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이 컬럼은 2005년 싸이월드에서 운영했던 음악 페이퍼 '숨겨진 Groove를 찾아서'에 연재했던 글로, 당시 흑인음악 웹진 창업 준비를 하며 음악평론 쪽에서 활발히 활동하던 때였다. 99년 소니뮤직에 직접 제안해서 한국 최초의 머라이어 캐리 공식 팬클럽을 창단할 만큼 열혈 팬이었던 내게 특별히 의미가 깊은 컨텐츠였기에, 뒤늦게 블로그에 옮겨와 본다. 싸이월드의 페이퍼 서비스가 없어진 관계로, 원본 글은 여기서 볼 수 있다.)
Intro
2005년 11월, 현 시점의 머라이어 캐리에게 '제 2의 전성기'라는 타이틀은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90년대 중반의 화려한 시절이 전혀 부럽지 않은 [We belong together]의 기록적인 빌보드 싱글 14주 No.1, 그것도 모자라 다음 싱글인 [Shake it off]가 순식간에 2위를 점유하며 자신의 이름을 1,2위에 나란히 올려놓는 괴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 Emancipation of Mimi- 앨범의 수록곡들로도 부족했는지, 지금은 신곡 [Don't forget about us]로 또 다시 에어플레이 차트를 맹렬히 뛰어오르고 있는 중이다.
최근 몇 년간 누구보다 힘든 시간을 겪었던 그녀가 재기에 성공한 요인은 단지 신작 -Emancipation of Mimi-의 대대적인 홍보 때문만도, 트렌디한 음악 컬러 때문만도 아니다. 10년이 넘는 오랜 팬으로써 지켜본 필자는, 그 이유를 다름 아닌 지난 15년 동안 그녀가 내놓은 모든 '싱글' 속에서 찾았다. 오늘은 머라이어 캐리의 조금 특별한 "Remix" 얘기를 해볼까 한다.
머라이어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려면 싱글을 들어 보라
미국을 중심으로 전 세계 수많은 아티스트가 앨범과는 별도로 '싱글'을 발매하지만, 세계 최고로 방대하다는 미국의 싱글 시장에서 정작 싱글의 퀄리티는 지금까지 논외의 대상이었다. 그것은 싱글이 앨범처럼 아티스트의 아이덴디티를 나타내기 보다는 홍보나 프로모션 판매, 에어플레이 등 음악 외적인 용도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자연히 싱글에 담긴 트랙은 전문 DJ들의 리믹스 몇곡, 혹은 앨범 수록곡 2~3곡을 함께 싣는 정도에 그쳤다. 지금도 대부분의 싱글들은 이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특히 리믹스의 경우, 거의 모든 싱글 리믹스가 앨범 보컬 버전에 리믹스 사운드를 덧입힌 '재활용' 트랙들이 대부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머라이어의 음악에서 '싱글'이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거대하다.
끊임없이 틈새 시장을 찾아 해매는 똑똑한 마케터처럼, 그녀는 다른 아티스트가 크게 신경쓰지 않던 싱글 리믹스라는 분야를 새롭게,부지런히 개척했다. 싱글 커트곡이 정해지면 이를 스튜디오에서 완전히 새로운 스타일로 재작업해 싱글에 싣는 시도를 놀라울 정도로 많이 해 왔던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싱글 팔아 차트 1위' 의 상업적 의도를 가지고는 절대 해낼 수 없는 힘든 작업이다. 더구나, 타 가수들처럼 일회성이 아닌, 매 싱글마다 이 작업을 완성한다는 것은 불굴의 창작열이 없이는 이루어낼 수 없는 일이다.
그 수많은 리믹스그래피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면, Club Dance / R&B & Hip-hop 계열로 볼 수 있다. 각 장르 별로 대표적인 싱글 몇 가지를 소개하고, 이들에 얽힌 배경과 음악적 의의를 풀어 보기로 하자.
Club Dance - 그녀의 어둡고 관능적인 이면
국내에 널리 알려진 발라드 가수의 이미지와는 달리, 그녀는 데뷔 시절부터 꾸준히 댄스트랙을 히트시켜 왔으며 질 높은 싱글 리믹스 덕분에 클럽 디바의 위상 또한 굳건하다. 본격적으로 앨범 버전을 재해석하는 시도도 바로 클럽 믹스로부터 시작되었는데, 그 첫 포문은 바로 93년 3집 -Music box-의 첫 넘버원 싱글, [Dreamlover]이다.
이 싱글은 리믹스의 대가이자 이후로도 줄곧 그녀의 클럽 믹스를 담당한 'David Morales'를 만난 첫 작품으로써, 그녀만의 클럽 믹스의 색채를 분명하게 규정한 싱글의 시작이라는 데 의의가 있다. 단순히 앨범 버젼을 빠르게 돌리는 무성의한 리믹스가 아니라, 밝고 경쾌한 분위기(Major)의 원곡을 어둡고 쓸쓸한 톤(minor)으로 재해석한 보컬 레코딩이 특색인 '머라이어표 클럽 믹스'를 정의한 것이다.
이 때만 해도, 이같은 신선한 시도는 대중에게 그리 주목받지 못했다. 순수하고 청순했던 당시의 이미지와 대비되는 다소 퇴폐(?)적이고 관능적인 사운드였기 때문인데, Def Club Mix 의 이러한 실험적인 시도는 일회성으로 끝맺지 않고 10년이 넘는 현재까지 이어진다.
이는 그녀 개인의 의지로 보여진다. 잘 알려진 대로 머라이어는 93년 소니 뮤직 사장인 토미 모톨라의 부인이 된 이후, 그의 보수적인 구속에 견딜 수 없어 했다. 이는 비단 사적인 영역 뿐 아니라 음악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따라서 순수한 이미지를 대외적으로 강요하는 것에 대한 도피처이자 자신의 또다른 정체성을 찾기 위한 시도로써 이 클럽 믹스가 그녀에게 큰 만족감을 줬던 것으로 추측된다. (당시 인터뷰를 보면 그녀는 Morales와의 작업에 큰 만족을 표시하며 그에게 음악적인 권한을 많이 할애한다고 언급한다. 앨범과는 완전히 다른 색깔을 내기 위한 시도로 보인다)
(사진: 좌측부터 Can't take that away, Always be my baby, Anytime You Need a Friend)
Morales와의 조우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점점 대담해졌다. 댄서블한 원곡만이 클럽 리믹스의 대상이 된다는 통념을 깨고, 발라드 트랙까지 손을 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Can't take that away] 에서 그녀는 원곡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곡을 해체하고, 쓸쓸하게 흩어지는 웃음소리가 인상적인 하우스 풍 사운드로 재구성하였다. 호주와 유럽에서만 발매된 [Always be my baby]의 댄스 버젼 역시 해맑은 원곡과는 대조적인, 어둡고 불안한 음조가 반복되는 클럽 믹스를 선보였다. 이들 두 곡은 [Fantasy]나 [Honey]같은 히트 싱글과는 달리 프로모션용 싱글이었는데도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리믹스를 완성했다.
모든 클럽 믹스가 Morales와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Anytime you need a friend]와 같은 싱글에서는 C&C Music Factory로 유명한 David cole와의 작업으로 역작이 탄생했다. 10분이 넘는 이 리믹스는 웅장한 발라드를 밝고 경쾌한 분위기로 탈바꿈시켰으며, 마지막 2분 가량의 스캣 보컬은 혀를 내두르게 한다. 2집 수록곡인 [The wind]에 이어 재즈에도 탁월한 재능이 있음을 엿보게 해주는 작품이다.
R&B와 Hip-hop - 점점 선명해지는 정체성
R&B 믹스의 대상이 되는 원곡에는 모두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원곡이 대부분 '어덜트 컨템포러리' 성향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것. 그녀는 오리지날 흑인음악이 아닌 팝에 가까운 사운드로 데뷔했지만, 언제나 원류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특히 토미 모톨라와 이혼한 이후 그녀의 음악은 외적인 이미지 만큼이나 변신에 변신을 거듭했다. 그 변신의 방향은 당연히 흑인음악이었다. 그러나 발라드와 팝으로 쌓은 기존 팬 베이스를 완전히 배제할 순 없었으므로 앨범엔 언제나 팝 트랙이 빠지지 않았고, 그 곡들은 싱글에서 조금씩 그녀만의 '검은' 색채로 덧입혀졌다.
Anytime you need a friend의 두 가지 싱글 커버.
[Anytime you need a friend]의 댄스 리믹스는 따로 제작한 뮤직비디오가 있고 공연에서도 선보였기 때문에 원곡 만큼이나 유명하지만, 원곡을 소울 스타일로 교묘히 바꿔 부른 느린 버전이 있다는 사실은 어지간한 팬이 아니면 알기 힘들다. 원곡 자체도 가스펠 색채가 짙지만, 그녀는 팝 가수라는 굴레를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던지 이 곡을 굳이 다시 불러 녹음했다. 그것이 바로 Soul Convention Mix 버젼이다. 여기서 그녀는 보다 R&B에 가까운 도입부를 새로 만들어 넣고, 하이라이트에서의 보컬도 좀더 소울풀하게 표현했다.
이같은 시도는 기록적인 16주 No.1 싱글인 [One Sweet day]의 Sweet a Cappella 버전에도 나타나 있다. 이상의 2곡에서 보였던 머라이어의 초기 시도는 다소 소극적인 양상을 보인 반면, [Always be my baby]를 기점으로 한 R&B 리믹스는 보다 다채롭고 창조적으로 발전한다.
(사진: 좌측부터 I still believe, Underneath the stars, One Sweet Day - 일본 한정반)
랩과 힙합 비트를 가미한 트렌디한 R&B 버젼은 [Always be my baby]에서 저메인 듀프리와의 인연으로 시작하는데, 공간감이 느껴지는 비트와 Xscape의 달콤한 코러스, 단골 게스트인 Da brat의 랩핑이 잘 어우러진 작품으로, 별도의 리믹스 뮤비도 제작되어 인기에 큰 몫을 했다.
이러한 시도의 연장선상에 있는 싱글이 [I still believe]인데, 무려 2가지의 서로 다른 멜로디로 리믹스를 만들었다. Pure Imagination 버전은 Damizza의 믹스로 Krayzie Bone이 참여하여 마치 예전 본덕스앤 하모니의 사운드를 듣는 느낌이다. 또다른 버전은 Stevie J의 믹스로 좀더 R&B의 느낌을 강조한 새로운 멜로디를 감상할 수 있다.
[Underneath the stars] 싱글은 프로모 용으로 발매되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Trackmasters의 리믹스로 다시 태어난 힙합 비트 위에 Minor로 변조한 멜로디를 다시 녹음했다.
(사진: 좌측부터 Heartbreaker, Thank god I found you, My all/Stay awhile)
R&B 리믹스의 또다른 양상은 80년대의 오마쥬를 담은 복고풍 버젼이다. 그녀는 잘 알려진 대로 80년대 음악의 열렬한 팬이며 -Glitter- 앨범과 영화에서도 공공연히 그 시절 음악에 대한 애정을 드러내 왔다. 이는 몇몇 싱글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특히 [My all]의 다양한 리믹스 중 하나인 Stay Awhile 버전이 대표적이다. Loose Ends의 [Stay a Little While]을 샘플링했는데, Remix 보다는 Remake에 가깝다. [My all] 에서는 1절과 코러스를, 그리고 [Stay a Little While]에서 2절과 코러스를 불러냄으로써 두 곡을 완벽하게 블렌딩했다. Keith Sweat의 87년 데뷔곡 [Make It Last Forever]를 Joe와 함께 훌륭히 재현한 [Thank god I found you] 역시 그녀의 80년대 사랑을 물씬 느끼게 한다. 두 곡 모두 유명 랩퍼들과의 협연으로 현대적 감각을 조율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R&B 리믹스가 아닌 클럽 믹스이긴 하지만, [Heartbreaker]의 if you should ever be lonely 믹스는 주목할 만 하다. 프린스와 함께 80년대 훵크의 양대 산맥인 Rick James가 발굴한 Val Young의 86년도 히트곡의 일부분을 그대로 불러 삽입한 것이다. [Heartbreaker]의 클럽 믹스는 처음엔 다른 곡들처럼 마이너 조로 편곡되어 빠르게 진행되지만, 중간에 서서히 느려지면서 디스코 풍의 비트로 바뀌고, [If you should ever be lonely]가 흘러나온다.
Outro
어느 정도 대중의 기호를 맞춰야 하는 앨범과는 달리, 싱글은 실험적인 시도에 좀더 자유로울 뿐만 아니라 그녀의 싱글을 꾸준히 구매하는 고정 팬들에게는 큰 팬서비스로 작용한다.
머라이어는 앨범에 미처 담아내지 못했던 자신의 음악 세계를 싱글의 리믹스로 마음껏 펼쳐 보였고, 이는 결과적으로 그녀의 음악적 실험이 다양해지는 기회를 제공했다. 결국 지난 몇 년간의 부진을 씻고 2005년의 음악 코드를 재빠르게 읽어내 대중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는데 성공했다.
그녀의 지칠줄 모르는 창작열과 음악에 대한 정성스런 노력, 자신의 음악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하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모든 결과물은 바로 그녀의 싱글 곳곳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아직까지 머라이어의 앨범만을 접해 보았다면, 이번 기회에 그녀의 색다른 리믹스 향연에 푹 빠져 보는건 어떨까?
Written by no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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