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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여행

타인의 여행 코스, 얼마나 참고하시나요? 여행일정에 대한 단상

by nonie 2014.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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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인의 해외여행 문화에는 '코스' '일정'으로 대변되는 '여행일정'이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잡았다. 최근 출판 관계자와의 여러 미팅 결과, 일제히 '코스북, 컨설팅북' 열풍을 꼽으며 비슷한 책을 여럿 기획 중이란다. 여행서 시장에 불황이 온 지 꽤 되었지만, 여전히 유행은 존재한다. 단, 개별 정보를 나열한 1세대 가이드북은 여행 블로그(정확히는 포털 검색)에 밀린 지 오래고, 아마추어 블로거가 쉽게 제시하지 못하는 '깔끔하게 정돈된 일정, 여행코스'가 지금의 테마 가이드북 열풍을 주도한다는 게 출판업계의 결론이다. 


여행일정을 공유하는 위시빈같은 서비스도 출현했다. 사실 여행일정을 공유하는 웹서비스는 과거에도 있었고(본격적인 시작은 '트래블로') 외국에도 많고 앞으로도 계속 나올 것이다. 그러나 블로그에 누차 지적해 왔듯이 '유저에게 많은 노력과 시간을 요구하면서 리워드는 분명치 않은 컨텐츠 서비스는 지속하기 어렵다'는 게 IT에 몸 담았던 개인적인 생각이다. 3~4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행 관련 웹/모바일 서비스는 여전히 여행자의 마음을 읽지 못하는 듯 하다. 


2010/07/29 - 블로그의 높아진 장벽, 그리고 여행 웹서비스에 대한 단상


최근 몇 년간 집중적으로 여행을 떠나며, 수많은 여행 일정을 준비했다. 하지만 여행 전에 짜는 상세 일정이, 실제 여행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아니, 좀더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우리는 왜 여행일정을 미리 짜고 떠나는 것일까? 여행에서 무엇이 불안하고, 얼마나 여행에서 시간 절약을 원하는 걸까? 스팟 이동 경로의 시간과 비용을 줄여서 시행착오 없이 모든 미션을 클리어하는 여행이 '훌륭하고 좋은 여행'인가? 11년만의 유럽 여행을 열흘 남짓 앞두고 있는, 내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여행의 본질, 실수인가 완벽함인가?

언젠가부터 한국인의 여행 준비 과정은 파워 블로그 및 여행 커뮤니티 검색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가 되었다. 수많은 이들이 자신의 여행 일정을 자랑스레 엑셀 파일(!)로 공유하는 것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유명 관광지와 유명 맛집+베스트 교통편의 조합을 짧은 시간에 많이 끼워넣는 '동선'이 핵심이다. 한국인의 턱없이 부족한 휴가 일수, 패키지에서 자유여행으로 넘어오는 과도기에서 나타나는 '유명 관광지 모조리 섭렵'에 대한 갈망이 이런 여행의 패턴을 만들어 낸다. 한정된 자원(돈과 시간)은 언제나 실수를 용납하지 않고, 그것은 모처럼 휴가받아 떠나는 '여행'에서도 마찬가지다.  


여행의 본질은 과연 실수를 줄이는 것일까? 시간을 아끼는 것일까? 어쩌면 1년에 1~2주밖에 해외 구경을 못하는 우리 현실에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여행이 매년 되풀이된다면? 결코 빈틈을 허용하지 않는, 계획된 여행은 패키지 여행의 기억이 그리 오래가지 않는 것처럼 금새 희미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실수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우리의 삶처럼, 여행 역시 그러하기 때문이다. 여행에도 왕도나 지름길은 없다.   




한국인의 흔한 여행일정표.jpg 자유여행인데, 이상하게 패키지보다 더 빡세다??




남이 짜준 일정은 내 여행이 될 수 있을까?

요즘 봇물처럼 서점에 쏟아지는 해외여행 코스북을 보고 있자면,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것이 정녕 이런 것 뿐일까 하는 의문을 갖게 한다. 여행일정을 공유하는 서비스의 일정도 '빽빽할수록' 좋은 평가를 받는다. 유명 관광지와 맛집에 대한 정보는 차고 흘러 넘치고, 이들끼리의 조합 방법도 모두 비슷해졌다. 남들이 편리하게 짜준 여행 일정은, 내 여행에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이 될까?


현재 한국인의 해외여행에서 완벽하게 배제된 단 하나는 '자신의 취향'이다. 내가 이 미술관과 박물관을 정말 보고 싶어하는지에 대한 가치판단이 빠져 있다는 뜻이다.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취향과 열정을 갖고 있으면서도, 여행에서는 아직도 '본전 생각 안나는 코스'를 더 존중한다. 많은 이들이 내 수업(여행작가 입문 과정)에 관심을 갖고 찾아 오지만, 만약 100명이면 100명 다 가는 유명 관광지만 섭렵한 후 '여행 글쓰기'에 도전한다면 차별화된 여행기를 쓸 수 있을까? 비싼 돈과 시간을 들여 남들과 똑같은 여행기를 하나 더 보태는 꼴이다.  


2년 전 쿠알라룸푸르 자유여행을 준비할 때, 그 누구의 일정도 참고하지 않고 의식의 흐름대로 타국에 비해 유명하지도 않은 '커피'를 파고 들어 희한한 일정을 짰었다. 근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일정표를 많은 이들이 참고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이토록 취향이 귀해진 시대에,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2012/06/08 - 5박 7일 쿠알라룸푸르 자유여행을 마치고 - 추천 일정 및 후기




여행 일정을 짤 때는 '나'를 중심에 세워라

이제 여행 코스 '컨설팅'은 그만 받자. 이미 짜여진 여행 일정을 기웃거리며 남들이 보는 거 하나라도 놓치지 않는 여행은 그만해도 된다. 처음 가는 여행지라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시간이 없어서 남의 일정을 참고해야 한다고? 그렇다면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먼저 생각한 다음에 참고해도 된다. 여행지 자체를 정할 때도 마찬가지다


예를 들어 홍콩을 여행한다면 '마담 투소에서 피크 트램에 레이디스 마켓을 거쳐 제니 베이커리 쿠키를 사들고 오는' 일정 말고, 커피를 좋아한다면 느긋하게 카페 투어를 해보자. 히피스러운 휴식을 원한다면 라마 섬으로 가자. 내 관심사에 따라 개별 스팟을 조사하고, 에버노트에 스크랩하자. 태그만 달면 지역 별로 금새 분류되어 필요한 곳에서 해당 정보를 사용할 수 있다. 상세 동선을 짜는 대신, 현지에 가서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조정하면 된다. 우리가 미리 결정해야 하는 건 동선이 아니라 '좋은 항공편과 좋은 숙박시설'이다. 여행은 절대로 어렵거나 두려운 도전이 아니다. 다만 우리 인생의 한 순간(돈과 시간을 특별히 많이 들이는;)이기에 좀더 섬세한 정성이 필요할 뿐이다. 


2013/10/21 - [스마트 트래블] 에버노트로 나만의 맞춤 여행 가이드북 만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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