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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미디어

중국의 리틀 포레스트 '리즈치'(李子柒), 일반인 콘텐츠의 허구와 진실

by nonie 2018. 9.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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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큰 인기를 얻는 또다른 이유는, 정체가 완전히 드러나있지 않은 신비로움과 완벽한 스토리텔링이 공존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손에서 자라며 시골에서 다양한 생존기술을 배웠던 그녀는, 성인이 되어 도시로 떠나 사회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홀로 남아 돌봐줄 가족이 없게 되자, 도시에서의 생활을 접고 시골로 내려와 할머니를 보살피며 농사일과 요리를 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어째 많이 들어본 이야기같지 않은가? 일본의 만화이자 영화로도 만들어진 <리틀 포레스트>와 매우 흡사한 스토리 구조다. 게다가 무료하고 반복적인 전원일상을 영상으로 남기고자 시작했다고 하기엔, 첫 영상부터 매우 본격적인 촬영기법을 발휘하고 있다. (영상 하나에 타임랩스부터 온갖 각도의 샷이 다양하게 연출된다) 

 

그러던 그녀가, 지난 달 즈음부터 슬슬 문명세계로 나와 기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모습을 보여준다. 중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베이징의 '자금성'이 목적지다. 거기서 한 셰프를 만나고, 질 좋은 고추를 고르고, 사천식 고추기름 소스를 만든다. 영상 마지막에는 제품화된 소스가 그대로 노출된다. 리즈치의 팬들은 이를 인플루언서가 의례히 진행하는 PPL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간접광고이나 기업 콜라보가 아니다. 광고는 기업의 비용을 받아서 외부의 제품 홍보를 진행해주는 것이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마케팅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콘텐츠 마케팅의 패러다임을 보여준다. 

 

 

 

 

 

 

 

유튜브에는 제품 링크가 없었지만, 타오바오에 이름을 검색하니 손쉽게 그녀의 쇼핑몰을 찾을 수 있었다. 쇼핑몰의 이름은 '리즈치 플래그십 스토어'다. 모든 제품의 설명에는 그녀의 웨이보 영상이 함께 노출된다. 요즘 올라오는 영상 마지막에는 모두 이들 제품이 등장한다. 타오바오의 후기를 보면, 그녀의 팬들이 얼마나 강력하게 이 제품들을 지지하는 지 엿볼 수 있다. 제품을 사는 순간부터 '그녀가 되는 착각'에 빠져든다는 것이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천연 유칼립투스 꿀에 인삼을 담근 건강식품의 경우 리즈치가 산에서 흙 속에 파묻힌 인삼을 캐는 장면이 먼저 영상으로 나왔다. 이 제품을 받아서 맛을 보는 순간, 그 영상 속의 인삼이 내 입으로 들어온 느낌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제조 공정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안다. 

 

나는 처음 그녀의 영상을 접할 때부터, 기획이나 목적 없이는 이렇게 큰 프로젝트가 이루어지기 어렵다고 늘 생각해 왔다. 그래서 생각보다 빨리 티몰(타오바오)을 오픈한 게 오히려 솔직해 보인다. 하지만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는, 이 사례를 통해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무너지는 지점을 주목하게 된다. 

지금까지 일반인 유튜버나 블로거는 그야말로 맨땅에서 시작해서 기업 콜라보나 PPL, 구글 광고 등으로 '광고임을 명시하며' 수익 창출을 해나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처음부터 탄생해야 할 목적을 가진 '일반인의 탈을 쓴 일반인' 채널도 얼마든지 나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게 된다. 특히나 요새 대기업들이 오랜 시간을 공들여 진행하는 여론 조작 기법을 생각해보면 더더욱 그렇다. 기업이 이러한 마케팅을 악용할 경우, 콘텐츠 시장의 신뢰도가 크게 흔들릴 수 있다. 물론 리즈치의 정체가 가짜라고 단정하는 건 아니다. 처음부터 마케팅 목적이었든, 인기를 얻어서 사업을 하게 됐든 그녀의 영상이 탁월하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나 역시 지금 타오바오 직구법을 검색하는 중이니 말이다. 물론 여전히 마음 한 구석이 찜찜한 건 어쩔 수 없다. 마침 영국의 BBC가 '원시 기술' 유튜버의 인기를 기사화한 것 역시, 이 분야가 돈이 되는 주제라는 반증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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