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알라룸푸르에서 머문 건 2박 3일이지만, 온전히 여행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루 뿐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시내를 쏘다니며 오래된 식당과 멋진 카페를 찾아 다녔다. 이글이글 타는 대낮의 더위 탓에 걷는 것 조차 힘들어질 땐, 시원한 쇼핑몰에서 더위를 피하며 쇼핑을 즐겼다. 순식간에 지나간 하루를 아쉬워할 새도 없이, 헬기 정류장으로 쓰였던 빌딩 꼭대기에 올라 시원한 야경을 만끽했다. 아쉬운 마음만큼 꽉 채워 보낸, 쿠알라룸푸르의 멋진 하루.
Kaya Toast @ Yut Kee
3년 전 쿠알라룸푸르에서 온전히 1주일을 보내며 나름대로 누구보다 꼼꼼하게 여행을 했지만, 여전히 가보지 못한 곳은 많았다. 수십 년간 한 자리를 지켜온 로컬 맛집 윳키를 놓친 것이 내내 아쉬웠는데, 마침 샹그릴라 호텔 바로 근처에 있어 걸어가 보기로 했다. 날씨가 워낙 더워서인지 유난히도 사람이 없던 아침, 부킷 나나의 대로변을 따라 천천히 걸어 식당에 무사히 도착했다. 최근 건물을 새로 지어 옮겼다는데, 그래서인지 구글맵 상의 위치는 예전 위치라고 한다.
윳키는 오래되고 소박한 동네 식당이다. 어째서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이는 조용한 도심에 이 식당만 사람이 바글바글한지,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언뜻 보기에도 관광객은 거의 없고, 빈 테이블도 없다. 겨우 자리를 잡고 카야 토스트와 아이스 밀크티, 계란 추가를 주문했다. 호텔에서 든든히 조식을 먹고 나온 지라 배는 고프지 않았지만, 이곳의 토스트와 밀크티는 꼭 먹어보고 싶었다. 몽글몽글 덩어리가 진 카야잼은 금방 만들었는지 따뜻하고, 토스트 역시 골고루 잘 구워내 식감이 좋다. 계란 두 개를 깨어 간장을 몇 방울 떨어뜨리고, 버터와 카야잼을 바른 토스트를 푹 찍어 입에 넣는다. 점점 더 뜨거워지는 정오 한낮, 시원한 밀크티가 한도 없이 꿀떡꿀떡 들어간다.
2012/06/27 - 오래된 시간의 흔적, 올드 차이나 카페에서의 티타임
Coffee @ LOKL
3년 전 KL을 여행하면서 제일 아쉬웠던 건 커피였다. 우리와는 원두 가공방식이 달라 느끼한 마가린 향이 나는 원두커피를 마셔야 했던 3년 전과는 달리, 말레이시아에도 정통 원두커피 바람이 불면서 새로운 카페가 많이 생겼다. '신식' 커피의 흐름을 주도한 선구자로 LOKL 카페를 빼놓을 수 없다. 쿠알라룸푸르의 도시 이미지를 현대적으로 해석한 카페 인테리어는 로컬의 개성을 담뿍 담았다. 티셔츠까지 만들어서 팔 정도이니 '브랜딩'에 나름의 철학을 가진 카페가 분명했다. 커피와 브라우니를 주문해 잠시 느긋하게 티타임을 가졌다.
알고보니 LOKL은 Backhome이라는 나름 유명한 호스텔이 함께 운영하는 카페였다. 또한 이 골목은 차이나타운에서 가깝지만 페탈링 스트리트처럼 중국색이 짙은 거리가 아니라, 현지 젊은이들이 점심을 먹으러 오거나 전 세계 여행자가 로컬처럼 머물며 여행하는 지역이다. 그래서인지 론리 플래닛에 소개된 중고서점 정크 북스토어에는 오래된 여행 가이드북이 켜켜이 쌓여 있다. 지금 머무는 샹그릴라도 그닥 멀진 않지만, 기회가 된다면 이쪽에서 숙박을 하면서 로컬 스타일로 쿠알라룸푸르를 즐기는 여행도 참 좋을 듯 하다. 이 주변엔 저렴한 현지 맛집이 유난히 많이 보였다.
2012/06/20 - 쿠알라룸푸르 차이나타운의 이국적인 시장, 센트럴마켓
2012/06/19 - 차이나타운 속 힌두사원에서, 여행지와 일상의 경계에 서다
Relax @ KLCC Suria
KLCC 페트로나스 타워에 있는 수리아 몰로 향했다. 여기도 파빌리온처럼 여행자 할인해주는 카드가 있어서 컨시어지에 여권 보여주면 만들 수 있다. 지하에 내려가니 가렛팝콘이 있길래 시카고 믹스 한 봉지 사서 한참을 앉아 쉬며 팝콘 냠냠. 한국에선 가격이 깡패인 가렛팝콘이지만 말레이나 싱가포르에선 나름 사먹을 만 하다.
수리아에는 갤러리 페트로나스라는 작은 미술관도 있는데, 2014년 론리 영문판에 소개가 되어 있어서 호기심에 한번 들러봤다. 내가 갔던 때에는 로컬 만화가의 전시가 한창이었는데, 생각보다 전시규모가 크고 무료여서 재미나게 봤다.
2012/06/18 - 쿠알라룸푸르의 밤은 찬란했다! KLCC의 야경 만끽하기
2012/07/26 - KL의 랜드마크 파빌리온에서 로컬 카페까지, 부킷 빈탕 탐험하기
시티은행에서 현금인출 & 무료버스 GoKL
쿠알라룸푸르의 대중교통에는 뭔가 대변혁이 일어난 듯 하다. 피부에 닿는 순간 화상을 입을 듯한 더위는 아무리 관대한 여행자라도 금새 지치게 만들기에, 쿠알라룸푸르에서 '교통'을 숙지하는 건 선택이 아닌 필수다. 3년 전에도 택시에 안좋은 기억이 있었지만 부킷 나나에 머무는 이상 반쯤은 포기하고 있었는데 이게 왠일! 시내를 순환하는 무료 버스 GoKL 노선이 2개나 생기면서, 쿠알라룸푸르 여행이 한결 스무스해졌다.
특히 환전을 안하고 현지 시티은행에서 현금인출을 하는 내게는, 쿠알라룸푸르에 시티은행이 별로 없다는 사실이 매우 불안했다.(참고로 부킷빈탕 지점은 구글맵에선 검색되지만 막상 가보면 없다) 하지만 GoKL 버스를 타면 샹그릴라 호텔이 있는 부킷나나를 지나 시티은행 바로 앞에 선다는 거!!! 덕분에 부킷빈탕~부킷나나(샹그릴라)~KLCC를 불과 1~2시간 내에 돌아볼 수 있었다. 아마도 새로 개통한 공항철도역 KL Sentral이 도심과는 다소 떨어져 있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한 버스인 듯 하다. 기존의 지하/지상철 외에 공항철도와 무료 버스가 생긴 건 두 팔 벌려 환영할 일이지만, GoKL버스는 퍼플/그린 라인의 노선이 완전히 다르니 잘 확인하고 타야 한다.
Gin Tonic @ Heli Lounge Bar
KL의 새로운 비밀 명소로 아는 사람만 안다는 헬리 라운지 바로 향하기 위해 들뜬 마음으로 호텔을 나섰다. 여기도 샹그릴라 호텔에서 걸어서 5~10분! 이래저래 호텔 덕 무지하게 본다. 근데 스카이바가 있는 건물 앞에 도착했을 때, 뭔가 불안한 느낌을 감지했다. 안돼! 카메라를 호텔에 놓고 왔네...야경에 카메라가 빠지면 촬영은 안드로메다로..ㅜㅜ.
다시 돌아가려니 해가 너무 져버려 그나마 남은 석양도 놓칠 것 같아서, 아쉬움을 가득 안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건물 꼭대기에 올라가니 헬리콥터 모형이 매달린 어두컴컴한 실내형 바에 먼저 안내를 받았다. 여기서 음료를 주문한 후 컵을 들고 직접 야외 라운지로 올라가면 된다. 카메라 때문에 우왕좌왕하는 사이에 해가 져서 선셋 타임은 완전히 놓쳤다. 에라 모르겠다. 진토닉 한 잔에 마음을 비우며, 시원한 밤공기나 실컷 들이마시고 가는 수밖에.
방콕의 스카이바처럼 화려하지도, 스펙터클하지도 않다. 간이 테이블과 의자 몇 개가 전부인 약간 엉성해보이는 공간인데, 오히려 그게 더 편안하게 느껴져서 오래오래 있고 싶어지는 캐주얼한 공간. 3년 전과는 또 다른 각도로 페트로나스를 바라보며, 짧은 쿠알라룸푸르 여행은 이렇게 마무리하기로. 이제 본격적인 리조트 투어를 위해 페낭으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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