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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업이나 할 요량으로 노트북 짊어지고 왔는데,
엄마 아빠랑 오손도손 수다떨다 보니 벌써 밤 11시를 달려간다. 아 목 아퍼
3월에 아빠 환갑 선물로 돈 몇푼 드리지도 못했는데, 오늘에서야 두 분이 백화점 가서 양복 한 벌
하신 모양이다. 집에 오니까 '다영이 보여줘야지' 하며 신나게 패션쇼 하시는 아버지.ㅎㅎ
요새 찍은 사진을 한참 자랑하시던 아빠가 대뜸 "그래서 넌 요즘 하는 일이 뭐냐"고 물으신다.
음...난 우리 회사의 신기한 서비스를 홍보하고 팔아먹는(마케팅;;;;) 일을 하고 있어.
그니까, 예전엔 기자였지만 이젠 기자들을 잘 모셔야 해.-_-;;; 블라블라~~~
그렇다. 나는 '일'을 하고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 일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덧붙여서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지금 일이 힘들긴 하지만 너무 즐겁고 매일매일이 새로워"라고.
그런데 요즘, 일이 재밌지 않다. 매일이 새로울진 몰라도 즐겁지는 않다. 내가 일에서
재미를 느끼는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바로 '열정'이다. 내 열정은 왜 급격하게 식은 걸까.
그것은 일을 수동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갑자기 그런 시스템으로 변했다. 모두가
느끼고 있지만 말로 설명하기 힘든 어떤 요인이 분명 작용하고 있다. 내가 그렇게 말하면
분명 '예민하다'는 반응만 돌아올 것이 뻔하기 때문에, 더이상 이런 생각은 내색하지 않기로 했다.
스스로의 목표나 꿈이 아닌, 다른 누군가의 비전을 위해 일한다는 생각이 든다면
누구라도 일하기 싫을 것이다. 회사와 같은 이익 집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전을
공유하는 것이고, 더 중요한 것은 그 공유의 과정이다.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달린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그림만을 좇다가 사소한 한두가지를
놓쳐서 결국 모든 일을 그르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아직 나는 잘 설명하기가 힘들다.
회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소통을 한다. 그런데 그 소통의 방식은
집단의 특성에 상당 부분 좌우된다. 그 명확한 사실을 무시한 채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한다면
결국 소통에서 제외될 것이다. 모든 사람이 웃고 있을 때 혼자만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던지,
눈물젖은-_-; 술 한잔 함께 기울인 적 없으면서 친한 척 아는 척 한다던지. 등등.
열정을 품은 사람들을 좇아 온 거라면, 그 열정이 달아난 근본적 이유를 찾고
돌아선 마음을 달래는 게 우선이다. 이곳은 회사니까. 내 상식으로는 이해가 안가니까....라. 글쎄.
회사란 과연 어떤 집단인가. 요새는 이 고민이 내 머릿속 최대의 화두다.
우리는 '여기는 회사니까' 라는 말을 굳이 쓰지 않아도 되는 회사라고 생각해왔다.
자율성과 비체계성이 지금의 창의성과 열정을 키워주는 큰 원동력이 됐기 때문이다.
회사가 학교가 아닌 건 맞다. 하지만 학교 이상으로 놀이터가 될 수 있는 회사가
진짜 경쟁력이 있는 회사다. 그걸 일반적인'회사'의 틀에 끼워맞추다 보면 결국 이도저도 안된다.
앞만 보고 달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의 여유가 없다면 일하는 게 즐겁지 않다.
그 빽빽한 마인드의 사람이 주변에 있으면 나까지 여유를 잃어버린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됐다.
동료들과 술한잔 하는 시간조차 뺏기는게 아깝고, 한 5분 10분 다같이 웃고 떠들고 하는 것도
방해할 만큼, 그렇게 세상에 중요한 일이 있다면, 그게 돈벌고 성공하는 일이라면,
난 성공하고 싶지 않다.
누구보다 성공과 성취를 원했던 나지만, 그렇게 사는 걸 보니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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