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nie X Incredible India - 짜이의 나라에서, 커피 마신 이야기
델리에서의 짧은 자유시간 동안 쇼핑 외에 집중했던 키워드는 '커피'였다. 홍차의 나라인 인도에서 커피를 떠올리긴 쉽지 않지만, 사실 인도는 몬순 기후를 활용해 커피를 경작한 역사가 오래된 주요 커피 산지다. 그런데 커피도 커피지만, 도시적인 카페 문화도 서서히 대도시에 자리잡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인도 카페 문화의 단면을 볼 수 있었던, 스타벅스와 로스터리 카페에서의 커피 한 잔.
스타벅스 @ 칸 마켓
델리의 고급스러운 동네, 칸 마켓에서 아노키 숍과 팹 인디아(Fab india) 칸 마켓 점을 들르고 나니 할 일이 없어졌다. 팹 인디아는 코넛 플레이스 점이 훨씬 물건도 많고 쇼핑하기도 좋다. 어제 폭풍쇼핑을 하고 난 뒤라, 더 이상 살 것도 없다. 그래서 휘휘 돌다가, 스타벅스로 향했다. 어차피 오늘 밤 귀국행 비행기를 타야 하니, 인도의 스타벅스를 갈 기회가 지금 뿐이기도 했다.
스타벅스 매장은 건물의 2층부터 3층까지인데, 계단을 오르면서 보니 내부 인테리어가 상당히 고급스럽고 이국적이다. 로컬라이징으로 나라마다 특색이 있는 푸드 코너를 살펴보니, '탄두리 파니르 샌드위치'같은 인도식 메뉴가 눈에 띈다. 나는 채소 커리가 듬뿍 든 빵과, 인도산 원두로 내린 오늘의 커피를 주문했다. 가격은 3~5천원 대로 한국에 비해 싸지도 않고, 인도 물가를 고려하면 굉장히 높은 편이다.
빵과 커피를 들고 3층으로 향했다. 주말이긴 했지만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깜짝 놀랐다. 게다가 뒷 테이블에는 무려 한국인 유학생들이 무슨 모임이라도 하는지 7~8명이 모여 한국말로 크게 떠들고 있어서, 여기가 인도인지 한국인지ㅎㅎ 게다가 인도 스타벅스에서는 와이파이를 하기 쉽지 않다. 인도 번호가 있어야 인증을 받을 수 있어서, 유심을 꽃지 않은 내게는 무용지물이다. 82 국번으로도 인증을 요청해 봤지만, 감감 무소식.
그런데 커피를 마시며 보니, 혼자 앉아있는 사람은 나 뿐이다. 인도 관련 책에서 보니 인도인들은 정치나 사회 문제로 토론하고 남과 대화하는 것을 굉장히 좋아한다는데, 이런 커피숍에서도 매우 진지하게 대화를 하는 무리가 많았다. 열띤 토론장 한 가운데서, 나만 혼자 놀고 있는 듯한 묘한 기분? 물론 이런 기분은, 여행을 할 때마다 종종 느끼는 감정이기도 하다.
블루 토카이 커피 로스터 @ 하우즈 카스(Hauz Khas)
7박 8일간 기차의 좁은 트윈 룸에서 동고동락한 민디는, 베트남에 사는 미국인 푸드 블로거다. 나보다 20살이 많지만 현역 인플루언서로서 왕성하게 활동하는 그녀의 에너지는 많은 영감을 주었다. 공항으로 가기 전 불과 3~4시간을 앞두고, 그녀에게 넌지히 물었다. '델리의 독립 로스터리 가볼 건데, 같이 갈래?' 커피 때문에 베트남 다낭으로 집을 옮겨 살 정도로 커피홀릭인 그녀인지라, 단숨에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세계적인 여행 인스타그래머인 빅토리아의 호텔방에 짐을 맡겨두러 갔다가, 여행 얘기로 폭풍 수다를 떠는 바람에 하마터면 늦어서 못갈 뻔 했다는;
다행히 우버 덕분에 순식간에 하우즈 카스에 도착했다. 앞서 칸 마켓이 델리의 청담동;;이라면, 하우스 카스는 홍대? 소위 델리의 힙스터들이 모인다는 동네다. 주소는 분명 샌드위치 가게를 가리키고 있는데, 그 집이 카페 맞았다. (Big fat sandwich 가게를 찾으면 된다) 조심스레 카페 문을 열자, 빈 테이블이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인도산 원두를 섬세하게 블렌딩한 에스프레소를 넣은, 이 곳의 플랫 화이트(150루피)는 무척 훌륭했다. 막 커피가 나왔을 때, 라떼 아트가 좀더 예쁘게 된 컵을 집어든 민디는 '나 요걸로 마셔도 되지? 저쪽 가서 촬영좀 하고 올께'라며 커피를 들고 빛이 더 밝은 곳으로 향했다. 만족스러울 때까지 셔터를 누르고 온 그녀는, '조금만 노력하면 더 좋은 사진이 나온다니까'라며 나를 놀라게 했다. 사실 과체중으로 무릎이 많이 아픈 그녀는, 아침 일찍부터 4~5시간동안 개인적으로 다녀온 로컬 푸드투어 때문에 다리가 많이 아팠을 텐데도 건강한 나보다 훨씬 부지런하다. 역시 아무나 글로벌 미디어가 되는 게 아니구나 싶었던.
앞서 스타벅스에서는 인도 물가가 만만치 않다고 느꼈지만, 이렇게 세련된 커피 로스터리가 볶아내는 신선한 인도산 아라비카 원두는 한국 대비 1/2 정도로 품질 대비 가격이 너무 저렴했다. 가격을 보고 놀라서 이 집의 남은 원두를 다 쓸어오려고 간만에 '있는 물건 다 주세요'를 외쳤건만, 하필 재고가 2봉지 뿐이란다. 2봉지라도 다 사고 싶었지만, 내심 남편에게 커피선물을 해주고 싶어하는 민디의 마음을 모르지 않아서, 그녀와 사이좋게 한 봉지씩 구입하고 뿌듯하게 카페를 빠져나왔다.
공항갈 시간에 맞춰 바삐 호텔로 복귀하는 우버 택시에서, 이제 그녀와 헤어져야 할 시간이 왔음을 깨달았다. 그녀는 '블로그 구독자 관리 어떻게 하니? 나는 뉴스레터를 하는데, 굉장히 효과적이야. 한번 해봐'라며 블로그 관리에 대한 노하우를 주고, '너같은 파트너를 만나서 너무 다행이야'라는 칭찬과 조언을 잃지 않았다. 물론 문화적 차이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그것을 이해하는 게 글로벌 행사를 참가하는 가장 중요한 의의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그녀가 느꼈던 나의 '젠틀'함은, 유교적 문화를 배경으로 가진 한국인의 '연장자에 대한 배려'와 맥락이 닿아 있다는 걸 잘 모를 것이다. 하지만 아무려면 어떤가. 서로에게 즐거운 여행이 되었으니 말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탑승한 에어 인디아의 탑승기와, 다이너스 카드로 입장했던 델리 공항의 플라자 프리미엄 라운지 후기도 올리고 싶은데, 사진이 너무 부족해서 이제 인도 여행기는 이쯤 해서 마무리해야 할 듯.:) 기록 차원에서 언급하자면, 에어 인디아의 델리~서울 구간은 가능하면 웹 체크인을 무조건 하는 게 좋다. 비행기가 미국에서 인도로, 다시 서울로(게다가 중간에 홍콩까지 들러 사람을 태운다;;) 오는 노선이라 미국에서부터 이미 좋은 좌석은 완전 풀북이다. 체크인 카운터에서는 손쓸 도리가 없으니, 나처럼 가운데 낑겨앉고 싶지 않다면 미리 손을 쓰는게 좋겠다.
어쨌든 이번 인도 첫 방문은 다시 돌아봐도 정말 얻은 것이 많았던 시간이었다. 인도는 무조건, 일이 아닌 개인적인 여행으로라도 다시 가려고 한다. 인도의 현재를 좀더 깊숙히 탐험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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