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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여행

가이드북 때문에 망한 여행? 자유여행의 실패를 줄이는 두 가지 방법

by nonie 2016. 4.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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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국인보다 나은 여행을 하고 있을까?

얼마전 주말에 상암동을 갈 일이 있었다. 미디어 단지인 상암동은 직장인 비율이 높은 지역이라, 주말에는 굉장히 한산한 편이다. 가족행사로 예약해 둔 레스토랑으로 가는 길, 유난히 빨간 한자 간판의 한식당(중식당이 아닌)이 몇몇 눈에 띄었다. 주말에 이렇게 큰 한식당이 장사가 될까 싶어 갸우뚱했는데, 잠시 후 관광버스에서 내리는 수많은 중국인을 보며 이 기묘한 상권의 구조를 납득할 수 있었다. 즉, 한국인이 아닌 관광객만을 상대로 하는 식당인데, 당연하게도 이런 식당들은 평소에 우리 눈에는 띄지 않는다. 우리의 일상과는 격리된, 일종의 관광객 전용 식당이다. 그런데 이런 데서 밥먹고 서울을 여행한다고 믿는 중국인을 맞닥뜨리는 우리는, 과연 얼마나 로컬 친화적인 해외 자유여행을 하고 있을까?  







최근 SNS에 앞다투어 올라오는 대만여행 후기가 있다. 아침 9시부터 (한국인만) 줄을 선다는 파크래커 열풍이다. 그런 과자는 아주 옛날부터 대만에 있었고, 아는 사람들은 다 알았고, 취향에 맞는 사람들만 찾아 사먹었다. 또 그 집 뿐 아니라 여러 과자집에서 자신만의 버전을 제조한다. 그런데 관광지 근처에 위치했다는 이유로, 그 가게만 갑자기 한국인 손님이 급증하는 웃지못할 풍경이 벌어진 것이다. 이미 한국어 웹페이지를 만들고 예약을 받을 정도다. 홍콩의 제니 베이커리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른 아침부터 과자를 사기 위해 줄을 서는 일이, 여행일정을 일부 포기할 만큼 가치있는 일인가? 대만, 홍콩인이 지나가면서 비웃을 일이다. 언젠가부터 내 블로그에 구체적인 상호를 언급하지 않는 이유 중에는 이런 현상도 포함된다. 어디가 맛있다고 과잉 소문이 나면, 진짜 로컬 식당도 순식간에 관광객 식당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대부분 내가 블로그에 소개해온 호텔이나 특정 스팟은 네이버에 한 건의 검색결과도 존재하지 않는 시점에 처음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이 무엇을 어떤 관점으로 볼지 선택하지 않는, '취향과 안목의 부재'는 한국인의 자유여행 전반에 깊숙히 깔려 있다. 아직까지 해외여행은 '뭔가 대단한 볼거리'가 이어져야 패키지보다 본전을 찾은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무의식중에 드는 큰 원인은 여행정보의 원천인 '가이드북'의 수준이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그 가이드북을 바탕으로 여행을 떠난 이들이 블로그를 쓰면, 이를 다시 베끼는 대다수의 여행자가 생겨나는 악순환의 무한반복이다. '인생샷'을 남겨야 하고 '유명맛집 클리어'를 해야 제대로 된 여행이라는 최근의 여행문화 패턴은, 페이스북의 2030 타겟 여행 커뮤니티들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인만 줄서는 '현지 맛집'이 생겨나는 이유

어떤 여행정보를 취하느냐는 여행 뿐 아니라 삶 전체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강의 때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여행이야말로 가장 비싼 기회비용을 유발하는 취미다. 단지 돈만 드는 게 아니라 자기 인생의 한 부분을 할애해서 온전히 투자하는 시간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시중의 여행 가이드북을 별다른 고민없이 집어든다. 가이드북이나 블로거가 선택한 '현지인 유명 맛집'은 정말 맛집일까? 그들은 현지인과 대화라도 해보고 나서 그 집을 선택한 것일까? 혹자는 포털의 검색 어뷰징이 너무 심해서 수많은 협찬여행기나 블로거의 무분별한 '맛집소개'(언제나 내가 먹는 곳은 '맛집'일거라는 확신에 차 있다)을 못 믿겠어서 가이드북을 선택한다고 한다. 그런데, 가이드북도 블로그 검색결과를 참고하고, 때로는 세심하게 베낀다. 더 웃긴건, 가이드북과 가이드북도 서로 베낀다는 것. (이건 예전에 업계에 일하며 실제 종종 목격한 일이다) 그 안에서 골라봤자, 한국어 여행정보의 수준은 거기서 거기다.


과거에 여행사를 운영했던 이들이 가이드북을 집필하는 경우, 패키지 상품에 포함된 단체 전용 식당이나 한식당을 버젓이 맛집으로 소개하는 일은 흔하다. 또한 패키지에 구성했던 역사적 명소만 지역별로 끊임없이 나열한다. 그런데 패키지여행은 가이드가 따라다니며 그 장소의 배경을 일일이 설명해준다. 없던 흥미도 생기게끔 만들어 '돈아깝다'는 본전 생각을 안 들게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자유여행은 가이드가 없으니 반드시 내 흥미, 내 관심사를 바탕으로 여행일정을 만들어야 한다. 이때 한국의 가이드북을 참고하면, 패키지와 다를 바 없는 일정이 만들어져 여행 만족도가 매우 낮아진다. 또한 세계일주나 배낭여행만 오래했던 여행자가 트렌디한 대도시(홍콩, 싱가포르 등)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세계의 영향력있는 여행 미디어의 수준과는 너무나 괴리가 크다. 모든 여행자가 저렴저렴하고 '가성비' 쩌는 유스호스텔과 식당만 찾던 시대는 갔다. 한국의 여행출판 업계는, 그 변화의 속도가 아직도 느리고 또 느리다.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한국인 전용' 여행정보로 여행을 해야 할까? 그저그런 자유여행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아래 두 가지 해결책을 제안해 본다.






획일적인 여행을 피하는 법 1, 저자의 백그라운드를 보라

우선 여행책을 고르기 전에, 어떤 여행을 할 것인지 생각해 보라. 만약 로컬맛집 투어를 하고 싶은데 일반 가이드북을 참고한다면, 한국인과 함께 식사를 하게 될 것이다. 나름의 명확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면, 시리즈형 가이드북에선 깊이있는 테마정보를 얻기 어렵다. 지금까지는 과거에 배낭여행, 저가여행을 오래했던 1세대 여행자가 특정 지역 전문작가로 변신해서 쓴 가이드북이 많았다(특히 유럽). 두껍기만 한 책에 가득 담긴 저렴 숙소와 여행자용 식당은 돈없는 대학생이 아니라면 써먹고 싶지 않을 정보 일색이다. '여행' 자체가 직업인 이들은 당연히 의식주의 연장선, 즉 가격과 접근성을 기준으로 장소를 선정하기 때문이다. 

반면 현지인과 폭넓게 교류하는 거주자가 직접 쓴 책(혹은 번역서), 전문분야를 따로 가진 이들의 테마 여행서는 급이 다른 안목으로 여행지의 현재를 조명한다. 블로그도 같은 방법으로 찾아내고 구독하면 정말 유용하다. 로컬과 함께 숨쉬는 공간, 새로운 미식의 세계, 지금 도시가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하는 단 한번의 여행이 내 삶을 풍요롭게 살찌우기 위해서는, '남과 다른 방법'으로 여행을 준비해야 한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러한 관점의 여행서를 몇 권 소개해보려고 한다.    



획일적인 여행을 피하는 법 2, 영어 실력을 늘리자

여행 중에 상점 문을 차마 열지 못하고 발길을 돌린 경험이 있는가?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이 말 거는게 두려워서, 오히려 한국인이 많은 식당에서 내심 마음의 위안을 찾는가? 그렇다면 지금이야말로 영어를 좀더 배울 시간이다. 특히 혼자, 혹은 둘이서 주로 여행한다면 반드시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어야 훨씬 다양한 여행경험을 쌓을 수 있다. 또한 가이드북에 의지하는 비중이 줄어들게 된다. 왠만한 건 직접 현지에서 물어보고 습득하는 정보가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접하는 정보의 질이 달라진다'. 전 세계 유용한 정보의 8~90% 이상이 '영어'로 생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영어를 메인으로 여행정보를 습득하는 사람과 한국어 정보만을 바탕으로 여행하는 사람의 경험의 깊이와 격차는 시간이 지날수록 엄청나게 벌어질 것이다. 즉 영어로 말하는 능력 뿐 아니라 평소에 읽고 쓰는 능력도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여행기자가 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는데, 여행기자가 아니라 일반 여행자라도 영어는 잘하면 잘할수록 이득이다. 이에 대해서는 예전에 쓴 글이 있다. 영어 구사 능력이 개인의 여행지 선택과 여행경험에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2015/10/07 - 영어, 얼마나 잘해야 하나요? 해외여행과 영어의 상관관계


2년 넘게 여행 관련 강의를 하면서 특히 영어에 관한 고민과 질문을 너무 많이 받아서 만든 여행영어 수업이 곧 종각의 마이크임팩트에서 정식 과정으로 개설될 예정이다. 여행지에서의 영어 회화가 말못할 고민이라면, 조만간 올라올 수업 일정도 참고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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