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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입학하고 첫 1년은 팝가수 머라이어 캐리 팬클럽을 창단해 이런저런 행사를 치루느라 학교 생활은 뒷전이었다. 팬클럽 회장직을 위임하고 홀가분해진 후, 다음 학년을 즐겁게 보낼 또 다른 흥미거리를 찾고 있었다. 마침 학부 동기 중에 힙합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들이 많아서 얼결에 학부 내에 힙합 동아리가 만들어졌다. 당시 우리 학교에는 힙합 동아리가 없었다. 매일같이 연습에 공연, 외부 행사까지, 돌이켜 보면 즐거운 추억이다.
나는 힙합 동아리 '라임'의 유일한 보컬리스트였다. 어디선가 구해온 MR에 맞춰 래퍼들이 가사를 써오면, 후렴구 멜로디나 코러스를 담당하는 식이었다. 10명 남짓한 멤버 중에는 대학 생활에 윤활유를 쳐주는 정도로 대충 활동하는 애들도 있었고, 나름 음악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멋진 가사를 쓰는 친구도 있었다. 후자에 속하던 한 동기는 동아리 활동이 끝난 후에도 모 포털 카페의 대규모 랩/힙합 동호회 부시삽으로 활동할 만큼 본격적으로 음악에 뛰어들었다.
어느덧 졸업을 하고 나름대로 길을 찾던 2005년 여름, 그 부시삽 친구가 뜻밖의 연락을 해왔다. 동호회에서 이번에 컴필레이션 앨범을 내는데 보컬 피쳐링을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흔쾌히 승낙을 했더니 덥석 MR을 주면서 "반주는 있는데 아직 아무 것도 없어. 니가 부를 파트 멜로디랑 가사 좀 써주면 안되겠냐?"
→ '편지' nonie Version. 그 친구나 나나 각자 겪고 있던 이별의 얘기를 가사에 담았던, 인생의 한 페이지를 담은 의미있고 소중한 곡이다. 아래 정식 발매된 곡은 랩 가사가 완전히 바뀌었던데, 솔직히 원곡에는 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편지'라는 곡이 탄생했다. 멜로디의 대부분은 내 동생(Aoryjoe)이 만들었고, 나는 가사를 쓰고 노래를 불렀다. 정작 내게는 그 컴필 CD도 한 장 없을 정도로 노래를 만들었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지만, 당시 '밀림'이라는 언더그라운드 음악 차트에서 주간 2위까지 했을 정도로, 나름 대중성(?)도 검증되었다. 하지만 의도적으로 음악을 내 삶의 한 켠으로 밀어 놓아야만 했던 월급쟁이 초년병 시절, 그 사건은 한 때의 해프닝으로 지나가 버렸다.
3~4년이 흐른 2009년, '편지' 원곡의 MR을 만든 프로듀서가 내 블로그를 찾아내어 연락을 해왔다. "그 노래로 신인 여가수를 키우려고 하는데, 저작권 동의를 해달라"는 부탁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의 곡이기도 한데, 멜로디를 만든 우리를 찾아서 이름을 넣어주려고 하는 게 (법적인 시비를 예방하기 위한 차원이겠지만) 정직하게 느껴져 동의를 해드렸다. 그리고는 한동안 잊고 있었다. 설마 실제로 발매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몇 주전 문득 그 사건이 생각나서 검색해보니, 놀랍게도 그 곡은 이미 2010년 3월에 한 여가수의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었다. 무려 EP 앨범에 타이틀곡(!)이라니...벌써 1년도 훌쩍 넘은 지금 이 시점에 저작권협회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을 찾게 될 줄이야. 그런데 나는 비회원으로 등록되어 있어 실질적인 저작권 보호를 못받고 있었다. 이 곡의 저작권료는 전혀 기대하지 않지만, 1곡이라도 정규 음반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면 저작권협회에 가입할 자격이 된다는 걸 확인하고는 별 망설임 없이 서류를 준비했다. 그리고 며칠 전 드디어 신탁 회원에 가입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 음저협에서 작품검색을 하면 저작자명(작곡/작사)에 뜬다. '비관리' 상태인데 정식 가입을 하면 관리로 전환된다.
언제 음악 작업을 시작할지는 아직 모르겠다. 그렇지만 뭔가 재미있는 일의 포문을 열 운명적인 서두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5살 때 피아노를 시작해 중학교 3학년에 클래식 정규 과정을 마쳤고, 90년대에 미국에서 발매된 R&B 계열 음반만 오버/언더 통틀어 수천 장을 들으며 음악의 꿈을 키웠다. 흑인음악 웹진을 만들기도 했고, 동아리와 밴드 활동도 했다. 하지만 지금 내 인생에 음악은 과연 무엇인지, 어쩌면 처음으로 돌아가 진지하게 고민해 볼 이유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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