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타운의 시작, 잘란 페탕 거리
색색의 히잡이 눈앞을 휘휘 지나쳐가는 말레이시아의 수도 쿠알라룸푸르에도, 어김없이 차이나타운이 있다. 전 세계 어느 도시의 차이나타운과 비교해도 제법 위풍당당한 규모의 잘란 페탕 거리에는 커다랗고 붉은 대문이 그 시작을 알린다. 쾌활한 상인들과 여행자들로 떠들썩한 거리를 거닐다 보면, 눈은 즐겁지만 어김없이 열대의 더위가 갈증을 부른다.
그래서인지 곳곳에 냉음료를 파는 점포가 많은데, 사람들이 줄서서 마시는 두유와 리치 냉차를 맛보기로 했다. 5백원도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담백하고 시원한 맛. 서울의 백화점에서 파는 음료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아직 쇼핑은 시작도 안했건만, 이 상인들의 거리에서 주스 한잔으로 그저 행복한 미소가 흐른다.
스리 마하마리아만 사원 앞에서
인간의 세상을 지나, 이제 신의 영역으로 한발짝 나아간다. 말레이시아의 문화적 특성을 한눈에 엿볼 수 있는 상징적인 장소, 스리 마하마리아만 사원이 바로 차이나타운에 있다. 힌두 사원은 싱가포르에서도 여러 번 가봐서 익숙한 양식이지만, '이슬람' 국가의 '차이나타운'에서 무려 힌두 사원을 구경하게 될 줄이야. 그들의 문화와 종교와 민족은 이렇듯 복잡하게 혼재되어 있고, 단일 민족국가에서 평생을 살아온 내게 이러한 광경은 조용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사원 앞에서 한참 사진을 찍다가 문득 왼쪽을 보니, 꽃을 꿰는 아저씨가 있다.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모조리 윗쪽을 쳐다보며 카메라를 들이대는 바로 그 장소에서, 그는 신에게 바치는 꽃목걸이를 묵묵히 만들고 있다. 샛노란 꽃과 푸르른 라임이, 그들의 신에게 바쳐질 순간을 기다리며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여행지와 일상의 경계에서
꽃을 꿰는 아저씨를 한참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더 안쪽으로 돌려보니, 한 노인이 천천히 수저를 놀리고 있다.
모든 여행자들이 이곳에 서서 뷰파인더를 바라보는 그 순간에도, 그들의 삶은 여전히 흘러가고 있다.
갑자기 사원을 사진으로 남기는 게 부질없게 느껴져 그만 두었다. 사원에 들어가기 위해 실내화와 치마를 빌리지도 않았다. 그것보다, 내가 관광지와 그들의 삶의 경계에 서있다는 사실이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 어느 도시의 차이나타운보다 풍성하고 다채로운 풍경을 선사한 쿠알라룸푸르의 차이나타운.
이제 본격적인 볼거리로 가득한 센트럴마켓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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