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
작년에 정부에서 개최한 관광업계 대책 세미나에 패널로 참석했을 때, 라이브 댓글창에서 발견한 댓글이 요즘도 종종 기억난다.
"이런 위기에는 자영업자는 죽어나고 공무원, 교수, 연구원이나 돈버는 시기죠. 저도 각자도생입니다. 다들 잘 살아 남으시길".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론'만 나불대는 이들이 무슨 실효성있는 대책을 내놓겠냐는 이들의 성토가, 그 뒤를 이었다.
'각자도생'이라는 서늘한 단어는, 여행업계를 넘어 2021년의 대한민국을 지배하는 단 하나의 슬로건이 되었다. 주식과 재테크 광풍의 이면에는 '가만히 있으면 살아남지 못한다'는 절박함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이전에는 브런치에서도 다양한 삶의 형태나 가치관이 담긴 글을 종종 발견하곤 했다. 지금은 눈 앞의 재정적, 감정적 위기가 선명하게 드러난, 다시 말해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전혀 없는 글이 메인을 채우고 있다. 서점 역시 마찬가지다. 한 해의 지표를 말해준다는 1월의 서점 베스트셀러 코너에는 온통 '부'에 대한 갈급함이 넘쳐 흐른다.
과연 각자도생이란 삶의 태도는 전 지구적인 위기 속에서 나를, 당신을, 온전히 지켜줄까? 요즘 내 뇌리를 떠나지 않는 의문이다.
"유럽연합은 녹서라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녹서는 정책을 결정하기에 앞서 사회 전체의 토론을 요청하는 제안이다. 독일정부는 노동 4.0이라는 백서를 내놓기 2년전 노동 4.0이라는 녹서를 내놓고 전 독일사회의 토론과 의견 개진을 요청했다. 시민들의 토론을 이끌기 위해 '미래(Futurale)'라는 영화 시리즈를 독일 전역 18개 도시의 극장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녹서는 “디지털화되어가는 사회적 변동 속에서 '좋은 노동'이라는 이상은 어떻게 유지되고 강화될 수 있을 것인가?”를 독일 사회에 물었다. 그 과정을 거쳐 발간된 것이 '노동 4.0' 백서다."
혹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기준'을 미처 만들지 못한 채로, 풍요로워진 것은 아닐까? 끊임없이 나의 삶을 외부와 비교하며, '함께 살기'가 아니라 '살아남기'만 고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꾸고 싶은 것들
그래서, 2021년이 3주나 흘렀지만 예년과 달리 아직은 개인 워크숍이나 프로그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모든 사람들이 저 멀리 번쩍이는 황금성만 일제히 쳐다보고 있는데, 과연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나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내가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바꾸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곰곰히 생각해본다. 아무래도 여행 분야에서 일을 해왔으니, 이 범주에서 좀더 넓은 가능성을 열어두고 나는 어떤 플랫폼이 되어 어떤 가치를 연결해줄 수 있을지 고민해 보는 중이다.
어릴 때는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만 찾아다녔다. 20대 시절엔 잘하는 게 없기에 좋아하는 일을 알아내는 데 치열했다. 30대에는 어렵게 알게 된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다. 이제는 '해야 하는 일'을 고민해야 하는 나이가 됐다. 한 권 한 권 저서가 쌓여가고 많은 사람 앞에 서는 자리가 많아질수록, 조심스러워진다. 더 나은 세상이 무엇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업은 저절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만 하는 이유다.
작년부터 막연하게 드는 생각은, 회복 이후의 새로운 여행을 함께 고민하는 커리어 네트워크를 만들고 싶다는 것이다. 높은 방역 단계가 지속되고 있어서, 오프 모임 아이디어는 실행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지금 유럽에서는 목적이 있는 여행(purposeful travel)에 대한 논의가 한창이다. 포용성, 지속가능성 등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여행을 마주할 준비를 하는 것이다. 반면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 끝나면 여행 가야지' 관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다 혹시 '끝남'이 영원히 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이들이 여행의 '목적'을 잘 세우게 도울 수 있는지, 목적이 있는 여행을 통해 한 단계 도약하는 삶과 일을 만들기 위해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실행안을 만들 차례다. 개인적인 전망이긴 하지만, 여행은 '목적'이 분명해진 이들에게 좀더 빨리 되돌아올 것이다. 조만간 함께 공부 '코어'를 다질 이들을 찾아 나서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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