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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독서

여행의 정의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책,'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by 여행강사 김다영 nonie 2012. 10. 18.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 10점
롤프 포츠 지음, 강주헌 옮김/넥서스BOOKS



서평 안쓴 지 꽤 되었다. 어쩌다 서평을 진행하는 마케터의 입장이 되니 막상 블로그에는 아무 책이나 소개도 못 하겠고, 그간 읽은 책들 중에 서평 써줄 만큼 인상깊은 책도 별로 없었다. 갑자기 이 바닥에 오니 책이 책같이 보이지도 않고..;

그러다 며칠 전 원고에 참고할 책을 찾다가 우연히 발견한 여행서, '떠나고 싶을 때 떠나라'. 

제목이 너무 식상해서 별 기대 안했다가 뒷통수 한 대 제대로 맞은 책이라 서평을 써본다. (무려 2004년에 출간되어 대부분의 서점에서 절판! 홍보할 필요조차 없으니 서평 용으로 딱이다.ㅎㅎ)


구린 책 제목과는 달리, 이 책은 '여행'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는 모든 사람이 한번쯤은 읽어봤으면 하는 주옥같은 내용으로 가득하다. 특히 여행을 막연히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그러나 이미 절판...ㅜ.ㅜ도서관에서라도!) 책의 원제는 '베가본딩(Vagabonding)'. 즉 일상적 삶에서 의도적으로 벗어나는 행위를 말한다. 베가본딩은 여행보다도 더 넓은 범주의 '떠나기'라고 할 수 있다. 





롤프 포츠의 '베가본딩' 원서 커버.



이 오래된 책에는 근 몇 년간 한국 서점가에 쏟아져 나온 모든 여행서를 한큐에 정리할 만한 명쾌한 철학이 담겨있다. 

몇 가지 인상적인 부분을 짚어보자면, 먼저 '여행과 관광을 구별하는 행위 자체가 무의미하다'는 것.
나도 블로그를 통해 이 두 개념에 대해 주제넘은 글을 몇 번 쓴  적이 있다. 사실 관광객(tourist)을 내심 무시하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관광객과 여행자가 해외여행지에서 맞닥뜨리는 요소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렇다. 나도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했을 뿐,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막상 여행지에서 결국 관광지만 빙빙 돌다가 옆골목으로 잠깐 새는 걸 진정한 '여행'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매번 짧은 기간 떠나는 나같은 직장인에게 관광지와 여행지를 구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여행을 사랑할수록 '노동'을 중요하게 여기라는 것.
국내 여행 에세이 중에는 강도 높은 우리의 노동현실과 그 속에 순응해 살아가는 대다수를 비꼬는 듯한 논조도 꽤 많다. 니들은 일하지만 나는 다 버리고 떠난다. 부럽지? 하는. 내가 아는 많은 여행서 저자들이 사실 '여행은 삶에서 너무나 중요하고, 이렇게 멋진 삶을 지속가능하게 살아보겠어'라고 주장하지만 그 다음 스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래서 그들은 여행 이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여행을 향한 잘못된 환상이나 현실에 대한 실망만 키워주진 않는가?

나는 '일'(job이든 career든 간에)이 얼마나 중요한지 얘기하는 여행서를 처음 만났다. 이 책의 저자 롤프는 부산(!)에서 2년동안 영어 강사로 일한 경력을 포함해 많은 일에 종사하며 베가본딩의 경비를 모았다. 그는 일할 때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그리고 적은 돈으로 검소하게 여행하며 살아갈 것을 강조한다. 또한 일을 하는 자체가 여행에 대한 더 큰 꿈과 설레임을 갖게 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내일 때려칠 생각으로 회사를 다니면서, 이거 그만두면 여행이나 가야지 하는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베가본딩의 관점에서, 여행은 현실에 대한 도피나 무절제한 소비가 아니라 삶의 연장선상에 있는 행위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속가능한 여행 철학'이 아닐까.

현지인에게는 항상 겸손하고 열린 마음으로 대할 것, 그리고 여행지에서 흥정할 때는 그들의 삶과 같은 눈높이에서 판단할 것, 선의를 받았으면 다른 사람에게라도 꼭 갚을 것 등 따뜻하고 인간적인 조언도 많다. 그동안 내가 해왔던 수많은 여행을 저절로 돌아보게 하는, 그리고 앞으로의 여행을 '베가본더'의 자세로 떠날 수 있게 해준 책이라, 무척 고맙다. 





댓글4

  • BlogIcon 하는게낫다 2012.10.18 16:53 신고

    오! 서평만으로도 뒤통수한대맞은 기분인데요. 이 책 구해서 읽어봐야겠어요.
    답글

  • tak 2012.10.19 01:21

    남들은 평생 한번 갈까 말까한 행선지를 몇번 다니다 보면 이제 일상에서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변화처럼 느껴진다.

    여행과 관광의 차이를 딱 말할수는 없겠지만, (나한테는) 첫 일주일이 관광, 그 후가 여행이 되더군. 여행은 더 개인적이고 내면적인 경험인 반면, 관광은 어떤 장소에서 관광객들이 경험할 만한 것을 경험하는 모드랄까...

    그러다 보니, 여행의 당위성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뭔가 만들어 내야 한다는 강박감 같은게 생기더라. 시를 쓰건, 특정 컨셉으로 사진을 찍건, 블로그에 여행기를 올리거나, 아니면 어지러진 머릿속을 정리하거나.


    답글

    • ㅇㅇ.여행이라는게...'시간'을 소비하는 행위이다 보니 얼마나 머무르는가에 따라 어떤 것을 보고 느끼느냐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아. 여행지의 겉에서 안으로 들어가는 데 시간이 더 걸리기 때문이겠지.

      난 오히려 관광객 모드일 때 더 강박감이 생겨. 처음엔 막 뭘 찍어서 남겨야 할것 같고, 블로깅을 해야 할 것 같고...시간이 지나면서 귀찮아지니 그냥 놓아버리고ㅎㅎ그제야 비로소 여행자의 시선을 찾게 되는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