뱃속으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도 들고, 나른해지기도 했다. 

 

 

 

 

 

 

 

2층에는 본격적인 영상 전시가 이어진다. 새로운 작품들도 있지만, 작가의 활동 이력이 길다 보니 '아카이빙 섹션'을 통해 이전의 주요 작품도 볼 수 있었다. 탱크(2018)는 문화비축기지에서 진행된 퍼포먼스를 두 화면으로 재생한다. 여성들이 한 줄로 걷거나 벽에 몸을 붙인 채 손과 손을 맞대고 있는 퍼포먼스에서, 여성의 연대와 공동체를 향한 메시지를 뚜렷히 느낄 수 있었다. 이것은 작가가 평생에 걸쳐 일관되게 던진 메시지이기도 하다. 영상 속 여성들의 표정과 걸음은 매우 평온해 보였다. 

 

1시간 여의 관람에서 홍이현숙의 작품 히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90년대에 센세이셔널했을 <은닉된 에너지> 전시 기록물에서는 해외 유명 아티스트에 견줄만한 엄청난 파워가 느껴졌다. 오노 요코와 같은 외국 전시에서만 보던 행위 예술이 많아서 깜짝 놀랐다. 전시된 책자 중에 '금성까지 왕복달리기' 책이 작가의 히스토리를 집약한 책이라 곧 구해서 볼 예정이다. 아무래도 코로나 이후 로컬의 재발견은 한국 예술의 재발견, 결국 우리의 재발견으로 이어지는 듯 하다. 

 

 

 

 

 

 

 

아르코미술관에 가기 전에, 건너편의 버거파크에서 점심을 먹었다. 혜화동의 본래 거리 풍경과 잘 어울리는 작은 돌마당과 아담한 한옥, 그리고 나무로 된 테이블과 의자는 버거집의 고정관념을 깨는 특이한 공간이다. 그런데 주문은 키오스크로 하니 편리하고, 또 요즘 버거집답다. 옛것과 현대의 절묘한 조화 또한 현 시대의 화두 중 하나다.

 

 

 

 

 

 

머쉬룸 치즈버거 세트 (음료는 에비앙으로 교체, 9700원). 통일된 브랜드 디자인, 합리적인 가격, 따뜻한 버거와 감자가 마음에 든다. 참깨 가득한 번 덕분에 버거 맛이 더 사는 느낌이다. 통유리문 앞 테이블에서 먹으니 개방감도 좋다. 아르코 미술관과 연결할 로컬 점심 코스로 좋은 선택이었다.(버거파크는 이곳과 성북동밖에 지점이 없다)  

 

십 몇 년 전 여행기자 생활을 혜화동에서 했었기에 추억도 많고 오랜만에 와서 둘러볼 곳도 많지만 연휴여서 대부분 문을 닫았다. 다음을 기약하고 두번째 전시를 보러 홍대로 이동했다. 

 

 

 

 

 

 

 

밀레니얼 여성 아티스트의 시대적 고민

엘리펀트 스페이스 - 최민경 개인전 <Re: 생존신고> 1/26 ~ 2/14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두 전시를 엮어서 본 건데, 이 전시 또한 영상을 주 매체로 한 전시였다! 게다가 여성주의를 중요한 테마로 삼는다는 점 또한 비슷했다. 결과적으로는 세대간 여성주의 예술을 비교해서 관람할 수 있다니, 신기하다.

메인 전시 <채널 그린하우스 - 민경과 디나>라는 무려 60분짜리 영상물이다. 그런데 흥미로워서 끝까지 보게 됐다. 작가는 팔레스타인의 동료 작가와 영상 편지를 주고받는 형태로 작품을 만들었다. 왼쪽에는 작가 본인의 영상, 오른쪽에는 팔레스타인의 디나가 촬영한 영상이 번갈아가며 나온다.

두 여성 작가는 '코로나 시대에 예술가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런 시대에 (예술) 생산은 과연 가치가 있을까?' 등을 고민한다. 또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한다는 '아웃사이더'의 소외감, 예술의 정치성 등 생각이 필요한 질문을 서로에게 던지고 답한다. 사실, 예술가가 아니어도 여성이라면 나를 포함해 누구든 해봄직한 고민들이었다. 두 작가가 그린 마인드맵 보기 

 

 

 

카달로그의 QR 코드를 읽으면 두 작가의 마인드맵이 나온다. 젊은 작가들은 새로운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앞서 본 전시와 비교해 보면 몇 가지 흥미로운 지점이 있다. 앞서 홍이현숙의 작품에서는 작가가 많은 영상에 똑같은 꽃무늬 원피스 차림으로 등장한다. 하나의 캐릭터이기도 하지만, 오히려 익명성을 가지고 풀어내려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다시 말해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은 뚜렷하지만, 개인적인 일상성이나 고민은 드러내지 않거나 추상적으로 표현했다.

 

젊은 세대 작가인 최민경은 예술가 이전에 개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낸다.(해외 생활 후 귀국하여 부모 집에 의존하는 상황 등) 또한 자신의 고민이 결국 사회의 부조리와 연결되어 있음을 시사한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행위자와 관찰자의 중간에서 서성이는, 자신의 위치에 대해 고민한다. 또한 팔레스타인 작가와 함께 '예술은 정치적일 수 있는가? 또는 정치적이어야만 하는가?(could be or should be?)' '예술도 시위(protest)가 될 수 있는가?'를 자문하는 대목도 꽤나 인상적이었다. 

 

홍이현숙은 50년대에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이고, 최민경은 30대이니 밀레니얼 세대다. 큰 세대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두 전시는 '소속과 분류에 대한 거부'라는 지점에서는 만난다. 다만, 이에 대처하는 방식은 달라 보인다. 홍이현숙은 전시 토크 프로그램에서 '동시대를 호흡하는 현대적 감각은 있어야 하지만, 어떤 그물망에 포획될 수 없는 내가 되려고 한다. 끊임없이 흔들리려는 배짱이 없으면 어딘가에 소속되려고 하거나, 속해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생긴다. 그런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노력한다.'라고 말한다. '내가 중심이고 내가 카테고리다, 라고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지점이 있다. 그런 나만의 기준이 있어야 배짱이 생긴다'는 대목에서는 여전히 플레이어로서의 결기가 느껴진다. 선배 세대가 가진 경험과 철학이 요즘은 '라떼'같은 단어로 희화화되지만, 그 배짱이 부족하면서도 왜 부족한지를 모르는 우리 세대에게 이런 메시지는, 무척 귀하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두 전시를 보면서 '나는 내 업에서 어떤 위치에 서 있으며, 참여자인가 관찰자인가?' '나 역시 스스로 소속을 만든 입장에서, 어떤 지점에서 가장 결핍을 느끼는가?' '어떤 연대를 해야 하며, 어떤 공동체가 필요한가' 등 최근의 고민을 좀더 또렷하게 들여다본 시간이었다. 단 두 세 시간의 산책으로 양질의 무료 전시를 두 개나 만날 수 있는, 서울의 예술 인프라 또한 실감했던 짧은 산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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