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행작가가 쓴 '여행 가이드북 거꾸로 읽기'라는 책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호텔 수영장에 누워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어느 나라 사람인지 금방 알수 있다"고.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대상은 단연 한국인 아닐까? 한낮에 수영장에서 한국인을 볼 확률은 관광지에서 한국인이 보이지 않을 확률과 비슷하니까. 물가 비싼 시드니에서 '느긋한 여행'을 제안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싶지만, 허니문이나 휴가로 시드니에 들렀다면 샹그릴라 시드니에서 하루 쯤은 느긋함의 호사를 누릴 만하다. 왜냐면 이 곳은 느긋함을 위한 모든 준비를 갖춘, 거의 유일한 호텔이니까.
누워서 만나는, 샹그릴라의 낮과 밤
시드니 타워에서도 시드니의 아름다운 야경을 누리긴 했지만, 같은 전망(그것도 하버브릿지와 오페라하우스가 함께 잡히는...)을 밤낮으로 동시에 만날 기회는 흔치 않다. 더 정확히는, 그런 전망을 가진 호텔에 머무를 때나 가질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샹그릴라 시드니는 투숙객들의 그런 마음을 잘 아나보다. 왜냐면...
창가에 그대로 누울 수 있는, 긴 소파베드를 마련해 놓았으니까. 언제까지고 누워서 이 아름다운 풍광을 오래오래 누릴 수 있도록, 그래서 여행은 커녕 호텔 밖으로 나갈 의지조차 사라지도록 만들어 놓았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휴...
신선하고 건강한 아침식사로 시작하는 하루
조식 레스토랑에서, 샹그릴라 시드니가 동남아시아의 샹그릴라와 어떤 점이 다른 지를 드디어 알 수 있었다. 동양인 관광객보다는 자국이나 서양인(비즈니스) 비중이 큰 탓에, 채소와 과일 등 신선한 식재료를 사용하는 서양식 메뉴가 많다. 방콕 샹그릴라에서 큰 섹션을 차지했던 인도 음식이나 동남아, 중국 음식 등은 거의 없다. 대신 계란 메뉴만 해도 키쉬부터 수란, 알라까르떼까지 개개인의 취향을 모두 만족시킬 수 있는 호주 스타일에 충실하다. 시리얼 섹션에 가면 꿀이 벌집 그대로 매달려 있는 게 충격적인데, 더 놀란 건 그 꿀이 호텔 옥상에서 직접 양봉(!)한 유기농 꿀이라는 것..
이날 아침, 말로만 듣던 퀴노아 샐러드를 처음 맛보았다. 한동안 아침식사 없는 호텔에 있다가 따뜻하고 신선한 식사를 먹고 있자니 왠지 안구에 습기가...ㅜ 이틀간 두 번의 조식을 즐겼는데 워낙 즉석 조리메뉴가 많고 조금씩 음식들이 바뀌다 보니 매일 아침 새로운 메뉴를 먹는 기분이 들었다. 단점이 있다면, 오전 9시만 되도 레스토랑이 꽉 찬다. 워낙 규모가 큰 호텔이고 내가 묵는 기간에는 비즈니스 단체 투숙객도 많아서 더 그랬는지도. 어쨌든 일찍 가는 게 좋다. 샐러드 코너에 김치가 조금 마련되어 있는데, 늦게 가면 구경도 못한다는 거...ㅋㅋ
수영장에서 즐기는 따뜻한 자쿠지 스파
마음 같아서는 샹그릴라의 자랑 '치' 스파를 한 번쯤 받고 싶었지만, 모든 게 비싼 호주에서는 자제하기로 하고...ㅠ 아쉬운 대로 실내 수영장으로 향했다.(실외에도 큰 풀이 있다) 그런데, 여기 부대시설이 대박이다. 어짜피 난 수영을 못하니 수영장 큰 건 관심 없는데, 꽤나 괜찮은 자쿠지가 있어서 수영복만 착용하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 게다가 탈의실에는 작지만 알찬 사우나룸이 있는데 사람이 없어서 편안하게 쉴 수 있었다. 자쿠지와 사우나를 왔다갔다 하며 1주일간 쌓였던 여행 피로를 조금씩 날려 보냈다.
느릿한 티타임 @ 로비 라운지
호텔 꼭대기에 있는 아름다운 레스토랑을 슬쩍 둘러보기로 했다. 이날 오후에도 중요한 모임이 열리는지 테이블 세팅이 한창이었다. 이곳 레스토랑 역시 '캬~'소리가 절로 나오는 전망이 펼쳐진다. 밤에는 또 얼마나 아름다울까. 식사 한 번 못하고 돌아서는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1층의 로비 라운지로 향했다.
여느 호텔처럼 샹그릴라 시드니에도 로비 바가 있는데, 차를 한 잔 마셔보니 역시 최고다. 장미향이 살짝 느껴지는 가향차를 주문했는데, 담백한 비스코티를 곁들여 포트 채로 내온다. 마침 샹그릴라의 마케팅 담당으로 얼마전 한국인 직원 분이 오셔서, 운좋게도 잠깐 만나뵙고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침 호주에서 한인 분들 사는 얘기도 좀 듣고 싶었는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가 일어났다. 다시 시드니에 가서 뵐 그날까지,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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