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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OUT/단상

흐림 모드

by nonie 2010. 6.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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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2003년 가을의 어느 날, 남태평양의 휴양지 괌에서 그를 만났다. 연예인 수십명과 청소년 수백명이 거대 음료 브랜드를 홍보하기 위한 행사에 동원된 자리였다. 다른 연예인들이 별 내색 없이 아이들과 어울리고 노는 가운데, 유독 밥도 혼자 먹고 연예인 티를 팍팍 내는 듯한 그가 있었다. 반면 무대에서 노래를 할 때는 유독 적극적이었고, 연기자 치고는 노래도 곧잘 해서 좀 놀랐던 기억이 난다. 그의 얼굴에서는 행사 내내 시큰둥한 표정과 우울함이 떠나지 않았고, 역시 TV에 비치는 미소띤 밝은 모습은 전부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수년이 훌쩍 지난 오늘,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신문 1면을 가득 채운다. 왜일까 하는 궁금증보다는, 자꾸 그때의 모습이 떠올랐다. 왜 한국 사회는 연예인을 자꾸만 나약하고 힘들게 만드는 걸까. 남 잘되는 꼴 못보는 한국에서는 연예인이야말로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무방비적이고 지속적으로 노출되는, 진정 빡센 직업인가보다. 참 요즘 세상, 굳은 심지를 가지고 살지 않으면 안될 힘든 세상이다. 


동기 부여
더는 환경 탓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실패라고 결론낸 부분을, 극복하고 싶었다. 그런데, 이젠 정말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내가 너무 부족하거나, 필요없는 걸 억지로 하고 있거나, 처음부터 대행사로 갔거나, 다른 일을 했어야 했거나. 굳이 인정받지 못하면서 '당연한' 일 꾸역꾸역 해야 하는 그 이유, 못 찾겠다.   

사실은 나도 안다. 무엇이 문제인지. 그 답이 내 안에 있다는 것도. 하지만 이런 나를 등떠밀어줄 힘을 스스로 짜내기 위해서 뭐가 필요한지 모르겠다. 아직도 내게는 욕심이 너무 많은가보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묵묵히 역할 다하고 남의 뒤치닥거리도 당연하게 하고 가끔 욕도 좀 먹고 그렇게 사는게 아직도 그저그렇게만 느껴지는 걸 보면. 


역발상
한편 최근 일련의 일을 곰곰히 따져보면, 이미 내 관심사는 저 멀리 튕겨져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도 순순히 인정하게 된다.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걸 절실히 필요로 하는 수요도 분명 존재한다는 거, 그리고 내가 무엇을 통해 즐거움과 보람을 얻는지도 점점 명확해져가고 있다는 거.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아마 더 분명해지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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