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는 그 어느 곳보다도 관광지가 명확하게 정의내려진 도시이다 보니, 유명한 지역을 제외한 나머지 동네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이번 여행은 가이드북의 사각지대만 골라 다니면서 싱가포르의 숨겨진 매력을 즐기기로 했다. 오래된 맛집과 페라나칸 주택을 만날 수 있는 이스트코스트에서 뿌듯하게 배를 채운 후, 아랍 스트리트의 빈티지한 카페에서 밀크티로 입가심을 했다. 그리곤 현지인 친구와 함께 태국 가게만 모여 있는 타운 상가를 구경하며 장을 보았다. 여행 중인데 딱히 여행하는 것 같지 않은, 싱가포르에서의 첫날 오후는 이렇게 흘러간다.










소박하면서도 이국적인 로컬 동네, 카통

아모이 호텔에서 아침을 먹고, 내 친구의 집이 있는 싱가포르의 동쪽 끝, 파지 리스로 향했다. 두 달 전에도 물심양면으로 도움을 주었던 싱가포르 친구는 이번에도 내가 온단 소식을 듣고 새벽에 공항으로 마중을 나오고ㅜㅜ 오늘은 이스트코스트에서 평생을 살아온 그가 홈그라운드를 직접 안내해 주기로 했다. 그의 동네에서 버스를 타니 카통 지구 깊숙히 한번에 들어올 수 있었다. MRT를 탔다면 더운 날씨에 상당히 걷거나 헤맸을 텐데. 이번 여행에선 지하철 말고도 버스를 자주 탔는데, 덕분에 택시비와 시간을 엄청 절약했다. 역시 현지 교통은 빨리 마스터할수록 편하다.


맑고 반짝이는 싱가포르의 쨍한 오후, 카통 지구의 한복판에 서자 기분이 확 좋아진다. 나지막한 높이의 고풍스러운 페라나칸 주택이 늘어서 있는 이 거리엔 오래된 식당과 바, 카페, 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찾아오기 애매한 위치여서 모든 가이드북의 카통 맛집에는 다 빠져있는, 하지만 현지인에겐 필수 코스인 새우 누들 맛집도 바로 이 거리에 있다.   









이 집에선 곱배기에 해당하는 '스페셜 빅' 누들을 시켰더니 이렇게 커다란 새우가 듬뿍! 새우도 맛있지만 국물이 예술이다. 새우를 당최 얼마나 오래 우려낸 건지, 국물 한 스푼에 배어나는 새우의 깊은 맛이 감탄사를 자아낸다. 그가 열심히 테이블을 세팅하더니, 고추 간장을 얼른 얹어서 먹어보란다. 고추를 건져내 씹는 맛이 있는 면발 위에 올려 먹어보니 알싸하게 매콤한 맛이 입맛을 돋운다. 오랜 시간 사랑받는 그들의 음식에는 역시 맛, 그 이상의 뭔가가 있다. 그는 돼지고기가 첨가된 새우누들을 주문했는데, 미묘하게 맛이 다르면서 역시 맛있다. 거의 그릇에 코 박고 원샷한 듯...


카운터에선 잘게 썬 돼지 비계를 양파, 마늘과 함께 튀겨낸 것을 통에 담아 팔고 있다. 엄청 살은 찌겠지만, 이 작은 양념이 누들의 감칠맛을 더하는 비결이 아닐까 싶었다. 싱가포르에서 주문하는 누들 요리에는 이것이 꼭 뿌려져 있더라. 









싱가포르 누들로드의 마무리, 카통 락사

카통에 왔으니 이곳 제일의 명물을 지나치면 서운하겠지 싶어서, 터질 것 같은 배를 부여잡고 곧바로 락사집으로 향했다. 새우 누들이 현지인의 성지라면, 328 락사는 많이 소개된 유명 맛집이다. 입구에 세워진 고든 램지의 인증샷ㅋㅋ이 이를 증명한다. 난 사실 락사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서, 입맛에 맞지 않을까봐 조금 걱정했다. 하지만 시내의 푸드코트나 체인점에서 흔하게 만나는 락사와는 일단 비주얼부터가 다르다. 전통 레시피를 지금까지 철저히 고수하는 이곳의 락사는 열대나라 특유의 맛과 향이 살아있고 건더기도 푸짐했다. 스푼에 담겨나온 고수 파우더를 국물에 섞어 한 입 후루룩 먹어보니 맑고 개운한 새우 누들과는 또 다른 진한 매력이 있다. 더운 공기가 훅훅 느껴지는 야외 테이블에서 땀흘려가며 먹는 향기로운 락사 한 그릇, 지금 내가 싱가포르에 와 있다는 게 온몸으로 와닿는 순간. 








아랍 스트리트에서 만난, 차이니즈 카페

2월 초의 싱가포르는 그리 덥지 않다. 우기가 막 지나고 있는 시기여서 하늘은 맑고 그늘은 선선하다. 저녁은 근사한 스카이바에 가기로 했는데 아직 시간이 좀 남아서, 이스트코스트에서 가까운 아랍 스트리트에 잠시 들렀다. 두달 전 왔을 때는 아예 와보지도 못했으니, 근 4년만의 방문이다. 모스크와 아름다운 벽화 같은 고유의 풍경이 그때와 크게 달라지진 않았지만, 아랍스트리트와 부기스 일대도 그 사이 많은 숍이 생겼다 사라지고 다시 생겨났다. 로컬 동네라고 하기엔 이젠 너무나 관광지화가 되어서, 시간의 흔적을 찾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참, 이번 일정에서 부기스를 두 번이나 왔는데, 무스타파 센터를 못 갔네.ㅋㅋ 히말라야 말고 새로운 쇼핑 아이템 발굴하러, 담엔 꼭 가는 걸로.ㅋ








상업화된 이 거리에서 약간의 아쉬움을 안은 채로, 미리 알아뒀던 작고 오래된 카페에 잠시 들렀다. 차이니즈 빈티지를 특별히 좋아하는 내겐 딱 취향의 카페. 3대째 전해 내려오는 옛 레시피 그대로 매일 타르트와 빵을 구워낸다는 이 곳에서, 밀크티 한 잔을 주문했다. 시원하고 쌉쌀한 밀크티는 더위를 차분하게 가라앉혀 준다.  


사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가고 싶었던 빵집은 따로 있었다. 카야 토스트로 유명한 야쿤카야나 킬리니같은 대형 토스트 체인에 공급하는 식빵을 수십 년간 구워온, 원조 중의 원조 빵집이다. 위치가 시내에서 살짝 벗어나 있어서 동선을 맞추지 못해 결국 못갔다는 흑흑..조만간 다시 방문하면 꼭 들러야 할 싱가포르 위시리스트, 지금도 작성 중. 








태국인의, 태국인에 의한, 태국인을 위한

스카이바로 향하기 전, 그는 흥미로운 곳이 있다며 어디론가 걷기 시작했다. 부기스에서 걸어서 10~15분 거리에 있는 노란 빛의 큰 건물, 골든마일 컴플렉스였다. 언뜻 싱가포르의 수많은 실내상가와 다르지 않아 보였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여긴 또 뭥미!!! 모든 간판이 다 태국어로 씌여 있고, 태국 음식점과 태국 과자만 파는 가게, 슈퍼마켓과 환전소까지...그러니까 일종의 작은 태국인 타운인 셈이다. 하지만 좀 무서워 보이는;; 남자들이 많이 돌아다니는 편이니, 여자 혼자서나 재미삼아 올만한 분위기는 전혀 아니라는 게 함정. 


과자 가게에서 '벤또'라는 태국 과자를 몇 봉지 샀고, 태국 슈퍼마켓을 구경하다가 또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튀긴 마늘(음식에 뿌려먹는) 한 봉지와 그린 망고를 샀다. 얼마 안되긴 하지만 말없이 계산해주는 친구의 배려가 고마울 뿐이고.







방콕에서 칠리솔트에 찍어먹던 그린망고를 싱가포르 한 복판에서 발견할 줄이야!! 가격도 1.8SD$...1500원 정도로 태국 현지 가격과 별 차이가 없다. 근데 사와서 바로 먹었어야 하는데 깜박하고 가방에 넣어놨더니 맛이 좀 덜했다. 튀긴 마늘가루는 한국에 데려와서 음식 여기저기 뿌려서 잘 먹는 중.ㅋ 이스트코스트에서 시작한 오늘의 맛집 순례는 이렇게 태국 먹거리 쇼핑으로 마감한다. 이제 해가 지기 전에 얼른 스카이바로 올라가서 자리를 잡을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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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5.03.12 16: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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